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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웅이 이야기    
글쓴이 : 조월호    14-12-03 17:54    조회 : 6,048

우리딸은 어렸을때 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그 또래의 아이들이 그렇듯 곤충들도 좋아해서 여러 종류를 데려다 길렀다. 다슬기, 민달팽이, 미꾸라지, 병아리, 고양이.. 미꾸라지는 유리병속에서 3개월이나 살았는데 어느날 병을 뛰쳐나와 방바닥에 죽어있었다. 나는 (교회일로) 주일이면 항상 바쁘고 신경쓸 일이 많았다. 그 바쁜 주일날 딸이, 제 친구가 새끼 고양이를 한마리 가지고 있는데 못 키운다고 했다며 "내가 가져오면 안될까?" 하고 교회에서 자꾸만 졸라대서 하는수 없이 "일주일만 길러봐" 하고 반승락한게 그만 고양이를 기르게 된 이유이다.

'오야옹' 이라고 이름짓고 같이 살았는데 단독주택 마당이 있는집도 아니고 넓지도 않은 아파트에서 고양이를 키우는게 쉽지가 않았다. 관리실에서는 방송과 엘리베이터 광고판을 통해 종종 경고하곤했다. "아파트에서는 동물을 기를 수 없습니다. 이웃에 피해를 주고 아이들에게 위험합니다"

1년쯤 되었을때 시골 친정집으로 데려다 주고 왔다. 가족들은 안타까워 했지만 내 결심은 단호했었다. "시골이 고양이 살기 더좋다고!" 데려다 주고 온 날, 고양이가 밥을 안먹는다는 외할머니 전화 한통에 부녀가 그 길로 다시 내려가서 식구들 다 잠든집에 살그머니 들어가 고양이를 안고 와버렸다. 그렇게 몇 달 더 데리고 살다가 이번엔 휴가를 내어 함께 내려갔다. 같이 친정집에 가서 정들여 놓고 떼어놓고 오리라 하고. 2박 3일 동안 있으면서 떼어 놀 궁리를 하는데 눈치빠른 고양이는 그 날부터 또 밥을 먹지 않았다. 게다가 밤에 그 동네 토박이 고양이의 공격을 받아 목덜미에 할퀸 상처가 생겼다. 영역 다툼으로 살벌하게 싸우는 광경을 보니 돔지 마음이 안 놓이는데다 굶고 있는 녀석을 어쩌지 못해 우리 부부는 별 수 없이 사흘 휴가 끝에 그 애를 또 데리고 왔다.

야옹이는 영리해서 사람처럼 양변기에 올라가서 오줌을 누었다. 그런 야옹이가 고양이 백혈병에 걸렸다. 식구들은 그때 시골 고양이에게 할켜온 상처를 통해 감염되어진걸 탓했다. 수없이 목을 긁어대어 털이 빠지고 상처가 덧나곤 했었다. 살려보려고 병원다니고, 주사맞고, 고생했지만 끝내 살리지를 못했다. 기른지 3년만인 그 해 추석전날 죽었다. 내가 앉아 있으면 슬그머니 올라와 앉거나 영역표시해서 질겁하게 하던 내 치마에 그 애를 싸서 뒷산에 묻었다. 딸들이 추석날 올라가서 보고 울면서 내려오다가 명절 맞아 순찰도는 경찰을 만났는데 부모님 산소에 다녀오는줄 알았던지 친절하게도 "울지말고 힘내서 살라"고 해서 감사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애를 보낸 아쉬움과 섭섭함으로 식구들이 또 고양이를 기르자고 했다. "엄마만 허락하면 된다"고 졸랐다. "청소, 빨래, 냄새등은 누가 처리하는데!" 거절하다가 별 수 없이 또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왔다. 인터넷으로 알아보고 3부녀가 가서 데려왔는데 야옹이랑 똑같은 털을 가진 아이였다. 내가 받아 안았더니 놀란 고양이는 발가락을 있는대로 펴서 내 옷깃을 잡고 할퀴어대며 "미용 미용"하고 울었다. 야옹이를 생각하며 이름을 "야웅이"라고 지었다. 잘 먹여 길렀더니 엄청 살찐 비만 고양이가 됐다.

10년넘게 가족으로 살다가 늙고 병들어서 동네 병원을 다니며 차도를 기다렸는데 나아지지를 않고 밥을 못 먹었다. 고양이 잘 본다고 소문난 병원이 있다해서 그 곳으로 찾아가니 그 수의사 선생님은 우리 부부를 한 눈에 알아보셨다. 먼저 살던 고양이 야옹이가 백혈병 치료 받았던 곳인데 그리로 이전했다고 하셨다. 10년전의 '오야옹'이도 기억하고 그 진료기록도 가지고 계셨다. 그 병원에서 피검사와 엑스레이 촬영을 하고 영양주사를 맞았다. 늙어서 그렇단다. 뱃속에 모공덩어리가 있는데 늙어서 수술할 수 없다고 했다. 며칠 더 다니며 치료했지만 수의사는 포기하고 마음 준비를 하라고 하였다. 조치하면 1주일정도 연장시켜 줄 수는 있겠지만 별 수 없다고 했다.

