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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분의 3    
글쓴이 : 윤은숙    15-07-08 12:37    조회 : 5,434
 오랜만에 집을 찾은 나는 옷을 갈아입자마자 주방으로 들어갔다. 개수대는 말끔하게 비어 있었으나 선반은 접시와 공기, 반찬통, 냄비들이 크기와 종류를 무시한 채 제멋대로 엉겨 있었다. 게다가 수도꼭지 주변은 곰팡이들이 서서히 세력을 키워가고 있어 남편의 어설픈 살림살이에 허점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냉장고를 열어 보았다. 늘 비좁기만 하던 실내는 숨통이라도 열어놓은 듯 속내를 훤히 드러내놓고 빛을 쪼이고 있는 형국이었다.
냉장고 실내등이 이리도 밝았던가!
 
  난 항상 일곱 가지 이상의 반찬을 냉장고에 상비해야만 마음이 놓였다. 손님이 예고 없이 찾아와도 바지락 듬뿍 넣어 된장찌개 바글바글 끓이고 밑반찬에 김치 두어 가지 섞어 내어놓으면 어지간한 손님상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때로는 처진 음식을 버리며 애상이 나기도 하고 남편의 잔소리가 귀찮기도 했지만 그 습관만은 고수하고 있었다. 그것은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나의 취미일 수도 있지만 음식에 맺힌 한이 잠재되어 있는 까닭인지도 모른다.
   
  나는 가난한 시골 농가에 25녀 중 5녀로 태어났다. 아버지 이름으로 된 손바닥만 한 논마지기는 내가 열 살이 되던 해 오빠의 수술비로 남의 손에 넘어가고 부지런한 아버지가 산비탈을 일구어 매년 조금씩 곡식 터전을 늘려온 덕에 가족들 입막음이나 겨우 하는 정도였다. ,보리,수수,찰벼,고추,참깨,들깨,녹두,팥등이 양식이었고 여름철엔 수박, 참외, 토마토 등을 간식으로 먹을 수 있었다. 작은방 구석에 수수깡으로 엮은 저장고엔 붉은 고구마가 가득 차 겨우내 군것질거리보다는 식량이 되었다.
 
   자식들이 성장할수록 입성이 커지면서 먹거리는 점점 더 부족했다. 그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유난히 먹성이 좋았다. 지금 같으면 키가 크려고 그런다고 환영받을 일이나 그땐 눈치를 보아야했다.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도둑고양이처럼 광이나 장독대를 뒤지다가 운 좋으면 딱딱한 누룽지 한 쪽이라도 얻어먹는 게 전부였다. 특히 겨울철에는 배도 고프려니와 입이 심심하여 더욱 그러하였다. 형제들은 은근히 눈총을 주기도 하였다.
 
  겨울방학이 되어 서울서 오빠가 내려왔다.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를 듣고 자란 오빠는 서울 명문대를 나와 이곳저곳 여러 분야에 몸담았으나 오래 견디지 못하고 지금은 중학교 교사를 하고 있었다. 그조차 탐탁해 하지 않는 눈치였고 뒤를 밀어주지 못한 가난한 집안 형편과 무능한 부모를 원망하는 듯 보였다. 열네 살이나 위인 잘난 오빠는 나에게 존경심을 끌어내기 전에 두려움을 쏟아내게 했다 그런 오빠가 건넌방을 차지하고 있으니 죽을 맛이었다. 밥상을 마주하고 있으면 숟가락 소리마저 조심스러웠고 나에게 화살이 날아올 것 같은 불안감이 스멀거렸다. 불안과 근심을 품은 일은 어김없이 현실감을 갖는 것은 무슨 조화속일까?
야 그만 좀 먹어라. 우리 집의 4분의3은 네가 먹어치우는구나.”
“...”
저 팔뚝 좀 봐 내 다리만하네.”
얼굴이 화끈거리고 삼키던 밥알이 목에 걸릴 지경이었으나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갈 용기도 없었다. 그 후 내 별명은 4분의3이 되었다.
“4분의3 또 먹냐?”
“...”
“4분의3 그만 좀 먹어라
오빠에 이어 언니와 동생도 내 별명이 입에 붙기 시작했다. 나는 종종 짚동가리 뒤에 숨어 눈물바람을 하였으나 눈치 없게도 식욕은 줄지 않았다.
 
