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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이름모를 풀꽃은 봤을까?    
글쓴이 : 조영숙    20-05-09 09:07    조회 : 5,790

봄의 들꽃들을 찾아 강뚝을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23년이상 아르바이트를 한 불고기집 앞에서 발이 멎었다. 이름모를 이쁜꽃이 무너진 담을 덮으며 피고있었다. 언제부터 저 풀꽃이 피어있었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가게안으로 들어가 저 풀꽃을 좀 채취하겠다고 말하니 옛날부터 함께 일해온 주방장이 '도우조-도우조-(사양말고 얼마든지 해라는 권유의 말)'하며 따라나온다.


아주 작은 보라색꽃을 피우는 풀꽃인데 단독으로 피지않고 무리를 지어 피어있다. 이파리는 마치 담쟁이 덩굴 이파리처럼 옆의 이파리를 떠받쳐주고 떠받쳐주며 그렇게 무리지어 피어있다.


이 불고기집에서 23여년간 일을 해왔으니 내 일본생활의 많은부분이 중첩되는 세월이다. 그 세월을 해마다 피는 저 풀꽃은 보아 왔을까?

많은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두드러진 일 꼽으라면 이곳에서 열심히,성실히 일하며 동생들 공부시키며(이끌며) 내집 마련한것이다.내집마련은 세계 어느곳이나 서민들의 소박한 최대의 꿈이 아닐까 싶다.

일을 하다가 혹시 모를 해고를 당해도 그래도 자기 보금자리가 있으면 내일의 꿈을 등따뜻하게 다시 꾸어볼수 있고, 노후에 막막해도 자기집이 있으면 밥이야 어떻게든 먹을것이다고 안심한다.. 그렇게 자기집은 좁든 어떻든 서민들의 아늑한 안식처이자 최후의 보루이다. 직장전근때문에 집마련을 안하는 세대들도 있고, 취향따라 옮겨산다는 여유로운 관점도 있고,한국에선 고위 공직자들이 집한채만 가지자는 운동도 나오고 있는 이시대에 저 풀꽃처럼 마련한 작은 우리집 얘기가 떠오른다.


집없이 출발한 우리 신혼부부도 알뜰히 일하며 자기집 장만을 위해 저축을 조금씩 해나갔다. 그런던 어느해 우리는 본의아니게 자기집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가 세들어 살고있던 아파트의 주인은 요꼬하마에 살고 있었는데, 그 주인집에 화재가 나서 우리들을 내보내고 그자리에 새로이 집을 지어 자신이 들어와 살겠으니 나가달라는것이다.

그때 같은 아파트에 4가구가 살고 있었던것으로 기억하는데, 우리모두들은 자신들이 내는 월세의 2년치이상의 돈을 받아 나왔다. 새로이 이사할려면 비용이 들것이니 그돈으로 새곳을 찾아서 나가달라는 것이다.

열심히 저축해온것에 주인에게 받은돈까지 합쳐서 지금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오게 되었는데, 솔직히 놀랬다!


내가 한국에서 봐온식이라면 그냥 몇날몇일까지 나가라! 이고 세들어 사는 사람들은 어려운 상황속에서 자신들이 가진 조그만 것을 쪼개어 사용하느라고 미래는 더 작아지고 더 힘들어 질것이다. 우리집이 한국에서 그렇게 악물고 살아왔으니 잘 아는 상황이다.

물론 그 일본인 주인이 그런 보상을 안해줬어도 난 열심히 내집마련의 목표를 위해 살아왔을것이지만, 공산권 사회주의가 아닌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시스템을 갖추고 나라 운영을 하는 두사회가 너무나 질적으로 다르다는게 그 당시의 놀란소감이다.

한국사회는 한국식으로 진전하고 있고,일본사회는 일본인들의 책임하에 운영되고 있겠지만,내 조국사회에 가진 나의애정은 내집마련의 일화와 함께 늘 안타깝게 떠오른다.


내집을 갖기전, 허술한 아파트에서 살때 한국동생들이 일본으로 공부왔다.둘째여동생,첫째여동생남편, 막내 남동생 모두 그 불고기집에서 함께 일하며 학비를 벌며 공부했다.허술하고 좁은 아파트 방은 함께 모여서 밥도먹고 생일파티도 하고 어디로 놀러갈 계획도 꾸미고 내일의 꿈도 꾸고 그야말로 작은 천국이었다.몸은 항상 일때문에 피곤했고, 함께 일하는 일본인들과 정서적으로 맞지 않아 몸보다 더 고생했지만, 동생들과 함께한 가난한 그날들은 신나는 날들이었다.

주위의 한국인 친구들이 하는말이 있다. '너야 니 가족,동생들이니 돌보는게 당연하겠지만, 니 남편이 정말 대단하다. 보통같으면 넌 이혼감이다.그렇게 도와주는 사람없다. 잘 해드려라' 하면 함께 깔깔 웃었지만 생각할수록 진국이 배여나는 말이다.


재일동포 2세남편은 자신이 배움이 없기 때문에 배우고자 오는 처갓집 동생들에게 자신이 조금이라도 힘이된다면 기쁘다고했다.재일동포 2세남편은 당시 일본사회의 차별과 동포사회의 빈곤때문에 중졸을 겨우했다.그 차별과 빈곤은 현재도 옅어진듯, 숨은듯,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오늘양식을 벌며 살아가야 하는 동포들은 그런건 알아도 본체만체 하면서 앙 다물고 매일 땀흘려야 한다.


일본의 세월은 동포들의 땀을 삼키며 째칵째칵 흘렀다. 남편은 나랑 결혼한후로도 일때문에 한국에 자주나가지 못햇다. 동생들 결혼식때뿐이다. 그리고 딸내미결혼식때.이제는 일년에 한번씩은 함께 나가서 늙으신 어머니와 형제들 만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코로나가 막았다.

'형부는 건강하제?' 동생들이 카카오톡 무료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무너진 담을 덮는 이파리처럼 넘어온다.

옆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넘겨준다.' 어이,겐끼까이?(건강하냐?)' '오니상,겐끼?(형부도 건강해?)'

시공을 넘어 일본어가 보라색꽃을 피운다.


노정애   20-10-20 12:44
    
조영숙님
이 글 잔잔하고 좋습니다.
아주 잘 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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