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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살던 고향은    
글쓴이 : 임동택    15-06-04 10:33    조회 : 5,913
나의 살던 고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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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동택
 
  범바우산 뭉게구름아래 들녘에 맞닿은 곳은 내가 태어나서 초등학교 6학년 졸업할 때까지 자란 곳이다. 영광에 있는 동고부락이라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60년대 시골에서 자란 나는 여름방학만 목빠지도록 기다려진 때가 있었다. 우리집에 송아지가 온다는 말에 가슴이 설레인다. 이때는 들로 산으로 소를 몰고 가서 풀을 뜯기면서 마음 놓고 친구들하고 뛰어 노는 것이 낙이었다. 아침에 소를 산자락으로 몰고 가 고삐를 소목에 둘둘 말은후 자유롭게 풀어 놓으면 소들은 소들대로 알아서 풀을 뜯곤 한다. 우리들은 그때부터 총싸움, 칼싸움, 구슬치기, 별의별 놀이를 해가 지는 줄도 모르게 한다.
어릴때부터 함께 공부하고 실컷 뛰어 놀던 정서가 짖게 깃든 곳, 고향에 가끔 가노라면 지금은 오직 우리들의 이야기만이 주위에 정적을 갈랐고, 재잘 거리는 우리의 웃음소리만이 그곳에 깃들곤 했다.
가난했던 시절 이였지만 우리들 꿈을 계속 이어가고 있었다. 봄방학이면 산에 가서 장작개비 모으며 나무하던 일, 여름이면 구슬치기와 딱지치기, 가을이 오면 친구들과 특공작전으로한 땅콩서리 하던 일, 한겨울 밤이면 이웃집 제사하던 집에서 담 너머로 음식 넘겨받아 푸짐하게 친구들과 나누어 먹던 일이 생각이 난다
그리고 저녘밥 먹고난후 아랫집 처녀 목욕하는 모습 훔쳐보기 생각만 해도 아슬아슬 조마조마 두근두근 숨죽이던 그때 일들, 이런 것이 나의 고향 길에서 일어나던 일이다.
그러다 해가 뉘웃 니웃 석양이 오면 정신이 퍼뜩 들게 된다. 소를 몰고 집에 가면 엄격한 아버지가 기다리고 계시다는 생각으로 나를 긴장케 한다. 그때부터 부랴부랴 집중하여 풀이 많은 곳으로 인도하며 소의 배를 채우려고 몸도 마음도 상기되어 풀을 뜯기는데 열정을 받친다.
해는 점점 어둑어둑해지는데 내 마음은 무척 초조하게 된다. 불안한 마음 가득하다. 그러면서 소의 배를 계속 살핀다. 소배를 만져보기도 한다. 먹이를 많이 먹고 배가 볼록 나와 풀 먹이는 목동도 안심된다. 소 뒷부분 등선 양 옆에 오복이 들어간 자리가 펑펑하게 나와야 열심히 풀을 뜯긴 증거가 되는데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집에 가면 아버지한데 야단맞을게 뻔하다. 날은 점점 어둑어둑해지고 마음이 급하다보니 비상한 잔머리가 굴려진다. 논두렁의 소를 끌고 가서 물을 꿀꺽 꿀꺽 실컷 먹인다. 그 걸때는 소가 외양간에 들어갈 때까지 쉬를 하지 말아야 아버지한테 야단맞지 않을텐데하며 조마조마 하며 가슴을 졸인다.
어떤 때는 집에 도착 직전에 쏴아 쏴아쉬를 하는 바람에 배가 홀쪽 들어가 아버지한테 네 이놈
하고 혼쭐나던 일도 있었다.
아직도 그때의 생각이 마음에 환하게 비춰 온다.
소는 풀반 물반 채운 배를 가지고 워낭소리 흔들며 마을로 들어서면 제 집이라고 유유히 찾아가는 모습, 암컷이 좋아 풀은 먹지 않고 쫃아 다니는 얄미롭게 바람난 중년 황소를 때리기도 하며 말리면서 애쓰던 일, 모두가 나의 이야기다.
한 번은 어른 소가 되었을 때 5일장 소시장으로 팔려가던 전날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정든 황소하고 외양간에서 온밤을 함께 보내면서 눈물지었다.
내 친구야 너는 어느 집으로 가냐? 나는 심심해서 어떻하라고 가지마라하면 소는 눈만 껌벅껌벅하며 음매나도 너랑 놀고 싶다는 표정이다.
새벽동이 틀부렵 음매, 음매내 친구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살림밑천으로 팔려가는 것이기에 어린 나는 어쩔 수 없다지만 내가 힘들 때 들녘에서 크게 소리 지르고 푸념하면 말은 못하지만 눈을 끔뻑끔뻑 고개를 흔들며 들어주고 공감해 주었던 정든 나의 친구 황소 기쁜 때 노래를 부르면 꼬리를 설래설래 흔들던 친구였다. 사람은 죽어 하늘나라 간다지만 그때 황소는 지금 어디 있을까? 말은 못하지만 다 아는 것 같았다. 팔려가기 전날 소는 마구간에서 그날따라 여물도 안 먹고 유독 꿈쩍도 없이 선한 큰 눈에 눈물만 주르르 흐리던 모습에 말 못하는 소가 팔려갈 것을 알았던 것 같다.
그날 저녁 어린 나도 소띠라 눈물지으며 애틋한 옛 소에 대한 추억이 생각나는 60년대 희로애락을 같이 하며 가족같이 지냈던 소에 대한 나의 추억이다.
 
