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임 세 규.
보신각 종소리와 함께 종로에 모인 사람들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2017년이 지나감과 동시에 2018년의 시작이다. 새해가 되면 금연을 결심하는 이들이 제법 있다. 46세. 24년을 흡연 했으니 살아온 인생의 절반은 담배와 함께 한 셈이다.
담배는 인간의 기본 욕구인 의식주 (衣食住)중 식(食)에 해당된다고 생각했다. 끊을 수 없는 이유와 논리로 무장을 하고 신이 주신 위대한 선물이라 여겼던 내가 금연을 해냈다.
10월의 논산 훈련소 연병장.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간 모자를 눌러쓴 조교가 묵직하니 소리쳤다. “ 담배 일발 장전 " 지급된 소총을 삼각대 모양으로 거치 후 훈련병들은“ 칙 ”라이터를 켰다. 나와 24년 지기(知己)와의 첫 만남 이었다.
군대에서는 연초가 나왔다. 한 달에 한번 15갑씩 지급 되었고 애연가와 골초들에겐 항상 모자란 양 이었다. 나는 초보 뻐끔 이었으니 남은 담배는 관물 대 한 구석에 모아 두었다. 이 녀석들을 요긴하게 쓸데가 있었다.
연초가 지급 된 후 20여일이 지나면 얼굴이 누렇게 뜬 채로 기웃기웃 거리며 담배를 찾아 다니는 선임 병들이 있었다. 그들은 주요 보직을 맡았다. 보일러 병은 추운 겨울에 따뜻한 물을 얼마든지 쓸 수 있고 행정병중 군용 물품 담당 병은 군 생활 중 소소히 필요한 물품들을 조달 할 수 있었다. 이상 두 명의 선임병만 친하게 지내도 군 생활이 편할 것 이라는 내 생각이 적중했다.
그들이 힘들어서 도저히 못 참을 때쯤 뒷주머니에 담배 두 갑을 찔러 넣어 주었다. 순간 선임 병들의 눈빛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간절한 목마름이 해소 된 듯했고 " 네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다해주겠어 " 라고 말하는 듯했다. 이때다 싶어 일종의 거래를 했다. 담배 이 녀석과 군 생활 내내 따뜻한 물, 새 군화, 간식거리 등등을 주기적으로 물물 교환했다.
담배가 전혀 무익 한 것은 아니다. 유격 훈련과 불시에 이루어지는 전투준비 태세 훈련, 사십 킬로미터 행군, 육군 공군과 함께하는 공지 합동훈련을 하면서 나누었던 담배 연기속의 전우애. 얼굴에는 새까만 위장을 하고 온몸은 진흙투성이로 빗물이 섞인 밥을 먹은 후 그들과 함께 했던 담배 한가치는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들이다.
‘ 담배에 대한 좋은 기억들 때문이었을까 ’ 제대 후 주위에서 담배를 끊으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움을 주지 못할망정 비아냥거리기 까지 했다. " 이 좋은걸 왜 끓어 ! 식후 연초는 불로장생이라 하잖아. " 사실 나는 금연을 여러 번 시도 해본 적이 있었다. 금연 패치를 붙인 후 일주일을 참아도 보고 금단 증상과 사투를 벌였다. 그러나 이내 참지 못하고 딱 한 모금 담배의 유혹에 넘어가 하얀 연기를 내뿜었을 때의 담배 맛은 뇌 속에서 분비되는 엔돌핀의 최고점 이었다.
그 어려운 걸 " 어떻게 끊으셨어요? 무슨 계기라도 있었나요 ? " 후배가 물었다. 척추 4. 5. 번이 문제였다. 의사는 내 디스크가 신경을 누르고 있는 사진을 보여 주었다. 말이나 글로 표현 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을 경험했다. 허리 디스크는 내 의지대로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다. 수술은 최후의 방법이고 시술이 현재로선 최선이라 하여 세 번의 시술을 받았다.
