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와 곶감
나는 곶감을 무척 좋아한다. 하얀 가루가 마치 흰 눈이 뿌려진 듯 군데군데 묻어 있는 곶감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씹을 때의 쫀득쫀득한 느낌과 혀끝으로 전해오는 달콤한 맛은, 여느 주전부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그 맛이 얼마나 좋았으면, 옛날이야기에 호랑이가 잡아간다고 해도 계속 울던 아이가, 곶감을 준다고 하자 울음을 뚝 그쳤을까?
<호랑이와 곶감>에 얽힌 이야기에서와 같이, 병원에서도 ‘호랑이’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진료를 받으러 오는 아이들이 울거나 보채면, 빨리 그치게 할 요량으로 겁을 주면서 “너 자꾸 울면 선생님이 주사 놓는다” 라는 말이나, 어른들의 경우에도 “술, 담배 계속하시면 암에 걸려 일찍 죽을 수 있습니다.” 란 말이 그것이다. 어쩌면, 바쁜 시간에 환자를 빨리 진료하기 위한 편법이라고 변명할 수 도 있겠지만, 실상 일일이 자세한 설명을 해줘야 하는 것이 좀 귀찮아서 일 것이다.
요즈음은 이것이 보편화 되어, 병원에서 울며 보채는 아이가 있으면, 엄마들이 먼저 이 말을 사용하곤 한다.
“너 자꾸 울면, 의사선생님한테 아프게 주사 놔달라고 한다”
“얘는 집에서 말을 안 들어서 큰일이에요. 말 잘 듣는 주사 좀 놓아 주세요”
세상에 말 잘 듣게 하는 주사 란 것이 있을 턱이 없고, 오히려 훌쩍훌쩍 작게 울던 아이도 주사란 말에 큰소리로 울게 만들기 십상이다 보니, 참 난처할 때가 많다. 하긴 우는 아이에게 단 번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말이 마땅히 없기에 어쩔 수 없다지만, 매번 이런 말을 듣다보면, 기우(杞憂) 같기는 해도, 어릴 적부터 ‘의사는 무섭고 다가가기 힘든 사람으로 각인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하루는 젊은 엄마가 아들과 함께 진료를 받으러 왔다. 아이가 어찌나 울던지, 엄마가 그치게 할 요량으로 “울면 너 의사 선생님한테 주사 놔달라고 한다”는 말을 몇 번을 되풀이하기에, 아이 엄마에게 한마디 한 적이 있었다.
“아니 제가 주사 놓는 사람도 아니고, 애를 더 울리시면 어떡해요“
이 말을 들은 보호자가 이상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다. 그 후 엄마와 아이를 다시 진료실에서 마주칠 일은 없었으니, 내가 맞장구 쳐주지 않았던 게, 무척이나 섭섭했었나보다.
곶감은 만드는데 손도 많이 가고, 정성이 제법 들어가야 하는 음식이다. 예전 할머니 댁에 가면, 싸리나무 대에 껍질 벗긴 감을 줄줄이 꿰어서 수평으로 매달아, 늦가을의 찬바람을 쐬며 말리는 것을 보곤 했다. 곶감을 워낙 좋아하는 손자를 자주 보고 싶은 마음에, 매년 준비해 놓으시곤 했던 것이다. 가을 추수가 끝날 무렵, 할머니는 발갛게 잘 익은 감을 하나하나 꼭지가 떨어지지 않게 정성스럽게 따서, 깨끗하게 씻어 놓으셨다. 이것을 껍질을 벗겨 약 한 달 보름정도 햇볕에 잘 말리면, 달달하고 쫀득쫀득한 곶감이 되었는데, 혹여 감을 말리는 중에 비가 온다거나, 습한 날이 계속되는 경우, 곰팡이가 쉬이 피기 때문에, 걸어놓았던 감을 다시 채반에 널어 수시로 뒤집어 가면서 말려 줘야했다.
이렇게 웬만한 공을 들이지 않고서는, 좋은 곶감을 손에 넣기란 애초부터 그른 일이다. 요즘에야 기계를 써서 쉽게 곶감을 만든다고 하지만, 정성을 들인 할머니의 곶감 맛과 어찌 그것을 비교할 수 있을까?
