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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매일 언니를 만난다.    
글쓴이 : 김숙진    18-11-13 11:59    조회 : 5,551
언니, 여기 한국에 남해 독일 마을이라고 언니 알어?”
어디라구? ”
아니, 여기에 독일에서 일했던 언니같은 사람들이 남해에서 마을을 이루어 산다는 데?”
응 알어 알어. 그거 독일 방송에서도 나왔더라야
알고 있었구나? 그럼 언니도 좀 생각해 보지 그랬어?”
야야. 여기 식구들이.. 나 혼자면 모르지만 마틴 아빠도 그렇고..”
 
1974년도 진달래꽃이 휘늘어지게 필 무렵이었지 싶다. 큰 언니는 내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예쁜 투피스를 입더니만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간다고 했다. 그 당시 초등학교 3학년 이었던 나는 엄마를 대신해 키워주었던 언니가 매일 독일어 공부하면서 어디 간다 하긴 했는데 막상 헤어진다니 마음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만 같았다.
3년간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그 후 일을 잘 하면 더 있을 수도 있고, 돌아올 수도 있다며 큰언니는 공항에서 나를 몇 번 이나 끌어안고 잘 있으라며 떠났다. 그 당시 너무나 슬퍼 멍하니 언니만 바라보았는데 솔직히 한 편으로는 큰언니가 꾀나 자랑스러웠다. 그 당시에는 비행기를 타고 어딜 간다는 그 자체가 큰 뉴스거리가 되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비행기 타고 외국나간 큰언니 자랑을 오랫동안 입에 달고 다녔다.
그러다 철이 들면서 큰 언니가 국가차원에서 이루어진 독일의 기피업종에 지원한 인력수출단원들의 한 명이었다 것을 알게 되었고, 독일에서 호강하며 일하는 것이 아니라 무척 힘들게 일하여 번 돈을 거의 다 집으로 보낸다는 사실을 알았다. 또한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이미 고국에 돌아왔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런데 나의 큰언니는 돌아오기는커녕 계속 계약기간을 연장하며 집안의 경제를 살리고 있었던 것 이었다. 팔남매의 큰 딸과 막내딸로 만나 유모 같았던 큰언니지만 내가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생각에 큰언니가 불쌍했고 진저리나게 보고 싶었었다. 22살에 독일로 간 큰언니가 9년 만에 2달간 휴가를 얻어 고국에 온다는 소식을 받았을 때 우리가족은 울며 웃으며를 반복했었다.
공항에서 큰언니는 안아보기도 버거울 정도로 커버린 나를 보고 아주 놀라해 했던 그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큰 언니는 그 당시에 한국에서는 볼 수 도 없었던 끈 달린 밍크 털모자를 선물로 가져와 내게 주었는데 징글맞게 앙증스러웠고 기가막히게 예쁘고 보드라웠다. 그러나 딱 보기에도 내가 쓸 수 없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었다. 그래도 난 어떻게든 쓰고 싶어 머리통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애를 썼지만 어찌나 작던지 내 머리통에 상투처럼 매달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림의 떡으로 낙찰 되었다. 큰언니의 막내 동생은 당신이 떠난 날 멍하니 바라보았던 공항에서의 내 모습이 기억되어 있었다. 그 그림의 떡을 들고 너무나 미안해했던 큰언니, 세월의 감각을 되찾은 큰언니는 독일로 돌아가 나에게 맞는 선물을 보내주었다. 독일에서도 알아주는 좋은 만년필도 보내왔고, 각종 초콜릿은 물론 내 결혼식에 참석은 못하지만 예복으로 만들어 입으라고 비로도원단도 보내주었다. 언니는 시간 흘러 세 번 더 고국을 방문했고, 독일인과 결혼해 3남매 낳고 독일에서 편안하게 잘 살고 있다. 독일에서는 분명 한국인이고, 한국에서는 꼭 독일인 같다는 큰언니, 그래서 언니는 고국의 향수를 못 잊는 한국인 독일 할머니이다.
 
언니, 언니도 한국 나와서 살면 좋은데... 무릎 수술해도 가보지도 못하고
그러니까.. 나도 한국에 가면 좋지.. 그런데 말이 쉽지. 인생의 절반을 더 넘게 여기 서 살았으니.. ”
 
한국에서 살면 어떻고, 독일에서 살면 어떠랴, 돌고 돌아 멀고 먼 길 살아보겠다고 비행기 타고 날아가 지금 껏 잘 살고 있으면 된 것 아니겠는가? 또한 한국에서 그들에게 애국자라며 그 당시 한국경제를 한 계단 올라서게 한 주역들이라고 박수 쳐주니 나의 큰 언니는 애국자 이다. 게다가 세계발전 이라는 이름 앞에 옆에 없어도 있는 것처럼 영상통화 할 수 있고, 수시로 사진도 주고 받으며, 실시간 톡, 톡전화도 할 수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대박 아닌가? 생각하며 언니 보고픈 마음에 한 순간 튀어 나온 갈망의 마음을 다시 꼭꼭 눌러 넣었다. 그러고 보면 지구 속 한 명 한 명 나름대로 참 열심히 살아 세계화를 만든 우리 인류는 대단한 능력자들임이 틀림없다. 멀리 멀리 떨어진 그리움과 보고픔까지도 최첨단 교통, 통신으로 모두 다 함께 가까이 살아가는 지구촌 시대를 만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 언니 거기 새벽인데 잠 안 오는구나? 무슨 일 있어?”
아니 없어, 거기가 저녁이니까 내가 전화한 거지. 별고 없지?”
그럼 그럼 없지.. ”

노정애   18-11-16 20:32
    
김숙진님
반갑습니다.
먼저 저희 한국산문에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아주 잘 쓰시는 분이군요.
읽기가 편안하고 좋습니다.
생생한 느낌이 김숙진님이 옆에서 이야기하듯 느껴졌습니다.
한국사에 남는 가슴 아픈 이야기를 너무나 잘 쓰셨습니다.

글에 좀더 욕심을 부려 몇 마디 올립니다.

'큰 언니는 내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예쁜 투피스를 입더니만 비행기를 타고 독일로 간다고 했다.'
이 문장을
'큰 언니는 내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예쁜 투피스를 입고 독일로 가는 비행기를 탄다고 했다.'
' 싶었었다.' ---> '싶었다.'
'반복했었다' ---> '반복했다.'

이런식으로 문장을 조금씩 다듬으면 더 좋은 글이 될것 같아요.

처음 올리신 글인데도 정말 잘 쓰셨습니다.
다음 글을 기대합니다.

요렇게 바꾸시는게 좋을것 같아요.
'시대였기 때문이다' ---> '시대였다.'
     
김숙진   18-11-19 19:10
    
노정애님
 
    도움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참고하여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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