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 아내가 떡국을 끓여 내 놓는다. 새해가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떡국을 먹는다. 떡국은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민족의 최대 명절인 설이 되었다는 설레임도 있다. 지금이야 설과는 상관없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떡국을 먹을 수 있지만 내 유연의 시절에는 설이 아니면 좀처럼 먹기 힘든 음식중의 하나였다.
눈꽃 같이 하얀 떡을 얇게 썰어 사골국물에 넣고 보약을 달이듯 강한 불에 펄펄 끓이면 나무토막처럼 딱딱했던 기세도 소 죽속에 들어가 익어가는 볏짚처럼 축 늘어져 버린다. 흐물 거릴 정도로 익은 떡국을 도자기 그릇에 담아내고 개나리꽃처럼 노란 달걀 고명을 얹으면 멋진 식당에서 판매하는 떡국보다 더 품위가 있다. 음식 솜씨가 늘 별로라고 생각했던 아내가 차려 놓은 떡국을 보니 새삼 제법인데 하는 생각이 든다. 맛이야 어떻든지 일단 눈으로 보는 시각적 맛은 합격이다. 음식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시각, 후각, 미각, 청각, 촉각 등 오감을 동원해야 한다. 눈으로 보기에 맛있어 보이고, 좋은 냄새가 나며, 먹을 때 들리는 상큼한 소리와 혀끝에서 느껴지는 감미로운 느낌과 향긋한 맛이 느껴져야 좋은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그 중 첫 번째 관문은 통과한 것이다. 수저를 들어 그릇에 푹 담가보았다. 손끝에 닿는 느낌이 일반 국을 푸는 것과는 달리 걸죽하게 느껴진다. 느낌도 좋다. 크게 퍼서 수저를 코끝에 대 보았다. 쌀밥을 지었을 때 나는 구수함과 진한 사골의 향긋함이 코를 통하여 내 뇌를 자극한다. 뇌는 즉각 먹을 만 하다고 반응한다. 금방 입안으로 밀어 넣고 싶어진다. 얼굴에 가득 미소가 번져오는 것을 느낀다. 분명 맛있을 것이라고 느낌이 왔기 때문이다. 수저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구수한 국물이 먼저 혀끝을 감싸더니 목 젓을 타고 넘어간다. 목구멍에 따뜻한 온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국물과 섞여있던 떡들은 입안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중이다. 천천이 떡을 씹기 시작했다. 몇 개의 떡들이 씹을수록 다시 뭉쳐지는 기분이다. 열심히 썰어서 분리해 놓은 것들이 다시 합쳐지는 이유는 원래 하나였기 때문에 합쳐지려는 것인지 모른다. 씹으면 씹을수록 합쳐진 떡들이 작아지고 결국 쫀득한 느낌으로 입안을 맴돌다가 식도를 타고 사라진다. 시원한 맛과 개운함이 동시에 묻어난다. 오늘 떡국은 합격. 그렇게 아내는 나와 결혼한 후 25년 만에 떡국으로 음식에 대한 합격점을 받았다.
오랜만에 떡국 한 그릇을 게 눈 감듯이 다 비우자 아내는 아주 당당하게 “더 줄까”라고 묻는다. 아내의 입가에는 의기양양한 미소가 장미꽃송이가 피어나듯 불그스름하게 피어나고 있다. 밥상머리에서 늘 젓가락으로 끄적대며 시원스럽게 밥그릇 한번 비우지 않던 내가 아주 즐거운 표정으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우자 아내도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아내의 그런 행복한 표정도 오랜만에 본다. 나는 빈 그릇을 아내에게 내밀었다. 아주 공손하게 응석을 부리는 아이의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다시 아내는 큰 사발에 떡국을 퍼 담는다. 이번에는 사랑과 정을 더 넣어 담는 것처럼 보인다. 대접을 받고 산다는 느낌이 들었다.
떡국을 다시 받으며 딸 은정이를 불렀다. 식구라야 달랑 네 식구가 사는데 설날 아침에 떡국 한 그릇 먹는 것도 동시에 먹지 못하는 것이 아쉬었다. 목청을 높여 딸을 불러 보았으나 대답이 없다. 아마 어제 밤에도 컴퓨터를 밤새워 만지다가 새벽에 잠이 들었을 게다. 대학 졸업을 앞둔 지금 마음이 천군만근 복잡할 것이다. 초중고 12년에 대학 4년 그렇게 16년을 공부하고도 취업하기 어려운 것이 요즘 현실이다 보니 어학은 필수요 몇 가지의 스팩(Specification)을 만들지 않으면 다른 학생들에게 뒤진다는 생각에 밤낮이 바뀌어 버린 딸이 안쓰럽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취업을 걱정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직장에 갈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은 들었지만 취업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교직을 직장으로 택한다는 것 자체가 취업할 곳이 없는 사람이 선택하는 길쯤으로 치부해 버렸다. 교정직 7급 특채 추천도 마다했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좀 더 공부를 하고 대학 교단에서 후진들을 가르치는 것을 목표로 삼았기 때문에 취업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현재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려고 하는 많은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고통을 받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 취업을 앞둔 아들과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걱정이 태산이다. 토플과 토익 점수가 만점에 가깝고 몇 개의 자격증을 거머쥐어도 취업문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현실이라고 한다. 그러니 취업 이야기만 나오면 한숨만 날 뿐이다. 밤낮없이 책상에 붙어 앉아 공부를 해도 모든 학생들이 다 그렇게 공부를 하니 눈에 띄게 두드러져 보이지도 않는다. 공부를 안한다고 야단치지도 못할 만큼 열심히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무것도 도와주지 못하는 마음이 너무 시리다. 세상이 변해버린 것을 누구 탓을 하겠는가. 결국 인생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며 자기 자신의 능력에 맞게 살아가야 하는 피할 수 없는 격투장에 외롭게 서 있는 것이다.
머리위로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은정이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다. 계단을 내려오는 발걸음에 밭으로 일을 하러 나가는 황소걸음보다 더딘 게으름이 묻어난다. 푸스스한 얼굴로 괴면 쩍은 웃음을 날리며 식탁으로 다가오는 딸아이의 표정이 더 가슴 아프게 한다. 아내도 딸아이의 등장을 반가워하며 떡국을 한 대접 퍼서 가져다준다. 아무 말 없이 떡국을 먹기 시작하는 딸아이의 옆모습이 애잔하고 애처롭다. 2015년을 시작하는 새해 첫날 떡국을 먹으며 기원해 본다. 이 쫄깃하고 단백한 떡국의 식감처럼 금년 한해 우리 가족 모두에게 건강과 풍성한 결실이 주렁주렁 포도가 열리 듯 알차게 열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