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이라는 말을 들으면 정겨운 느낌이 든다.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해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가정 먼저 달려와 내 일처럼 같이 거들어주는 이들이 이웃이다. 농촌에서는 동네 주민들이 농사일을 함께하며 결혼, 회갑, 장례 등 거의 대부분의 애경사를 돕기 때문에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이로 지낸다. 흔한 말로 집안에 밥그릇이 몇 개인지 젓가락이 몇 개인지를 알 만큼 가깝게 지낸다. 같은 동네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나와 동일체로 여기는 반면에 도시에서는 아파트에서 출입문을 이웃하고 있어도 데면데면하게 지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도시에서 살면서 이웃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린 지 오래다. 옆에서 가까이 산다는 이유만으로 선뜻 다가가기에는 왠지 부담스럽다. 그 사람이 나에게 이익이 될 만한 사람인지, 해로운 사람인지의 여부를 떠나 그 사람의 삶에 불쑥 끼어드는 느낌이 들어 말붙이기가 망설여진다. 엘리베이터에서 눈인사를 나누는 정도 이상은 다가가지 않는다. 이웃의 정을 느끼기보다는 층간소음을 일으키는 아이가 없다거나 베란다에서 담배연기를 뿜어내지 않는 이웃을 만나는 것을 행운으로 여기게 된다. 그 만큼 우리는 정이 사라져가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중에도 이웃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접하지 못했다. 주로 밖에서 지내는 나의 삶도 동네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거의 없다.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여인들은 남자들보다는 좀 더 가깝게 지내는 것 같다. 누가 이사를 갔다거나 몇 호집의 아이가 장가를 간다거나, 무슨 대학에 입학하였다는 정보를 아내를 통해서 가끔 접하게 된다. ‘이웃사촌’이라는 가까운 사이가 도시인의 삶에서는 또 다른 의미로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낀다.
오래 전 아내를 만나서 결혼을 하기 전의 일이다. 우리는 결혼 후 발생될 갈등요소, 즉 시댁에 대한 행동방향이라든가, 처갓집을 대하는 원칙이라든가 이런저런 일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 때 내가 아내에게 제시한 조건 중의 하나가 나는 물론이고 우리 가족을 ‘남과 비교하지 마라’는 것이었다. 서로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살자고 제안을 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여러 직업을 가져보고 독특한 삶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의 능력의 총합은 같고, 각자의 품성대로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똑똑한 사람은 차가운 면이 있고, 못나 보이는 사람은 의외로 정이 많은 경우를 자주 접했다. 나쁜 사람으로 평판이 나 있는 사람도 내가 잘해주면 나에게는 잘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일가친척도 서로 사이가 틀어지면 남이 되고 더 나아가 남보다 못한 경우도 있는데 세상살이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내 가족들이 비교당하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할 수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인정하며 시간을 함께하고 가진 것에 만족하며 나름 행복하게 살았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참 많이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돈이 없어 힘든 시간을 보낼 때에도 그 만큼이 우리가 누릴 몫으로 여겼다. 힘든 생활이었지만 불평하지 않고 마음만은 남부러울 것 없이 그렇게 한 20년 넘게 잘 지냈다.
그런 그녀가 오십이 넘고 동네를 벗어나 활동영역을 밖으로 확장하더니 어느 때부턴가 비교하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술을 좋아하는 내가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온 다음날은 동네 테니스 모임의 어떤 남편을 예로 들면서 그 남자는 술을 마셔도 마신 내색도 않는 다는 둥, 아직도 담배를 피우는 나를 보면서는 누구 남편은 담배를 끊고 모은 돈으로 아내에게 금목걸이도 사주고 외국여행도 보내줬다는 둥 ‘좀 배워라!’는 투의 말을 심심찮게 한다.
좀 젊었을 때는 아내가 그런 내색이라도 보이면 ‘비교하지 말자’는 한 마디 말로 종결될 사안이었다. 그러나 아내의 잔소리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미안허이’하고 만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는 직장생활을 한답시고 내 마음대로 했다. 아내는 전업주부로 나만 보고 살았는데 나에게 잔소리를 퍼붓지 않으면 누구에게 퍼부을까 하는 측은지심도 작용했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시골출신인 난 서울에서 가끔 초등학교 동창회를 하는데 여자 동창생들이 40대 까지는 남자 동창생 앞에서 점잖은 체했었다. 오십대 중반이 되자 남자 동창생들을 쥐락펴락하는 것을 보고 아내에게 말대꾸를 잘 못 했다가는 본전도 찾지 못하겠구나 하는 두려움이 있다. 다른 하나는 사람의 속내는 오래 겪어보면 밖으로 나타난 것과 내면의 성격을 다 볼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오게 되고, 당신이 그렇게 칭찬했던 그 남자도 나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이웃 남자들, 특히 아내의 친구 남편들은 나의 보이지 않는 적이다. 아내는 상대를 바꿔가며 나와 싸움을 붙인다. 이웃 남자들은 얼굴이라도 알기 때문에 그렇다 치더라도 얼굴도 모르는 그녀의 친구 남편들을 들이밀 때는 정말 속수무책이다. 싸움의 심판은 그녀다. 이 싸움은 그녀가 상대를 꽃으로 보고 나를 가시로 보기 때문에 애초부터 내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황당한 것은 싸움에 참여한 나는 말짱한데 심판인 그녀가 상처를 입는다는 것이다.
나는 마음속으로 ‘30년 넘게 살면서 고치지 못한 버릇을 당신 말 한 마디로 고쳐진다고 생각하는 당신은 참 바보!’라고 중얼거리다가도 그녀가 답답한 가슴을 쓸어내림을 느낀다.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아내를 비웃기나 하는 나도 가시만 남아있는 것 같고, 나를 자책하게 하는 그녀도 꽃이 다 진 장미넝쿨 같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