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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숙모에게 남은 것(수정)    
글쓴이 : 박주철    15-01-02 04:29    조회 : 7,596
   1970년 익어가는 가을날 떠들석한 전통결혼식장 초가집.hwp (16.0K) [1] DATE : 2015-01-02 04:29:53
                                                 외숙모와 청춘의 대가
                                                   
                                                                     박 주철

1970년대 어느 가을날 떠들썩한 전통결혼식장 초가집 부엌과 앞마당을 넘나들며 맛난 음식을 주워 먹다가 덜미가 잡혔다. 봉황대신 혼례상에 올라가 발버둥을 치는 닭을 잡고 있을 아이를 찾는 진행원의 눈에 띈 것이다.
"이건 꼬마가 해야지 중학생이 어떻게 ..."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아든 알밤에 눈물 한 방울 찔끔하고 닭 잡이가 되어 혼례상 옆에 꼼짝 말고 서있었다. 커다란 쟁반에 가득하다못해 층층이 쌓여있는 소고기 산적과 사탕으로 치장된 곶감 때문에 새색시 얼굴을 보지 못했다. 새신랑은 삼촌의 친구면서 산 넘고 개울 건너 땅골 사는 외삼촌이다. 고조할머니의 친정 집안이니 촌수를 따지기 전에 이웃사촌에 가까운 외삼촌이다. 가을걷이가 끝나기 바쁘게 눈이 내리면 할일이 없어진 삼촌과 친구들은 우리 집 행랑채에서 겨울을 나고 봄을 맟는다.

흰 눈이 펑펑 내리던 날 따뜻한 아랫목 이불속에서 만화책을 보고 있을 때 땅골외숙모를 등에 업은 삼촌은 말할 사이도 없이 사랑하는 조카를 윗목으로 집어 던지고 아랫목에 뉘였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새신랑이 집을 나가 닷새가 되도록  돌아오지 않자 여기까지 찾아 온 것이다. 그때 실없는 말 잘하기로 소문난 영대형이 문 앞에 있다가 아주 슬픈 표정으로 한마디 밖에 안했다고 한다. 
"엇 그제 황새골 올빼미 집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죽었다는 소문도 있고..."  
외숙모는 하얗게 쓰러지고 나는 날벼락을 맞았다. 한참 후에 깨어난 외숙모에게 외삼촌이 술이 취해서 잔다는 삼촌의 말을 전했다. 앙다문 입술로 알 수없는 말을 하면서 외투를 벗어 방바닥에 팽개치고 기침도 없이 할아버지 방문을 열었다. 간간이 흐느끼는 소리와 나직한 고함 소리가 들렸다. 할아버지 방을 나온 외숙모는 이불을 뒤집어쓴 내게 말했다.
"가자"
바래다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숙제해야 되는 데요"
"빨리 안 일어서?"
기세에 눌려 옷을 차려입고 따라 나선다. 서산에 지는 해의 그림자를 한발로 밟으며 재를 넘고 희미한 달빛에 외숙모의 발자국을 따라 밟으며 징검다리를 건넸다. 외숙모의방은 깨끗하고 이불은 포근했다. 빨간 내복을 입은 외숙모의 큰 가슴에 놀랐다.
"외숙모 젖이 아파요?"
"무슨 말이니?"
"젖이 엄청 크니까 아까 기절 한 거죠"
"뭐?"
주먹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질끈 감았다.
"넌 조그만 게 못하는 말이 없어"
알밤은 날아오지 않았다. 그 후로 뭔가 대화가 있었지만 금방 잠들었고 일어났을 때는 아침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어제 밤 지나온 발자국을 거꾸로 밟으며 재를 넘다가 외삼촌을 만났다. 걸음걸이는 조금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할아버지의 별명은 땡삐였고 그해 겨울 행랑채는 비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 외삼촌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도 술을 즐겼다. 항상 자랑처럼 하는 말은 '안주가 필요 없어' 이다. 처갓집에 다니러 갔다가 장모님이 정성으로 마련한 씨암탉을 드시고 탈이 나서 병원을 찾았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위장이 종잇장처럼 얇아서 수술을 할 수 없었다.
 
