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가재도구는 거짓말을 못 한다"
속담이나 명언은 아니고 내가 지어낸 말입니다.
노련한 사냥꾼은 동물의 발자국을 보면 지나간 시간 건강상태 등을 안다고 하잖아요?
마찬가지로 그 집 살림을 자세히 들여 보면 많은 사실들을 알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이삿짐 인부들도 가재도구를 보면 어떤 사람이 살았는지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거든요.
남자와 여자가 같이 살다가 헤어지는 가정을 해 봅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 흔적을 지우려고 합니다.
증거들을 없앤다고 하더라도 이삿짐 인부에게는 다 보입니다.
이삿짐 인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 수 있기는 하지만요.
예를 들자면 세탁기 밑에 여자 혹은 남자의 양말 한 짝이라든지 장롱 속에 다른 사람의 머리카락 그런 것이죠.
무슨 비밀이랄 것도 없지만 관심을 가지면 많은 것이 보일 수밖에요.
"그런걸 알아낼 필요가 있나?"
라고 말 한다면 대답할 말은 없습니다.
"이번에는 전라도여"
작업을 지시하는 소장님의 목소리는 변화가 없습니다.
"슬프다" "기쁘다"처럼 서로 반대되는 감정을 같은 억양으로 말을 합니다.
목소리만으로는 일의 성격을 판단하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장롱이 3개이고 냉장고가 1개인 두 집이 있습니다.
두 집이 같은 걸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경험으로는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습니다.
비싼 것, 저렴한 것, 오래된 것, 최신형 완전 분해장, 등 다르지요.
냉장고도 종류가 얼마나 많은지 알면 놀랍니다.
이런 것은 일을 하는데 중요한 이유는 거기에 알맞게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데 장롱3,냉장고1 이렇게 적힌 작업 지시서만 주고 나머지는 설명이 없습니다.
알아서 하라는 것이지요.
작업하는 우리를 믿고 그런다는 것은 압니다.
그렇더라도 최소한의 기분은 알고 가고 싶은 것이 작업자입니다.
일이 까다로워서 미안한 목소리라든가 오늘은 별것이 아니니 잘하고 오라든지 그런 느낌을 원합니다.
그 집에서 먼저 눈에 띈 것은 침대입니다.
눈에 띈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죠.
복잡한 상가주택의 넓지 않은 안방 평범한 가재도구 가운데를 거의 독차지 하고 있는 훌륭한 침대입니다.
다른 물품과 그 침대를 비교하면 마치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 같은 분위기라고 할까요?.
"이집 주인은 다른 건 몰라도 잠자리만은 확실해야 되나본데요."
같이 간 젊은 동료의 눈에도 그것이 보였는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합니다.
“자자! 침대는 내가 할께 자넨 책상부터 접어”
말을 막습니다.
말이라는 것이 한번 나오면 다음 말은 좀 더 쉽고 꼬리가 길어지면 누군가가 들어서 마음이 상할 수 도 있습니다.
자신의 살림살이에 대해 이삿짐 인부의 견해를 듣고 싶은 화주는 거의 없습니다.
안전하게 이송해 주기를 바라고 비용을 지불 한 것이니까요.
40대 후반의 주인부부가 나타납니다.
"장롱은 이게 가고 이것과 이것은 제가 가져갑니다."
장롱3쪽 중에 한쪽은 해남으로 가고 나머지 두 쪽은 안간 답니다.
부인이 작업을 지시하는 사이 남편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없습니다.
"세탁기 버리고, 가스랜지 버리고, 정수기 안가고, 냉장고 해남..."
따라다니면서 표시를 하면서 이혼이라는 말이 곧바로 떠오릅니다.
이혼하는 집은 이렇게 가재도구를 나누기도 합니다.
그 생각은 잠시이고 만약 잘못되어 남아 있어야 할 물품이 해남을 간다면 돌이킬 수없는 사건이 됩니다.
해남까지 가서 도로 가져올 방법이 있을까요?
방법이야 있지요.
달리는 자동차에 물품만 몰려 놓으면 되지만 운임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새로 구입하는 것이 경제적입니다.
가야할 곳을 표시는 했지만 불안하기는 여전합니다.
"저기 사모님 지금 가실건가요?"