  그날도 아침을 먹은 지 불과 두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부엌을 어슬렁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버지가 아침나절 지핀 참나무 장작불은 벌겋게 상기된 채 아직도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찬장을 뒤적거리던 내게 운 좋게도 라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애초부터 제 몸을 숨길 의도가 없었던 듯 구석에 요염하게 기대 서 있었다. 고무래로 이글거리는 숯덩이를 앞으로 끌어냈다. 석쇠를 얹고 다독거려 숨구멍을 열어 주었다. 물을 반쯤 담은 냄비를 얹고 입으로 후후 바람을 일으켜 주었다. 노오란 양은냄비는 금 새 몸이 달아 김을 피워 물었다. 조심조심 라면을 옷깃에 묻어 조금씩 뜯어냈다. 스프를 넣고 면을 넣고 뚜껑을 덮자 침이 꼴깍 넘어갔다. 눈을 감고 보글보글 소리에 귀를 열고 수증기 머금은 수프 냄새에 코를 킁킁 거리며 행복에 젖어드는 순간 뒷문이 벌컥 열리며 오빠가 들어왔다.
뭐하니?”
“...”
뭐하냐구?”
“...”
이게 오빠 말이 말 같지 않어?”
화를 참지 못한 오빠는 옆에 있던 부지깽이를 들어 내 어깨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오빠 말이 말 같지 않냐구?”
난 오빠의 뜻 모를 화를 등으로 어깨로 몇 번 더 받아내고 눈물범벅이 되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불현듯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이 스쳐지나갔다.
 
  그 후 나는 4분의3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쿵쾅 거렸다또한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르지 못해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서야 진정이 되었다. 수학에서 4분의38분의6으로 읽었다.
   아이들이 자라 가난과 궁핍을 이해하게 될 즈음 나는 용기를 내어 나의 상처를 꺼내 놓았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요즘 아이들에게 얼마나 공감을 얻어 낼지는 모르지만 나의 상처를 치유 하고자하는 일말에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아이들은 엄마의 아픔 따위 보다는 4분의3이라는 단어에 재미를 붙인 듯 깔깔거리며 4분의3을 곱씹었다.
얘들아 엄마 앞에선 4분의3 쓰면 안 돼. 8분의6이라고 해 꼭.”
남편이 거들었다. 그 후 아이들은 내 앞에서 4분의3을 금기해왔다.
 
  얼마 전 두 아이가 TV를 보며 치즈 케잌을 먹고 있었다. 음음 거리며 맛있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얘들아 다 먹지 말고 아빠 것 좀 남겨야지?”
아빠 거 따로 놔뒀어요. 4분의3만 먹는 거야. 아참 8분의6.”
“4분의1 남겨놨어요.”
딸도 아들도 얼른 말 바꾸기를 하고는 멋쩍게 웃었다. 그런데 어인일인지 가슴이 쿵쾅 거리지 않았다.
 
   텅 빈 냉장고가 하나 둘 자리를 잡아가며 차오르기 시작했다. 남편이 좋아하는 오이무침, 멸치볶음, 코다리찜, 아들 녀석이 좋아하는 겉절이, 불고기, 딸아이가 좋아하는 피마자나물, 취나물을 들여놓으니 실내등이 다시 조도를 낮추었다. 시금털털하고 구수한 김치찌개 끓는 냄새가 거실을 가득 채운다. 얼마 만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게 될 저녁인지 콧노래가 절로 난다. 저마다 좋아하는 음식을 앞에 밀어놓으며 많이 먹어 더 먹어훈훈한 잔소리도 늘어놓아야겠다.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라면이 익기를 기다리는 나에게 말하고 싶다.
너는 아무 잘못이 없단다.’
 

박병환   15-07-09 08:46
    
선생님. 안녕하세요.
어제저녁 선생님들과 굴비정식으로 식사한 후(고교교사, 영광) 선생님께서 쓴 ‘검은 실타래’의 주인공 오빠 이야기를 하니 다들 웃더군요. 요즘 청년 실업이 일반화된 사회 속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부모님과 그들 삶의 허망함을 말하는 중이었습니다. 대화의 한 꼭지를 제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편의 글 중 4분의 3이라는 제목이 나에게 “뭘까?“라는 궁금증을 주어 읽어 봤습니다. 전 편보다 문장(글)의 완성도가 더욱 좋아진 느낌이고, 문단으로 정리하니 한결 읽기가 편합니다. 1문단이 끝나고 2문단 도입부에 “냉장고 실내등이 이리도 밝았던가!”라는 문장은 암시와 함께 잠시 독자에게 숨을 쉬게 하니 좋습니다.
‘검은 실타래’에서 오빠의 내력을 아는지라 이후 잘 읽혔고 특히, 6문단이 제일 재밌습니다. 긴장감도 있으면서 현미경을 갖다 대는 솜씨가 참 좋습니다. 이 문단에서 “애초부터 제 몸을 숨길 의도가 없었던 듯 구석에 요염하게 기대 서 있다.” 라는 표현과 마지막 문장 “너는 아무 잘못이 없단다.”는 독자에게 그 나름대로 해석을 하게 하니 여운이 남습니다.
이렇게 쓰시면서 의미를 확장시켜 나아가면 더 좋은 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윤은숙   15-07-09 09:10
    
감사합니다. 힘이 되는 말씀 새겨듣고 용기를 내어 열심히 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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