생각하면 어느 먼 기억의 끝인 양 떠오르는 지난 시절은 안타까워할 시간도 없이 저 만큼에서 사라져 가는 것 같다. 그리운 이름들과 아지랑이처럼 막연하게 피어오르는 이런 날에는 그리움만큼이나 가보고 싶은 고향이다. 세월은 흘러도 가슴속에 남는 건 아름답던 시절의 추억뿐인데 아버지 하늘나라 가시고 사랑하는 어머니 나이 지긋해 지금은 서울 요양병원에 계시니 내가 자라고 뛰놀던 고향도 올해부터는 찾아지지가 않는다.
고향! 내 부모님이 고향인 것인가 보다
이제는 모두 그리움으로 불타버리고 세월의 장난 속에 묻혀가지만 그래도 고향에 대한 추억이란 항상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고향은 우리들 마음의 뿌리를 튼튼하게 하며 이루 말 할 수 없는 안식과 평화를 일깨워 준다.
내 친구 소 먹이던 그 풀잎, 이슬에 젖은 추억과 어머니의 자장가처럼 언제나 포근한 미소가 떠오른다.
 옛 이야기가 수목처럼 자라고 구수한 인정에 착한 풍속이 엎드린 그 곳 그래서 고향은 세월을 모르는가보다. 누구나 고향을 떠나 타향에 살다보면 그리워하는 향수는 모두가 같은 마음 일 텐데 잊을 수 없는 얼굴, 아련한 추억들, 그리움, 외로움…….
고향은 고독과 같이 깊은 뿌리로 우리네 정서의 밑바닥에서 숨 쉬며 변함없이 찾아 주기를 기다린다. 나의 가슴속에 아니 모두들의 가슴 속에서도 고향은 지워 질수 없는 얼굴로 남아 있다.
 옛것은 이렇게 추억하며 그리워지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인가? 내게 이런 소중한 기억들을 남게 해준 내 고향의 모든 것들이 지금 멍석위에 누워 있는 것처럼 힘든 생활 속에서도 잊지 않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도리를 길러준 나의 가장 큰 스승이다.
 사람은 어떻게 살고 삶이 힘겨울 때 무엇이 인간을 지탱하는가?
가끔 던져지는 삶에 대한 질문들이 팍팍한 서울 살이에 고향에서 어린 시절 발달 과정에서 채워진 나의 감성과 정서가 오늘의 삶을 지렛대처럼 넉넉하게 받쳐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한다.

임동택   15-06-04 10:34
    
안녕하세요 한국 산문이 좋아서  글을 올립니다 
이방의 가족분들 행복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배수남   15-06-04 19:31
    
임동택 선생님~~!
환영합니다.
한국산문에 오신 것을요.
고향을 그리워한 글 잘 읽었습니다.

소에 대한 하나의  주제를 정하여 썼다면
 더욱 더 정감 어린 글이되었겠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앞으로 많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임동택   15-06-17 13:56
    
배선생님 감사합니다
지도편달 도움이 됩니다
행복한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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