지금 선별만 해주고 휭 하니 가버릴 것인지 끝까지 남아 있다가 자기물품을 챙겨서 갈 것인지 묻는 것이죠.
"네 안 갈 거예요"
반가운 말입니다.
끝까지 남아 있다가 자기물품을 챙긴다고 합니다.
뭔가 잘못되면 알아서 잔소리를 해 주실 테니까요.
"침대도 안 갈 거예요"
사실은 버린다든가 안 가져간다는 말을 들으면 즐겁습니다.
도착해서 정리해야 할 일이 줄거든요.
"정말 잘 생각 하셨습니다. 이런 크고 좋은 침대는 비싸죠."
기분이 좋아진 젊은 동료는 안해야 할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커요?"
여인은 놀란 눈으로 반문합니다.
"네 이게 킹사이즈라고 이 동네에는 없을 겁니다."
"그래요?"
여인의 이마에는 근심이 드리웁니다.
나는 재빨리 침대를 분해하고 남은 부속품을 주머니에서 꺼내 여인을 줍니다.
"이거 없으면 조립이 안 되니 잘 보관하세요, 그리고 주방에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것들이 있던데 버리는 겁니까?"
부속을 받아든 여인은 주방으로 사라집니다.
여인의 정신을 다른 곳으로 돌려놓고 젊은 동료를 한번 처다 봅니다.
나의 불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TV뒤에 머리를 박고 일을 합니다.
시간이 지나고 사다리차가 도착합니다.
"우선 해남 갈 물건부터 차에 싣습니다."
이렇게 결정을 하지만 누구라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화주가 가지고 갈 물품을 먼저 정리하고 다음은 여인이 가져갈 물품을 정리하고 나머지는 버리면 되니까요.
"침대도 해남으로 가져가세요."
화주의 물품을 거의 실었을 때 여인의 마음이 바뀝니다.
"?"
젊은 동료는 어리둥절합니다.
"방이 좁아서요."
우리가 일하는 동안 여인은 그것을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여인은 자기 방과 침대에 대해 고민을 했겠지요.
"어이 침대와 매트도 실어야 돼!"
아래에서 짐을 정리하는 인부와 사다리기사에게 소리칩니다.
"안 간다더니?"
"어 마음이 바뀌었어."
짐을 다시 짜야 합니다.
가재도구가 많으면 많게 적으면 적게 빈틈없이 적재를 해야 하는 인부로서는 새로운 물품이 추가 될 때 곤혹스럽습니다.
통나무 같은 다리와 큰머리, 문짝보다 튼튼하게 생긴 침대 판이 들어갈 장소를 만듭니다.
이럴 때 기분이 나빠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지만 어쩌겠습니까?
짐을 다시 짜고 커다란 매트로 마무리하고 문을 닫습니다.
해남을 가야할 짐이 끝난 것입니다.
이제 여인이 가져가야할 물품을 내려서 길 옆으로 나란히 세웁니다.
"경복이형님은 왜 아직 안 오시지?"
경복이 형님은 여인이 가져갈 물품 운반을 담당한 용달기사로 은퇴한 이삿짐 인부이지요.
"쓰레기를 내립시다."
오지 않는 사람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버릴 물건이 내려오자 파지 줍는 노인들이 나타납니다.
값나가는 물품을 먼저 가져가기 위해 사다리 밑에서 경쟁합니다.
눈치 볼 것 없고 동작이 느린 노인들이 사다리 근처에 몰려들자 사다리 기사가 예민해 집니다.
"할머니 비키세요!"
육중한 운반카 옆에 노인들은 아주 작아 보입니다.
모서리에 스치기만 해도 부서질 것 같습니다.
"내가 날라다 드릴 테니 가까이 오지 마세욧!"
사다리 기사의 목소리는 점점 커집니다.
당연히 속도도 느려집니다.
북새통 속에서 건물주인 여자가 올라옵니다.
건물이 상한 곳은 없는지 폐기물이 남아있지는 않는지 점검하는 것이죠.
"이것은 아직 포장도 안 뜯었네?"
버릴 물품을 모아놓은 무더기를 들추면서 말합니다.
"이건 내 여동생을 줘야 겠구만."
쓸 만 하다고 생각되는 물품을 챙겨서 다시 쌓습니다.
"이건 내리지 마세요."
주인이 가진 장점입니다.