전방 산간벽지 마을 장정들을 제2국민역으로 편입을 해버렸다. 자기 마을을 지키라는 국가의 명령이다. 객지를 바람같이 쏘다니다 개구리복장의 방위병으로 돌아 왔지만 지킬 것이 별반 없었다. 해지고 썰렁한 장터에 불을 밝힌 집은 아직 손님이 남아있는 대폿집이다. 그런 집에는 십중팔구 땅골외숙모가 계셨다. 의지가지없이 아들 둘만 남겨놓고 가버린 외삼촌을 대신해 낮에는 산과 들을 밤에는 사람손이 필요한 곳에서 품을 팔았다. 억척스런 팔뚝은 굻어지고 큰 가슴은 더욱 커졌다. 처음에는 반가웠지만 차츰 부담스러워질 때 사고를 치고 말았다.
"매일 그렇게 마시고 어떻게 사니?"
같은 걱정이 잔소리로 들릴 즈음 영대형과 우연히 조우하였다. 평소에는 자리를 비키거나 옮겨 마주앉을 일이 없었을 테지만 선술집의 테이블은 두개 밖에 없었고 술은 많이 취해 있었다. 영대형의 말은 거침없었고 외숙모에게 예의를 잃었다. 좁은 장마당이 난장판이 되고 영대형은 앞니가 부러졌다. 다음날 아버지와 삼촌에게 차례로 불려가 꾸중을 들어야 했다. 할아버지는 이미 기력을 잃으셨다. 그렇게 평소에 말이 없고 국방의 의무에 충실한 군인으로 근신하던 어느 날 외숙모께서 찾아오셨다.
"너 남자가 그만한 일로 기가 죽어서야 되겠니?"
모범적인 생활에 싫증이 나려던 참이다. 이번에는 외숙모가 계시는 집을 찾아 다녔다. 설거지를 하고 음식 만드는 법도 배웠다. 친구아버지와 협상 끝에 헛간 벽을 헐고 선술집을 열었다. 외숙모는 점포 주인이 됐다. 인근 부대 기간병들도 차츰 외숙모의 품으로 빠져 들었다. 외출이나 외박을 나온 장병들이 거치는 곳이 되었고 그곳에는 언제나 푸짐하고 편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국군장병들도 땅골외숙모 라고 불렀다.

서슬 퍼런 계엄령 아래에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게 돼있다는 야당총재의 외침이 아니더라도 시간은 바람결에 지나가고 소집은 해제되었다. 역맛살은 놀부의 심술보 마냥 한번 뒤집히면 발착을 일으켜 참을 수가 없어진다. 객지에서 객지를 전전하다 결국 한평생을 살았다. 아버지는 아들을 따라 다니시다가 마침내 노년을 마감하셨다. 산등성이를 따라 가지런히 정돈된 가족묘지는 당신이 생시에 가꾸시던 자리였다. 커다란 굴삭기가 거침없이 정리하는 동안 친지와 지인들은 여기저기 모여 다음 순서를 기다린다. 
그들 사이에 보이는 할머니, 곱던 피부는 소나무껍질처럼 거칠어지고 큰 가슴은 줄어들어 형체가 없고 굽어진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한 이는 땅골외숙모였다. 아름드리나무가 들어찬 대자연을 배경으로 외숙모의 뒤에는 훤히 빛나는 젊은이 두 명이 서있다. 그들의 얼굴에는 석년에 졸하신 땅골외삼촌의 그림자가 선명하다. 외숙모의 청춘을 자양분으로 단물을 빨아 성장한 두 아들이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으로 그들을 향해 외치고 있었다. 장승처럼 서서 두억시니 같이 버티고 천사처럼 지켜라. 나는 비록 아는 이 없는 타향에서 아버님의 추억을 앗았다 마는 정든 이 있는 이곳에서 살아 후회를 남기지 마라. 언제까지 옆에 계실 줄 안다만 찰나에 가셔서 그리워도 안타까워도 붙잡을 수 없는 이름이 어머니이니라.   

임정화   15-01-07 18:23
    
안녕하세요, 박주철 선생님.
외숙모님에 대한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게시글 제목과 파일명, 내용 상 제목이 모두 다르네요. 각기 다른 제목들은 그것이 풍기는 느낌을 따라 내용이 조금씩 덜어내지거나 곁들어져야 더 완성도 높은 수필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외삼촌이나 외숙모님이 주요등장인물로 나오는데 비중이 덜한 외삼촌은 별다른 묘사가 없이도 대충 성격이 짐작이 가는 반면, 외숙모님은 선명하게 잡히는 윤곽이 좀 미진한 느낌입니다. 특히 시선을 잡는 직접대화문 속에 외숙모님의 큰 가슴이 나오는데, 그 대목이 암시하는 바가 무엇인지 좀 헷갈리는군요. 그 당시 이미 태중에 아이를 가져서 가슴이 컸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단순히 젊었기 때문에 그렇게 보였다는 것인지 말입니다.
읽는 재미도 있고 내용이 어렵지 않은데 반해 이야깃거리를 넘어서는 주제를 봤을 때는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 했는지 조금 모호한 감이 있습니다만 선생님께서 의도하신 바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하군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
     
박주철   15-01-09 04:57
    
임선생님의 지적사항에 대해 글이 아닌 보충설명을 드리는 점에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글은 여성가족부에서 공모한 어머니란 주제로 시작을 했지만 일 때문에 마감일을 넘겨 포기 했던 글입니다.
글을 완성해 놓고 보니 아니다 싶어 청춘의 대가로 정했지만 글을 올려놓고 다시 마음이 변하여 남은 것으로 고치고 수정이라고 표기까지 했는데 타이틀만 바뀌고 내용에 제목이 바뀌지 않은 것은 지금도 이해를 못하고 있습니다.
외숙모의 가슴은 실제로 그러하시지만 표현하고자 했던 뜻은 크다-줄어들었다-대신 아들이 성장했다 를 말하려고 한 것입니다. 숙고하여 좀 더 낳은 흐름을 만들기 위해 고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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