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임세규
먹음직스러운 향이 풍기는 식빵을 오븐에서 꺼낸다. 막 구워 나온 고소한 향을 간직한 하얀 속살의 빵은 순살 닭고기를 손으로 뜯었을 때의 결을 닮아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이른 아침 빵을 굽고 있는 스물아홉 살의 내 모습이다. 직업 훈련원에서 제빵 국가기술 자격증을 따서 취업한 새내기 제빵사였다.
처음 식빵을 만들었을 때 1차 발효가 끝난 후 따뜻한 반죽의 느낌은 아기 피부처럼 부드럽다. 세 개로 분할된 반죽을 돌돌 말아서 틀에 넣어 산봉우리 모양처럼 구운 영국식 식빵도 뚜껑을 덮고 네모 모양으로 만들어 샌드위치용으로 만든 미국식 식빵도 부드러움으로 시작한다. B.C 3000년경부터 만들어졌다는 빵의 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는 조선말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진 것으로 추정하니 좀 늦은 감이 있다.
우리네 주식은 밥이지만 시리얼이나 빵 등의 서구화된 음식이 아침식사 대용으로 되었다. 직장이 가깝거나 타고난 입맛을 가지고 있지 않은 한 아침에 밥을 먹고 집을 나선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이들은 그나마 어머니가 챙겨 주시기도 하지만 독립생활을 하거나 맞벌이 부부에게 아침밥은 희망 사항 일 것이다.
언젠가부터 매일 아침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그녀가 작은 빵집의 문을 열었다. 그녀는 조그만 입술로 빵 한 조각을 베어 물었다. 달지도 않고 맛있다며 내게 빵을 참 잘 만든다고 했다. 얼마 전 대학을 졸업하고 근처 무역 회사에 다닌다고 했다. 매일 아침 갓 구운 빵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날씨 이야기와 주말 동안 있었던 일들을 내게 말해 주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면 그녀도 공감을 해주었다. 나와 그녀는 제법 말이 잘 통했다.
신도림 역은 시간에 쫓겨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바쁜 걸음으로 북적인다. 지하철역 빵집 앞에서 흘러나오는 향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출·퇴근 시간에 맞춰서 빵을 구워냈다. 그녀 역시 갓 구워낸 빵의 향기를 견딜 수 없었으리라. 어느 설문 조사에서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다는 직장인은 38.4%였는데 그중에 그녀도 있었나보다.
포근한 봄이 창문을 넘어 기웃기웃 할 때 빵집의 문을 살짝 열어 놓자 햇살이 방긋 내려앉았다. 그녀가 오는 시간에 맞춰 식빵을 구워놓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놓았다. 따뜻한 커피 한 모금과 손으로 쓱 찢어낸 식빵 한 조각, 샌드위치와 우유한잔, 바삭한 소보로빵, 앙금이 푸짐한 단팥빵과 촉촉하고 부드러운 카스 타드는 빵을 좋아하는 그녀에게 아침 식사대용으로 알맞았을 것이다.
내가 매일 아침 만들어준 빵을 기다리던 그녀가 일주일째 보이지 않았다. 그녀를 기다리던 빵들은 비닐봉지에 담겨 들어가고 나오고를 반복했다. 그녀의 안부가 궁금했다. 그러나 나는 단지 근처 무역 회사에 다닌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이름조차 알지도 못했다.
원불교 대사전에 의하면 인( 因 )이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 직접적인 원인이라 하며 인과 상호하여 결과를 만드는 간접적인 원인을 연( 緣 )이라고 한다. 그녀와의 인이란 작은 빵집에서의 만남이었다. 나와의 연이란 그녀에게 이름을 묻고 전화번호 하나쯤은 알고 있어야 했다. 인연이란 결국 인과 연이 만나 이루어지는 것 임에도 내게는 인은 있었지만 연은 없었나보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본사로 출근 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더 이상 그녀를 볼 수 없다는 애틋함과 함께 빵집을 떠나야만 했다. 서너 달 즈음 후, 본사로 교육을 받으러온 그 빵집의 지점장을 우연히 만났다. 내가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조그마한 입술의 아가씨가 나를 찾았다 했다. 아마도 그녀와 나는 살면서 잠시 머물다가 지나쳐가는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이었을 것이다.
작은 빵집은 식당으로 바뀌었다. 그곳을 지나갈 때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싶어 하는 작은 기억속의 일부로 그녀가 남아있다. 아직도 그 작은 빵집 속에 그녀와 내가 있는 것 같다. 봄날 4월의 햇살처럼 싱그러운 미소를 간직한 채 스물아홉 살의 내 기억 속에 그녀가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