그냥 그 자리에 놔두면 되고 인부는 수고가 덜고 화주는 쓰레기가 줄어서 좋습니다.
그럭저럭 버릴 것도 다 내려가고 파지 줍는 노인들이 안 가져가는 물품들만 남습니다.
쓰레기는 규격 봉지에 담고 가구류는 멀지않은 동회에서 딱지를 사다가 붙입니다.
동내주민 한명이 머뭇거리면서 다가옵니다.
"이 책꽂이는 내가 써야지"
폐기물 딱지가 붙은 책꽂이를 가져갑니다.
"진작 가져가지"
젊은 동료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합니다.
딱지를 붙이기 전에 가져가라는 듯이죠.
책꽂이는 자기가 쓰고 딱지는 떼어내 동회에 반납하면 환불을 받습니다.
경복이 형님은 그때까지도 오지 않습니다.
"갑시다."
화주와 중학생정도의 어린 딸, 좌석 뒤 공간에 자리 잡고 눕은 젊은 동료는 경복이형님을 기다리는 여인과 가재도구들의 배웅을 받으면서 정이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모르는 곳을 떠납니다.
세계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거대한 아시아 대륙에 꼬리처럼 달려있는 대한민국은 참 작습니다.
대륙과 비교하면 꼬리라고 말하기도 힘든 지경입니다.
그런데 화물 자동차로 서울서 남해 바다까지 가보면 대한민국도 만만치 않게 넓은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액셀을 최대한 밟아도 시속80키로 이상 나가지 않는 고물화물차로 간다면 대한민국은 더 넓은 나라가 될 터이지요.
언덕길을 만나면 속도가 확 줄어듭니다.
속도가 줄은 만큼 가야할 길은 멀고 그만큼 우리 대한민국은 큰 나라입니다.
"커피한잔 하고 갈까요?"
고속도로휴게소를 만나면 하는 말입니다.
커피보다도 자동차의 휴식과 점검이 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화주에게 그런 눈치를 보이면 안 되지요.
"기사님 커피를 아주 좋아하시는 군요"
화주가 말합니다.
"네 저는 하루에 커피를 20잔은 마셔야 잠이 옵니다."
호탕하게 뻥을 치는 나를 믿어주기를 바랍니다.
"졸리실까봐 커피를 드시죠?"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갈길 먼데 빨리 갑시다."
이런 화주를 만날 때도 있습니다.
보통의 화주들은 나의건강을 염려합니다.
"커피를 많이 마시면 좋지 않아요."
이런 마음 씀씀이가 우리 배달 사람이 사는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어린 딸은 그 긴 시간을 쉬지도 않고 핸드폰을 들여 봅니다.
나는 그것이 더 걱정입니다.
하다못해 시력도 나빠지겠지요.
"너 뭘 그렇게 보니?"
결국 참지 못하고 참견을 하고 맙니다.
"우리 ‘결혼 했어요’를 하고 있어요."
어린 딸의 말에 나도 놀라고 화주인 아버지도 놀랍니다.
중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기에는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뭣? 너 그거 가져와봐!"
아버지는 휴대폰을 빼앗습니다.
나도 곁눈질로 화면을 봅니다.
작은 화면에는 만화처럼 생긴 그림이 움직입니다.
"흠 게임이구만."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쉽니다.
그렇지만 아이의 아버지는 느낌이 좀 다릅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하루 종일 게임을 하나?"
내가 그의 입장이라도 그렇게 말 할 겁니다.
가족을 위해 바쁘신 아버지들은 책상에 앉아 뒷모습만 보이는 자식이 이런 게임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으로 보고 뿌듯해 하잖아요.
아버지는 실망을 합니다.
"재미있는 게임이니? 재미없어 보이는데."
내가 먼저 말을 꺼냅니다.
"네 재미는 없지만 심심해서요."
아이는 솔직하게 대답을 합니다.
게임 이야기에서 친구 이야기로 슬그머니 옮겨갑니다.
"너 이사 가면 친구들이 보고 싶을 텐데?"
"보고 싶으면 문자할 거예요."
"제일 친한 친구 이름이 뭐니?"
"정숙이"
"정육점집 딸이냐?"
아이 아빠가 드디어 대화에 끼어들 기회를 잡았습니다.
한번 잡은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넓고 길은 멀고 시간은 많습니다.
