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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미년에는    
글쓴이 : 정민영    14-12-30 14:02    조회 : 8,267

 도전이라는 말에는 신념, 열정, 모험, 계획, 용기, 역경, 망설임이라는 언어들이 따라붙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연말이면 연례행사처럼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신년계획을 세우곤 했었다. 신년계획의 단골 메뉴로는 금연과 절주가 항상 앞자리를 차지하였지만 지금까지도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금연과 절주 다음으로는 신년에 이뤄내야 할 목표가 자리 잡았다. 그 목표를 이뤄가는 여정은 종종 삶을 힘들게도 했지만 살아갈 의미가 되었고 희망으로 다가오곤 했다. 내 삶과 동행했던 그러한 신년계획도 어느 때부턴가 인생노트에서 연기처럼 사라지고 무덤덤한 생활이 이어졌다.

  년 초에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에 온 나라의 시선이 진도 앞바다로 향하고 비명에 간 영혼들을 위로하는 애도의 물결이 강산에  메아리칠 때 서민들의 삶은 힘들어지고 청춘들의 고뇌는 더 깊어진 한 해였나 싶다. 세월호의 아픔이 가슴에서 사라질 즈음에 뜬금없이 비선 실세들의 국정농단이라는 새로운 이슈가 갑오년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우리 사회를 불안한 눈으로 보게되었나보다. 이대로 그냥 살아가기에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 사회에 진 빚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를 맞이할 때면 새로운 희망을 향한 설렘과 목표에 대한 도전의식으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고 의식을 치르듯 비장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청춘의 열정이 사라지고 추억만 남은 빈껍데기만을 걸치고 있는 요새 몇 년간은 아무런 감흥도 없이 연말을 보냈었다. 예년 같으면 아무런 생각 없이 한 해를 보내고 맞이했을 터이지만 유독 올해는 미래의 삶을 어찌 살까 하는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았다.

  작금의 현실은 묻생명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농간이 횡행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사건의 희생자들만이 억울할 뿐이다. 우리나라의 세태가 죄를 묻지 않는 사회로 변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이 든다.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사회,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는 사회의 끝은 어떤 모습일까 하고 생각하면 등골에 소름이 돋는다. 집단이기주의가 성공으로 가는 인간관계의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내 편의 행위에는 어떠한 잘못에도 이러저러한 이유를 붙여 정당성을 부여하는 현상을 자주 접하면서 인간이 얼마나 영악해질 수 있는가 하고 놀라게 된다.

  사회정의가 사라진 사회에서 한 명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방편을 구하기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죽을 때까지 굶지 않고 쪼들리지 않고 사람노릇하면서 몇 안 되는 가족들과 오순도순 살 수 있다면 그런 대로 괜찮은 삶이다. 최소한의 행복한 삶은 스스로 그것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할 때 누릴 수 있는 가치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불안한 사회에서는 아무도 미래를 담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생각이 많다.

  오랜만에 미래를 위한 계획이란 것을 세워보기로 했다. 신년계획이라기보다는 머릿속에만 있던 인생 2막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해야할 필요를 느꼈다. 여러 갈레의 길이 나타나고 각각의 길을 걸어가 보았다. 지금부터 죽는 날까지 어떤 시간을 보낼까, 새롭게 맞이하는 날들에 무엇을 채워 넣을까 하는데서부터 시작했다. 몇날 며칠을 고민해도 생각을 하면 할수록 복잡해지기만 한다. 어떤 길을 가져와도 그 길의 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가 담배를 피우러 아파트 소정원으로 내려갔다. 담배 한 개비를 꺼내들고 한 모금의 연기를 하늘로 올려 보내다가 눈길이 정원의 소나무 잎에 멈췄다. 그리 크지 않은 소나무 잎은 바람에 날릴 것처럼 가늘고 옅은 초록빛을 내고 있다. 몸통을 싸고 있는 껍질은 젊은 피부처럼 매끈하다. 하늘을 향한 줄기는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힘이 넘쳐난다. 젊은 소나무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몇 미터 떨어져 고고히 자리 잡고 있는 몇 그루의 노송으로 눈길을 돌렸다. 노송의 잎은 굵고 짧으며 검은 녹색이다. 몸통을 두르고 있는 표피는 거북등처럼 갈라져 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군데군데 살점이 보인다. 줄기는 하늘을 향하지 않고 옆의 젊은 소나무를 내려다본다. 꼭 부모가 자식의 안위를 살피는 것 같다. 실바람에 젊은 잎은 춤을 추지만 노송은 꿈적도 않는다.

  나의 삶도 노송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 자리에서 젊은 소나무의 성장을 내려다보듯이 젊은이의 성장을 돕는 삶을 살고 싶다. 신년계획표의 첫 문장은 완성되었다. 할 수 있을 때까지 배우자. 그 다음에는 무었을 놓을까 고민하다가 걱정을 하지 말자를 놓았다. 걱정 없는 마음으로 배우고 익히면 그것이 전부인 것이다. 그래도 세 가지는 되어야겠지 하며 건강하게 살자를 가져왔다. 평생 따라다녔던 금연과 절주를 다시 불렀다. 인생 2막 계획표의 대강은 배움, 평온, 건강으로 완성되었다.

  지금부터는 무엇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 그 배움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평정심을 유지할 것인가, 금연과 절주만으로 하는 소극적 건강법보다는 꾸준히 할 수 있는 내 몸에 알맞은 운동은 어떤 것이 있는가를 찾아보기로 했다. 앞으로 남은 며칠 동안 나를 돌아보고 내 안에 얼마만큼의 열정에너지가 남아 있는지, 용기는 살아 있는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미련은 없는지를 꼼꼼히 살펴봐야겠다.


문영일   15-01-02 06:50
    
박학다식한 게 오히려 글 쓰는 데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이것 저것 끼어 넣고  빼자니 아깝고 뭐 그런 거 말입니다.
 '을미년' 을 맞이한 나의 각오 쯤인데 오죽 할 말이 많겠습니까?
 세월호, 책임을 지지 않는 세태, 사회정의, 등등 거대 담론들은
 소나무를 보고 금연, 금주. 그리고 배움의 작심을 하게 된 글에 무슨 역활을 하는지요?
 작은 소재를 가지고 금광석 같이 잘게 부수고 갈고 닦듯이 초점이 명확하면 더 좋을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 3년 밖에 되지 않은 '초자'라 이런 말씀 드리는 게 주제 넘지만 함께 배워가자는 뜻에서
 댓글을 달아봅니다.
 님은 대가가 될 재목이라는 걸 저는 확신합니다.
정민영   15-01-05 08:49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좋은 충고 감사합니다.
저는 사물들간의 관계는 이런것이다라고 정해진 것이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아마존 밀림의 나비 한 마리의 날개짓이 지구의 기후에 영향을 미친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나비는 자신이 좋아하는 곤충일 뿐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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