세상 참 얄궂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세상살이다. 사람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잡초 같은 풀이야 오죽하랴. 사람이나 잡초나 세상살이 제 마음대로 되는 게 얼마나 있을까? 봄의 전령 민들레도 잔디밭이나 화단에 뿌리를 내리면 그야말로 한낱 잡초일 뿐이고, 세 잎이면 행복을, 네 잎이면 행운을 준다는 토끼풀도 잔디밭에서 자라면 그냥 잡초일 뿐이다. 농약을 듬뿍먹든지 뿌리째 뽑혀야만 하는 운명이다. 메꽃, 지칭개, 개망초도 풀이 많은 언덕이 아니라 화단에 뿌리를 내리면 그 또한 잡초일 뿐이다. 참초제근이라 뿌리째 뽑혀 버려져야만 한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저 바람 타고 날려 온 씨앗들이다. 어느 놈은 잔디밭에 뿌리를 내리고 또 어떤 놈은 언덕이나 강둑, 초가지붕, 흙 담장 위, 심지어 갈라진 시멘트 바닥 틈에도 내린다. 잡초도 생각이 있을까? 뿌리째 뽑힐 때 아픔을 느낄까? 비명도 안 지른다.
내 텃밭에도 잡초가 무수히 내렸다. 무 배추를 파종했건만 먼저 땅을 뚫고 머리를 내밀은 놈들은 잡초였다. 처음엔 너무 작아 호미로 한꺼번에 긁어 버릴까 하다가 이놈들도 좋은 세상 구경이라도 해 봐야 하지 않겠나 싶어 한 주를 더 살게 한 후 다음 주에 상황을 봐 가면서 뽑으려다 그만 두 주를 넘겨 버렸다.
어제저녁, 잠이 살포시 들려고 하는 행복한 순간에 텃밭 총무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뜸 큰소리치며 하는 말이 ‘텃밭 저렇게 관리하면 내년에는 밭 없다’였다. 깜짝 놀라 ‘주말에만 집에 오는 터라 사정 좀 봐 달라’하며, 막걸리 한 통 사주기로 하고 진정을 시켰으나 도대체 잡초가 얼마나 컸기에 그러나 궁금하기도 하였다. 이튿날 아침 일찍 텃밭으로 갔더니 이놈들이 무 배추보다 더 크게 자라 있었다. 그만큼 세상맛을 봤으니 이젠 뽑혀도 여한은 없으리라 생각하고 모조리 깨끗하게 뽑아 버렸다. 세상은 그런 거였다. 주객이 전도되도록 너무 튀면 뒤통수 맞는 법이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었다. 무 배추 솎아내는 것이 싫어서 파종할 때 씨를 한 알 한 알, 띄엄띄엄 꼭꼭 눌러 심었는데도 한 놈도 뒤처지지 않고 모조리 땅을 뚫고 나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솎아 주어야만 남아 있는 놈들이 더 잘 자랄 것이기에 하는 수 없이 어린놈부터 뽑았다. 봄에는 큰놈부터 뽑아먹고 가을에는 작은놈을 솎아내야 한다. 이것 또한 그들의 운명이다.
봄에 큰놈 솎아낼 때 ‘너는 세상맛을 봤으니까 뒤이어 자라는 어린놈들도 따뜻한 기운을 받고 세상맛 좀 보게 해 줘야지?’ 달래 가면서 뽑으면 마음이라도 편했지만, 가을에 뽑는 놈은 큰놈을 더 크게 키우기 위해 작은놈을 솎아내야 하니 여린 마음이 더욱 애잔하다. 이 또한 여름으로 가는 따뜻한 날씨 속의 자람과 가을로 가는 차가운 날씨 속의 자람 속도 때문이다. 계절 탓이지 씨앗 탓이 아니다. 남아 있는 놈들에게는 '다시 잘 자라다오'를 부탁하며 흙을 북돋워 주었다.
아직 세상맛을 제대로 보지 못한 놈들을 솎아낼 때는 마음이 별로 좋지 않다. 또한, 큰놈이라 하더라도 나란히 붙어 있는 놈들은 두 포기를 한꺼번에 키울 수는 없기에 눈물을 머금고 한 놈만을 선택해야 한다. 큰놈도 자리를 잘못 잡으면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도태되어야만 한다. 그것도 배추는 약 50cm 간격, 무는 30cm 간격으로 정하여 그 거리 내에 있는 놈은 모조리 뽑혀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 줘야 남아 있는 다른 놈들을 더 크게 키울 수 있다. 뽑혀 나오는 자리에 뿌리를 내린 놈은 그 자리를 자기가 선택하지 않았다. 다만 인간이 그렇게 배치했을 뿐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또한 그들의 운명인 것을.
직장도 마찬가지다. 정년 때까지 무사히 잘 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황 등의 이유로 중간 퇴직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능력이 안 돼 권고사직 당하는 경우도 있다. 아니 능력이 없더라도 편안한 부서에서 말썽 없이 조용하게 지내면서 무사히 정년까지 가는 사람도 있다. 자기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부서나 업무에 배치받아 흥미를 느끼고 열심히 일하여 더욱 빛이 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흥미 없는 일이나 힘든 부서에 투입되어 능력발휘는커녕 중간 도태되기에 십상인 것이 또한 경쟁사회 아니던가?
몇 년 전 큰 딸네 회사에 감원 바람이 불었다. 팀원이 모두 20명인데 그중 20%를 추려서 내 보내라는 것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여 냉정하게 평가한 결과 앞 동에 사는 아기 아빠가 걸리더란다. 냉정하지만 세상이 그런 걸 어떡하겠나? 또 큰딸의 윗사람들은 큰딸 그룹을 놓고 평가를 하니 그것도 인생사다. 누굴 원망할 것도 없다. 다 제자리에 뿌리를 못 내린 탓이다.
화단의 꽃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만, 잡초는 뿌리째 뽑혀 버려진다. 넌 화단의 잡초인가? 꽃인가? 봄에 자라는 작은 상추인가? 가을에 자라는 큰 배추인가? 내가 서 있는 자리는 어떤 곳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