도란도란 부녀의 이야기는 끝이 없습니다.
휴게소가 나타납니다.
"커피를 한잔 마시고 가야지"
나의 말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화주와 아이를 위해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삽니다.
"저곳입니다."
멀기는 하지만 결국은 목적지가 나타납니다.
아담한 산을 등지고 농가 십여호가 모여 있는 작은 부락입니다.
오래된 촌락일수록 마당까지 차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골목길은 손수레하나가 겨우 다닐 정도로 좁기 때문이죠.
아마도 큰 화물차가 없던 시절에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 그대로 마을이 돼버린 탓일지도 모릅니다.
마을 입구에 화물차를 세우고 날라야 합니다.
"밥부터 먹고 합시다."
집에서는 할머니가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연로한 어머니입니다.
우리는 그 먼 길을 이 할머니를 찾아 온 것입니다.
할머니가 차려놓은 밥상은 어느 고급식당보다 훌륭하고 푸짐합니다.
된장국과 김치는 지금 쉽게 맛보기 힘든 토종입니다.
풋고추와 된장 한 가지만 있어도 다른 건 필요 없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방안의 천장이 낮아서 가지고온 장롱이 서지 않습니다.
헛간에 눕혀 놓습니다.
침대를 옮기다 문득 생각이 납니다.
부속품을 여인에게 줘버리고 다시 받지를 않은 것입니다.
사고입니다.
땅의 끝이라는 이곳에서 부품을 구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화주에게 조립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 여자 분에게서 부품을 받아 사장님께서 조립을 하세요."
화주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 여자 분의 연락처를 알려 주세요"
"모릅니다."
화주는 그 여인에 대해 모른다고 말합니다.
농담이라고 생각 했지만 정말 모르는 것인지 생각하기 싫은지 알려주고 싶지 않은지 결국 연락처를 알아내지 못합니다.
그 부품을 버리기 전에 빨리 통화를 해서 그런 이야기를 해야 됩니다.
"헤어지고 몇 시간이나 되었다고 벌써 연락처를 모르시나요?"
이런 질문이 목 까지 올라오지만 차마 꺼내지를 못합니다.
이삿짐 인부들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니까요
"형님 아까 짐 실고 간 여자 전화번호를 알려 주세요"
돌아오는 길에 경복이 형님 생각이 납니다.
"전화번호? 모르는데"
"왜요?"
"전화통화할 일이 있어야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그 집은 알아요?"
"알지 올라오면 데려다 줄께"
그래도 그 여인의 집을 알 수가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놓입니다.
“무슨 일 있어?”
“침대 부속을 부인에게...”
장황한 설명을 합니다.
“그랬구만 그런데 아까 소장님께 들으니 부인이 두 달 전에 사망됐다던데 벌서 다른 여자가 있어?”
내 젊은 동료는 그 긴 시간에 잠을 잡니다.
대한민국은 넓고 길은 멀고 시간은 많습니다.
“부인이 돌아 가셨다 던데 그런 기본적인 것은 이야기를 해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심심하기도 할뿐더러 업무적인 일이니까 소장님께 따지는 것입니다.
“알았어! 담부터는 미리 말해 주지”
“일단 침대 부속을 받아 해남으로 보내 주세요.”
“어~ 오늘 탁구모임이 있어서 그리고 느덜이 실수니 직접 해결해 끊는다.”
소장님과의 대화에 무엇을 기대 한 것은 아니지만 기분이 좋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시간이 많습니다.
그 여인에 대해 생각하기로 마음을 정합니다.
“어떤 관계일까?”
경복이 형님차를 타고 여인의 집에 갑니다.
현관문은 굳게 닫혀있습니다.
메모지를 문틈에 끼워놓고 돌아옵니다.
연락이 없습니다.
다음날 다시 갑니다.
메모가 아직 꽂혀 있습니다.
보름 후에 방문했을 때도 그대로 입니다.
6개월이 지났습니다.
또 그대로 입니다.
건물 주인을 만났지만 그 사람도 모르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그날 이후로 그 여인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그 무슨 침대 부속 때문에 더 이상 이곳에 온다면 이상해질 것 같습니다.
날마다는 아니지만 그 집 앞을 지나노라면 우연히 나도 몰래 생각이 납니다.
주머니에 들어간 침대 부속 때문인지 나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