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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름달은 묵묵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글쓴이 : 마당김미선    15-10-01 17:24    조회 : 3,891

   내가 사는 곳은 50층 아파트다.

그중에서 45층이 우리 집이다.

집에서 좀 떨어지긴 했어도 고속도로가 보이는 망루다.

평소에도 쉴 새 없이 오고가는 차량들을 내려다보며 저 차들은 어디로들 저리 바쁘게 갈까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도로를 내려다보곤 했다.

명절에야 말할 것도 없다.

요번에도 45층에서 내려다 본 고속도로는 각종 차들이 납작 엎드려 갈 길이 묶여 있었다.

가만히 내려다만 보고 있어도 속이 타는 차량의 긴 행렬들이 이어지던 추석.

 

명절이 뭔지 가족이 뭔지 저리 고생들을 하고서도 죽어라 고향 길을 나서는 우리네 정서를

멀리 망루에 앉아 곰곰 생각해 본다.

그러다가 나 역시 용인 시댁으로 가는 길에 그 차량들 속에 합류 하면서 내려다만 보던 시선이 아닌 올려다보는 입장도 되어 봤다. 그리고 고향 가는 심정도 파헤쳐봤다.

 

   법정공휴일로 정해진 데다 벌써 보름 전 부터 재래시장부터 들뜨기 시작하는 그 붐.

그야말로 명절 붐을 어찌 혼자만 외면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선물이고 뭐고 안 할래 허옇게 쉰 머리도 그냥 놔 둘래 하다가

명절이 일주일 전으로 다가오니 맘이 허둥거리기 시작이다.

시어머니와 큰 시누이 속옷도 챙기러 가자,

나선 김에 잡초처럼 휘어진 내 머리도 정리하자 이래서 어쩔 수 없이 나도

명절이라는 분위기로 합승하고 말았다.

 

   우리 시댁은 종손과 그 형제들이 한 마을에 모여 살아서 명절 때 마다

모이는 인원이 많다.

처음 결혼하고 치루는 추석 명절에

친척들이 대청마루에서 일제히 절을 하는 걸 문틈으로 내다보고는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 친척이란 말이지?’

단출하게 살던 내 친정에서는 상상도 못하던 인원이다.

수많은 친척들을 몰래 지켜보던 새댁도 이제는 인원이 적어지면 더 이상하게

생각할 정도로 많은 세월이 흘렀다.

 

   올해도 언제나 그렇듯이 몰려오는 인원을 미리 감당하기 위해 상차림도

서둘러 차려놓고 제사상도 진설해 놓았다.

그 많은 친척들이 빠져 나가고 나니 남은 건 산더미 같은 설거지뿐이다.

쳐다만 봐도 난감하다.

저것을 처리하려면 또 얼마나 어깨 관절을 혹사 시켜야 되나

여러 날을 어깨 에게 미안해 할 처지가 되었다.

그래도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장손 며느리하고 같이 하면 되겠다 싶었는데

올핸 웬일인지 설거지도 안하고 그냥 보따리를 싸들고 나선다.

이렇다 저렇다 말도 없이.

!

뒤에서 요란하게 슬리퍼를 끌며 왔다 갔다 설거지 거리를 모아다 주는 척만 하는

막내 동서. 그녀를 등지고 나는 말없이 그릇들을 닦았다.

쌓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그릇들을 닦고 나니 앞치마는 흥건하게 젖었고

손목과 어깨가 아프다.

매번 명절 때마다 설거지 담당이기는 했어도 괜히 속이 상한다.

내가 이 나이에 젊은 며느리들도 안하는 설거지를 하느라 이리도 땀을 흘려야 하는가 해서

슬그머니 울적하다.

   요즘엔 시어머니라도 앉아서 이거해라 저거해라 시키는 시대는 아닌 것 같다.

평소 직장 생활 하느라 고단한 며느리들이 명절까지 힘들게 일하는 것이 안돼서

시어머니들이 적극 나선다.

그래도 그렇지 아예 손도 안대고 나가버리는 장손 며느리를 쉽게 이해하기는

내속이 너무 좁다.

뒷정리를 깔끔하게 해놓고 시댁을 서둘러 나섰다.

차 뒷좌석에 앉아서 남편에게 어쩜 젊은 애가 설거지도 안하고 그냥 가?”

했더니 당신이 이해를 해야지.”

참 나

앞좌석 남편의 뒤통수에 내 곱지 않은 시선이 꽂혔다.

그냥 속상해서 그러나 보다 들어주기만 하면 될 것을 이해를 하라느니

그깐 거 잠깐 하고서 뭘 그러냐는 식의 응답이 곱빼기 화를 불러낸다.

속상하거나 불만이 있어 털어놓고 하소연 할 땐 그냥 아무 말 않고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

그렇지 않을 때 뒷통수에 내리 꽂히는 눈빛과 종주먹의 횡행

흰자위 안구(눈 흘김) 운동이 전개된다.

스트레스 폭탄들을 하나하나 터뜨릴 수 있는 멍석이 필요하다.

그냥 혼자 떠들게 내버려 두는 거다.

어느 정도 떠들다 지치면 그만 하는 거다.

그 땐 스스로 풀어져서 불만이 사라지는 걸 왜 남편들은 일일이 토를 달고

해석을 해주느라 헛된 공을 들이는지.

 

   생각지도 않게 형님은 별안간 일어나서 제주도로 여행을 간다고 나섰고

그 며느리는 아무런 말도 없이 친정 행을 서둘러 가버렸다.

이렇다 저렇다 사연도 들어보지 못하고 멍하니 쳐다만 보게 된 입장이

바보 같아서 더 설거지가 힘들었을 테다.

그러나 불만 한들 설거지가 절로 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할 일

그나마 웃으면서 했으면 마음만은 편했을 거다.

 

   해마다 명절이 돌아오면 여자들 특히 며느리들은 별별 걱정을 다 하게 된다.

시집이라는 울타리가 전기 울타리를 두른 것도 아니건만 왜 그리 불편하고

어렵고 거북스러운지 한 해만 안 갔으면 좋겠단 생각을 많이들 했을 거다.

그 만큼 그 속에서 부딪치는 요소들이 많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결혼을 해서 그 집 식구로 자리 잡은 이상

거기서 마음을 풀지 않는 한 늘 그 자리는 불안 구역이 될 것이니.

 

   올해도 이렇게 명절이 지나갔다.

친정에 잠시 들렀다 내려오며 고달픈 긴 고속도로 여정이 시작이다.

어스름히 저녁이 되니 고속도로 위에 큼지막한 보름달이 두둥 실려 있다.

차창 밖으로 내다보는 보름달은 참 크기도 하다.

올핸 슈퍼 문 이란다.

우리 조상들이 이쯤에 명절을 만들어 놓고 누구나 즐기고 행복해보자고

배경 이미지를 깔아놓지 않았는지.

슈퍼 문 이 괜히 슈퍼 문 일까. 뭐든 보름달처럼 너그럽게 수용하고 한 덩어리로 뭉치라는

메시지가 담겨있을 게다.

 

   그녀들이 말 못하고 떠나야 할 사정이 있었겠지.

내가 이해해야지. 혼자 끙끙대고 노여워한들 그녀들이 알아줄 것도 아니고

나만 힘들어.

그렇지요, 슈퍼 문?”

보름달은 묵묵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주 묵묵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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