곶감을 만들 때처럼 손이 가는 일이 세상에 다반사라지만, 의사가 환자를 대할 때만큼 더 정성이 필요한 것은 없을 듯하다. 처음으로 의사가 되어 신경외과를 파견근무를 할 때였다. 뇌출혈로 인해 사지마비가 된 환자들만 따로 입원해 있는 병실이 하나 있었다. 하루는 병동에서 환자 처치를 하고 있는데, 그 병실 안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에 무슨 일인가 하여 가보니, 간호사와 보호자 간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아니! 이런 일은 당연히 의사나 간호사가 해줘야 하는 것 아니에요?”
“물론 처음 입원한 환자는 저희가 해 주죠, 그런데 저희들도 바쁘고, 또 환자가 퇴원하면 이 일은 보호자분이 다 해주셔야 하는데. 지금 좀 배워놓으면 안되나요?”
“하지만 지금은 병원에 입원해 있는 거잖아요.”
싸움의 발단은 환자의 가래를 뽑아주는 일에서 발생했다. 사지 마비가 된 환자들은 스스로 가래 배출이 어렵기 때문에, 목 한가운데 기도와 연결되는 관을 꽂고, 그곳을 통해 기계로 매일 수 십 번씩, 가래를 인위적으로 뽑아 주어야 한다. 단 몇 번만을 해 주지 않아도 진득진득한 가래가 차 올라, 환자의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기침을 하는 것은 물론이요, 환자의 고통도 이만 저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일은 물론 의사나 간호사가 해야 했다. 하지만 인력이 한정되다 보니, 처음 입원한 신환 말고는 보호자를 교육 시킨 후, 보호자가 스스로 빼주도록 해 왔던 것인데, 그날따라 누가 그것을 하느냐를 두고 실랑이가 벌어졌던 것이다.
막 학생딱지를 뗀, 풋내기의사의 투철한 히포크라테스 정신에서랄까, 내가 나섰다.
“아! 그럼 제가 도와서 뽑아주도록 하지요. 뭐”
말은 이렇게 뱉어 놨지만, 아뿔싸 보통 일이 아니란 걸 직감하고는 바로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보호자와 간호사 입장에서는 여간 반길 일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 환자가 퇴원 할 때 까지 의사인 내가 뽑고, 간호사도 수시로 가래를 뽑았으니, 다른 환자 같으면 벌써 몇 번은 문제를 일으키고 염증이 생겼을 법도 했지만, 그런 일 없이 무사히 퇴원을 하게 되었다. 책으로만 배웠던 의사와 간호사의 정성과 노력이, 환자에게는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가를 처음으로 몸소 깨달은 시간이 아니었던가 싶다. 하지만 의사인 나도 사람인지라, 어찌나 그 환자가 퇴원하기를 목이 빠져라 고대했던지.......
의사가 된 후 여러 해가 지나다 보니 제한된 시간에 많은 환자를 봐야 한다는 핑계 삼아, 환자에게 소홀한 점이 많았던 것 같다. 단순히 질병만 찾아내고, 환자에게 간단한 설명만 해 주면 내 임무는 끝이라는........
환자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해 주고, 할머니가 곶감을 만드실 때의 오랜 시간과 정성으로 환자를 대했던 것이 언제였던가? 하는 자책감마저 들기도 한다. 더구나, 빠른 시간에 의사의 말을 따르게 할 요량으로 ‘호랑이’와 같은 겁주는 말을 먼저 꺼냈던 것은 아니었는지? 하지만, 결국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했던 것은 ‘호랑이’란 무서운 말 보다는 ‘곶감’이란 달콤한 말이었으니, 단순히 곶감의 달콤함만이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할머니가 늦가을부터 정성스레 손질하고, 손자를 생각하며 오랜 시간 햇볕에 말리는 노력과 사랑이 듬뿍 들어간 그런 곶감이었기에, 아이의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창밖으로 진눈깨비가 내리고 하늘이 수상한 것이, 아무래도 오늘밤은 폭설이 올 듯싶다. 문득, 군불 땐 따뜻한 아랫목에서,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하얀 가루가 곱게 앉은 곶감을 먹던 때가 생각나면서, 벌써부터 입안에 군침이 가득 고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퇴근하는 길에 가게에 들러, 곶감 한 꾸러미나 사가지고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