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국수 한 그릇
신문주
‘시집 안 가기 참 다행이다.’ 감자 칼국수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어머니께서 혀를 차셨다. 두 시간 넘게 땀 흘린 보람도 없이 나의 첫 칼국수는 완패였다. 분명히 요리법대로 따른다고 했는데, 면은 너무 퍼지고 감자와 애호박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며칠 뒤 두 번째 칼국수에 도전했다. 어머니께서 이번에는 면이 알맞게 삶아졌다고 칭찬하셨다. 첫 번째와 달리 채소 넣은 멸치육수를 먼저 만들고 면은 따로 삶았다. 그런데 칼국수에만 온 정신을 쏟느라 양념장을 점검하지 못했다. 내가 간을 못 맞추니 어머니께서 양념장을 찾으실 것을 미리 알았어야 했다. 얼마 전 섞었던 양파 장아찌 국물 때문인지 양념장이 쉬어 있었다. 어머니는 상한 양념장 때문에 이번에도 칼국수를 드시지 못했다.
올해 여든여섯 되신 어머니는 당신과 너무도 다른 딸을 이해할 수 없으신 모양이다. “나이 오십이 넘도록 칼국수 하나 못 끓이다니.”하신다. 어머니는 열서너 살 때 제사상을 혼자 차려 온 문중에서 칭찬이 자자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머니 이모님 중에 나와 비슷한 분이 계셨다고 들었다. 그 이모님이 상을 차려 올리면 당신의 어머니가 상을 둘러 엎고, 죽을 쑤어 올리면 다시 만들어 오라고 수도 없이 내쳤다고 한다. 그때는 음식을 못 하면 뺨을 맞고 머리채를 휘어 잡히기도 했다고 하니 내가 요즘 세상에 태어난 건 천만다행이다.
재작년 어머니와 합치면서 얼떨결에 왕초보 요리 실습이 시작되었다. 음식 솜씨가 없고 속도도 느린 나로서는 하루하루가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조각배 같았다. 답답한 마음에 유명 요리학원에 가서 하루 수업을 들었다. 정규 강좌를 신청하려다가 사전답사를 해보기로 했다. 그날 요리는 돼지갈비찜과 오이냉국이었다. 나까지 수강생이 세 명이었는데, 다른 수강생들은 민첩하게 음식을 만들어 준비해 온 그릇에 담아 갔다. 나는 강사에게 질문할 것도 많고 손이 느려서 이십여 분은 더 걸렸다. 다음 강좌가 있었으면 마치지 못한 채로 나와야 했을 것이다. 만들고 보니 돼지갈비찜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오이냉국은 내가 알던 맛이 아니었다. 집에 와서 오이냉국을 두 번 더 만들어 봤는데, 어머니께 모두 퇴짜를 맞았다.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알 수 없는 직감과 능력이 있는 듯하다. 서울의 한 유명 호텔 조리팀장 유재덕 씨는 “훌륭한 요리란 대부분 복잡하지 않다. 그저 좋은 재료가 가진 고유의 맛을 찾아 살려내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식재료의 “고유한 맛”을 찾아내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내는 초능력자들이 무척 부럽다. 내가 교사로 있던 지방 중학교의 교장 사모님은 요리 솜씨가 뛰어나기로 소문이 났다. 큰 가마솥에 소고기국을 끓이면서 간장병 채로 부어도 맛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고들 했다. 얼마 전 백종원 씨가 떡볶이를 만드는 동영상을 보았는데, 식재료와 조리 도구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습이 무슨 묘기 같았다. 여유와 자신감이 넘치는 그의 모습이 요리책을 보면서 그대로 따르려 애쓰는 나와 너무 달랐다.
내가 요리를 못하는 데는 여러 원인이 있다. 우선, 어릴 때부터 음식을 만드는 일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철없던 중학교 시절에 “밥하고 빨래하는 일이 대수냐?”라고 어머니께 대들었다고 한다. 전통적으로 여성이 해 오던 일에 대해 반항심이 일었던 모양이다. 특히 줄곧 자취생활을 하면서 음식은 맛보다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식으로 준비했다. 게다가 건강을 위해 싱겁게 먹는 습관이 들어 음식 간에 대한 감이 없다. 내 입에 맞게 하면 어머니께는 “맹탕”이 되고, 짐작으로 간을 세게 하면 너무 짜게 된다. 그래서 어머니는 ‘넌 요리를 할 수 없어. 간을 못 맞추니까.’라고 푸념을 하신다. 그런데 어머니는 못 드시겠다 하시지만, 나는 내가 만든 음식을 아무 문제 없이 먹을 수 있다. 그러니 음식 솜씨가 늘기 어렵다. 이렇게 요리 상식과 손맛이 없는 내가 어머니 입맛에 맞추기는 헤라클레스의 13번째 과업이 될 법한 일이다.
어떻게 하면 요리를 잘할 수 있는지 요리 강사에게 물었더니, 많이 해 봐야 는다고 했다. 요리 하나를 완전히 습득하려면 최소한 다섯 번은 만들어야 한다고도 들었다. 외국어를 학습할 때 “연습이 왕도다(Practice makes perfect.)”라고 하는데 요리도 마찬가지라면 내게도 희망이 있다. 이제까지 써 보지 않던 근육을 만드는 일이니 조급함을 버리고 끈기 있게 요리 수련을 하려 한다. 어머니 앞에 맛깔스런 칼국수 한 그릇을 내놓을 기적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