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로봇 시대의 정서를 바라본다
어둠 속의 휴식은 달콤한 여유로움의
극치(極致)를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새벽의 여명이 거치고 나면 이른 아침 시간 신선한 공기는
새로운 하루의 소중함을 안겨주면서 주위의 변화된 모습을 살펴보게 하는 신비함이 숨어있다. 이러한 이유로, 어느새 눈에는 신문기사의 내용이 전하는 세상의 소식을 읽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사는 일상은
이러한 자신도 변해가는 세상 속 하나의 주역이요 또 다른 상대방의 역할을 궁금하게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스스로 자문의 답을 구하고 있는 모습에 웃음이 나는 하루를 시작해 본다.
그렇다면, 미래의 어느 날 아침이 밝자 유리창이 투명해지면서 바깥 풍경을 비춰주고, 부엌
탁자를 만지면 전기레인지가 나타난 뒤 설거지는 로봇이 알아서 하고, 현관문을 열 때도 홍채 인식 기술이
적용되고, 손짓만으로 전등과 선풍기, 텔레비전을 척척 켜는
시기가 도래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아마도 분명히 대단한 문화적 충돌 현상에 정신적인 방황을
일삼게 될 것이다. 마치 준비 안 된 사람이 새로운 이국 문화를 경험하는 것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겠는가
하고 상상해 본다.
바야흐로 21세기는 지식 정보화 사회로 그 변화가 보통의 상식으로는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더욱이, 그 중심에는 소위 4차 산업혁명이라는 화두(話頭)가
세상의 변화된 모습을 이끌어 가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특히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연결된 사회는 어느덧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여는가 싶다. 그런데
어느새 그 적용의 범위가 흐르는 물줄기처럼 번져가서 로봇에 연결된 모습이 흡사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과 같이 행동하는 것이 아닌가 ?. 이런 모습은 결국 인간을 닮은 로봇,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로봇이 사회로 진화하는 듯하니 첨단과학의 매혹과 공포는 어느새 우리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듯하다.
아무튼, 인간은 영원히 살고 싶으며 세계를 지배하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은 현실적인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이 새로운 환경으로 등장하는 로봇 시대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방안은 모두의 관심사요 핵심을
이루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볼 때, 지금까지 신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볼 수 있었던 신ㆍ인간의 구도를 인간, 로봇의 구도로 바꾸어 놓는다는 현실적인 변화가
인간의 정체성에 관한 물음이 함축된 표현으로 등장하게 하는 현실에 이른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로봇이 교향곡을 작곡할 수 있을까/없을까, 캔버스 위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없을까 등의 현실의 문제가 대두한 상황에서는 더욱 절실히 그 대처방안이 필요할
듯싶다. 왜냐하면, 인간이 로봇에게 그런 질문으로 접근할
때 로봇 역시도 주인님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되물어 오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을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다가오는 로봇 시대에 로봇을 유용하게 이용하면서도 위험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기 위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특히 로봇이 인간과 같은 감정과 창조력을 갖추고 나타나는 시기를 대비해야 할 것이며, 이럴 때 로봇은 노예이지만 자유를 꿈꾼다는 점과 로봇은 사랑받고 싶어 한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이와 같은 점들은 “인간은 영원히 살면서 세계를 지배하고 싶어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인간과 로봇의 협업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충돌을 생각해야만 한다. 더욱이,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되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더 나아가, 이러한 점에 어긋나지 않는 한 로봇이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는 점과 이러한 점들을 바탕으로 해서 로봇은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아울러, 로봇을 지배한 인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류의 전체를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경우 이를 간과해서도 안 된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즉, 로봇은 주인님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류의 전체가 위험에 처하게 될 때는 인류 전체를 위해서 주인에 대한 복종보다는 주인을 제어할 수 있는 처지에 있어야 한다는 아이작 아시모프
원칙 제3항 복종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간과할 수도 없다.
결과적으로, 인간과 과학기술의 정점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인공지능과 로봇의 만남은 인간과 같은 감성으로 인간 같이 보이고
인간이 되고 싶어 하는 로봇 세상의 도래를 가저온다는 점이 중요하다. 더욱이 이러한 상황이 먼 장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을 모두가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 요즈음 현실이다. 이런 이유로, 기술혁신은 이제 더는 기술돌파만으로는 이루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아울러, 인문학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융복합산업은 미래 먹거리 산업의 최대 보고가 될 것이라는 점은 미래를 주장하는
전문가들의 주장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점들을 위해서는 창조적인 사람과 창조적 인재 육성이 더욱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 현실이고, 자신의 공학적 지식을 발현하기 위한 인문학적 지식과 소양은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실정이다. 더욱이, 공학적 지식의 대중화와 더불어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한 과학 세계를 널리 이해하고 우리 생활 주변으로 끌어올 수 있는 인성교육이 더욱 절실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