의사는 담배가 허리건강에 좋지 않다고 했지만 아픈 허리를 잡고 담배를 피우기 위해병원 지하 4층 주차장까지 내려가고 오르기를 반복했다. 침상에 누워 천정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생각을 했다. ' 나 왜 이러고 살고 있지.. 평균 수명 80세 라고 가정하면 앞으로 사십년은 수시로 오는 허리 통증을 견디며 살아야 사는데.. ‘ 불현듯 엄습해오는 서러움과 좌절감, 불안감이 몹쓸 감정의 우울함으로 빠져들게 했다.
담배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불쾌함을 준적이 많았다. 길거리를 걷다가 피우던 담배 연기는 뒤따라오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의도하지도 않은 간접흡연을 하게 만들었고 아파트 계단에서 당당히 태웠던 담배는 계단을 이용하는 이웃들에게 불편함을 안겨 주었다. 물론 가장 큰 피해자는 우리 가족 이었다. 아무리 밖에서만 피운들 소용없는 니코틴이란 것을 집으로 옮기고 다녔다.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담배속의 니코틴은 두통으로 고생하고 있는 프랑스 왕비가 담배를 흡입하고 효과를 보자 진상을 올린 장 니코의 이름에서 지어진 것이다. 폐암으로 돌아가신 토지의 작가 박 경리 선생과 소설가 이 청준 선생, 처칠, 피카소, 헤밍웨이도 잘 알려진 애연가 들이다.
담배는 누가 언제부터 피우기 시작 했을까? 담배의 원산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미국, 러시아, 일본의 연구 결과에 하면 3000 ~ 40000 년 전 남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이 재배하기 시작했고 의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라 종교의식이나 피로회복제, 질병치료에 이용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너무 이기적 이었다. 병원 창밖을 바라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24년 간 나를 지배했던 ‘ 담배와의 한판 싸움을 해보자. ' 라는 승부욕이 생겼다. 담배와의 담판을 짓고 이제부터 전쟁이다. 그렇게 해서 담배 끊은 사람하고 상종을 하지 말라는 그 만큼 독한 마음을 가진 농담속의 사람이 되었다.
정말 죽을 만큼 힘이 들었다. 담배 한 모금 깊이 흡입하고 싶은 유혹이 나를 끊임없이 흔들었지만 그때마다 이를 악물고 참았다. “ 그게 그렇게 힘들어 ? " 혹자는 이해를 못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정신력과의 싸움에서 승리 했고 마침내 이겨냈다.
단순계산을 해보자. 하루 한 갑을 피운다고 가정하면 4500원×30일= 135000원. 135000원×12개월= 1620000원. 1620000원×20년 = 32400000원 단순 계산을 해도 웬만한 고급 승용차 한 대 값이다. 앞으로 죽을 때 까지 계속 담배를 피운 다면 건강은 물론 상당한 금액의 금전적인 손해까지도 감수 하며 살아야 한다.
“ 인생 뭐 있어 ?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 거지 뭐. 팔십 넘은 할아버지도 담배 태우시는데 건강에 아무 지장도 없더라. 다 자기 팔자를 타고 난 거야.” 여전히 골초인 매형의 지론이다. ' 글쎄, 과연 그럴까 ? ' 앞날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흡연을 하게 되면 그 만큼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결국 나는 담배를 끊었고 케케묵은 냄새를 달고 다니지도 않으며 나의 뇌는 항상 맑은 엔돌핀이 흐르고 있다. 금연을 시작한지 어느새 2년이 다 되어간다. 건강도 훨씬 좋아졌고 감기에 잘 걸리지도 않는다. 이제는 담배 연기 근처에만 가도 역겨운 냄새가 나서 잠시 숨을 참고 지나간다.
금연을 하는 과정은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선 느낌을 경험 해 본 것은 살면서 가장 잘했던 일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나는 하루 담배 한 갑 4500원을 한 20년 꾸준히 모아 멋진 고급 승용차와 함께 멋지게 늙어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