무엇이든지 먹여보려고 닭고기, 생선, 참치캔, 우유, 설탕물등 애를 썼지만 도무지 먹지를 않았다. 우리는 밥먹을때마다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에 반찬도 없이 밥을 먹었다. 고양이는 편식하는 동물이라 그런가 하고 먹던 사료를 물에 불려 줘 보기도 하고 가루로 빻아서 줘 보기도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고통을 겪는 야웅이를 보며 기르는 것도 힘들지만, 보내는게 힘들어 다시는 못 키우겠다 결심하며 얼굴을 만져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부르면 '야옹' 하고 대답하던 녀석이 기운이 빠져가면서 입 모양만 달싹이고 소리가 나오지 않더니 한 숨 쉬고 눈물만 보이다가 끝내는 가버렸다. 죽기전 나는 수 없이 이름을 불러줬다. 고통을 면하고 잠들기를 기도했다. "야웅아 좋아해줘서 고마워 이제 편히 자거라 엄마가 미안해!"

야웅이와 함께 살던 때 나는 혈액암에 걸렸다. 어떤 사람들은 다 나를 위해서라며 고양이를 버리라고 했다. 문을 열어놓아 나가게 하라고도 했다. 그래도 그럴 수 없었던 우리 식구들은 나만 안방에 격리시켰다. 남편은 고양이와 다른 방에서 잤다. 백혈구 수치가 떨어지고 항암 후유증에 시달리며 혼자 있는게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야웅이는 밤마다 안방문을 긁으며 울었다. 나는 그 소리가 "엄마 문열어 엄마 문열어" 하는 것처럼 들려서 식구들 몰래 문을 열어주곤 했다. 날마다 이불빨래 하게하고 이웃에게 미안하고 온 집안에 영역 표시해서 냄새나게 하던 녀석. 그 고양이 아직도 있냐고 언니 성격 참 이상하다고 놀리던 형제들. 나를 쾌적한 환경에서 살고 싶게했었던 고양이와 13년간의 동거가 끝났다. 출가한 딸들이 오면 비교적 깨끗한 방, 작은 딸 쓰던 방에서 자라고 하면 "여기가 청정 지역이야?"하며 웃었다.

손님이라도 오시면 적대감, 경계심을 보이는 야웅이 때문에 미안하고 신경쓰여 무슨 장애아 키우는 부모같은 심정으로 숨기고 싶었던 야웅이.. 그 야웅이를 내 치마에 싸서 묻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잘 썩어 자연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며. 다음날 딸이 가봤더니 어딘지 찾을 수가 없었다며 근처에 안개꽃을 놓고 왔다고 했다. 올라가보니 야웅이 묻힌 곳에서 한 발짝쯤 떨어진 자리에 꽃이 있었다. 꽃을 옮겨놔줬다. 꽃은 마르고 시들며 오래도록 거기 있었다. 야웅이도 내 기억속에 오래오래 있을 것이다.  


임정화   14-12-04 10:45
    
안녕하세요, 조월호 선생님.
첫 글과 달리 이 글은 문단나누기가 잘 되었고, 고양이와 오랜 시간 식구로 지내다 떠나보낸 이야기가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어 읽기가 아주 수월합니다.
저도 떠나보낸 고양이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요.
최근에 반려동물들과 함께 지내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수필에서도 반려동물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고 합니다. 때문에 흔한 소재가 되어버린 단점이 생겨서 다른 글과 변별력을 가지기 위한 특별함을 쓰는 게 좋다는 지적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이 글 속의 오야옹은 조월호님 가족에게 매우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임에 분명하고, 그 이별이 일개 독자인 제게도 전해져서 애틋한 한편 마음이 포근해지기도 합니다. 지금 이야기도 아주 잘 쓰셨습니다만, 만남에서 이별까지 쭈욱 줄거리를 이야기하듯 풀어내셔서 평이한 면이 있으니, 고양이와 지내며 겪었던 특별한 에피소드를 구체적으로 한 토막 집어넣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그래서 읽는 독자도 '아, 오야옹, 나도 한 번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게끔요.
재미있고, 한때 고양이 엄마였던 저에게도 특별했던 글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조월호   14-12-04 17:26
    
조언을듣고보니 생각나는 얘기도있었는데 잊어버리고 못썼어요
읽어주시고 좋은지적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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