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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과 추억 사이에서    
글쓴이 : 신영애    20-11-23 10:43    조회 : 6,044
   기억과 추억 사이에서.hwp (16.5K) [0] DATE : 2020-11-23 10:43:32

기억과 추억 사이에서

신 영 애

    누구에게나 기억의 어느 단편으로 인해 가슴이 저릿해지거나 혹은 따뜻해지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물론 많이 혼나고 속상했던 기억들도 있겠고, 풍족하지는 않았어도 풍요롭게 느껴졌던 시간도 있을 것이다. 또한, 그 기억들은 어떤 음식이나 물건, 혹은 여행지에서 자동으로 떠오를 수도 있고 일상생활 속에서 문득문득 생각날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의 어떤 경험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가슴 뭉클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대체로 나는 말이 없고 조용한 아이였다고 스스로 기억했으나, 내 친구들과 형제들은 나를 활동적이고 외향적인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 집은 초등학교에서 걸어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곳에 있었다. 친한 친구들은 학교에 가기 위해서 늘 우리 집에 들러 함께 학교에 갔다. 또 학교 운동장은 우리들의 놀이터이다시피 해서 엄마의 밥 먹으러 오라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밤늦도록 놀기도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담임선생님께서는 아침 일찍 학교에 오는 나에게 칠판에 아침 자습할 내용을 적어 놓으라고 하셨다. 그렇게 하고 나면 선생님은 수고했다면서 단팥빵과 우유를 주셨는데, 나는 그 단팥빵이 너무 맛있어 더욱 열심히 칠판에 학습할 내용을 썼다. 글씨를 또박또박하게 줄을 맞춰 잘 쓰려고 노력했던 것도 같다. 또 나는 4학년부터 6학년까지 육상 선수로 활동하였는데, 아침마다 수업 시작하기 전 학교 운동장을 달리는 연습을 했던 기억이 있다. 추운 겨울이면 아침에 달리는 게 싫어서 아프다고 꾀를 부리거나 늦잠을 잤다고 둘러대기도 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선생님은 다 알고 계셨으나 그냥 눈 감아 주신 듯했다. 육상 대회에 나갔을 때였다. 100m 달리기 출발선 앞에서 선생님의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언제 총을 쏘시나, 그러면 빠르게 뛰어나가야 하는데 하는 마음에 늘 손에 땀이 찼다. 나는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항상 친구들보다 몇 발자국 늦게 출발하였는데, 그래도 어린 마음에 이겨야 한다는 승리욕이 강했던 것 같다. 많은 사람의 응원 속에서 행여 발이 꼬여 넘어지거나 늦게 들어갈까 봐 며칠 전부터 걱정을 많이 했던 기억도 있다. 손등에 빨간 1등 도장과 함께 상품을 받아오면 엄마는 기특하다고 칭찬을 하셨다. 4학년 때는 심지어 웅변대회에 나가기도 했는데, 선생님께서는 수줍음이 많은 내게 아침 일찍 학교에 와서 연습하라고 하셨다. 게다가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나를 위해 매일 생달걀을 한 알씩 가지고 오셔서 먹으라고 하셨다. 왜 내 기억속의 조용하고 말없던 나에게 육상을 가르치시고 웅변대회에 보내셨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편식이 심하였음에도 지금과 같이 키가 클 수 있었던 것은 초등학교 시절 육상 선수로 활동하면서 열심히 뛰었던 것과, 우유와 빵, 특히 생달걀을 다른 친구들보다 많이 먹어서였기 때문이 아닌가싶어 지금은 감사한 마음도 든다.

    중학교에 들어가서 2학년 2학기가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 3학년 연대장 선배가 전학을 갔다. 교무주임 선생님께서 교무실로 부르셨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웅변하고 상을 받은 성적표를 보았다면서 연대장을 해보라고 하셨다. 사람들 앞에 섰을 때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서 못한다고 말을 했으나 소용없었다. 3학년 선배들에게는 한 학기만 남겨둔 시기라서 2학년 후배 중에서 누군가 해야 한다는 것인데, 내가 그 중에서 적임자라고 하셨다. 2학기 첫 운동장 조회가 있던 날, 교무실 선생님들 앞에서 몇 번 연습하고 운동장에 모였다.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시기 위해 연단에 오르면 전교생들보다 높은 단위에 올라가서 구령했다. “전체 차렷~” “열중~쉬어!” “차렷~!” “교장 선생님께 경례!” 운동장 조회를 하는 동안 등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시간이 흐를수록 목소리는 점점 기어들어 갔다. 조회가 끝나고 들어오면 내가 모르는 전교생들이 등 뒤에서 내 자신 없어 하는 목소리를 흉내 내는 것만 같았다. 매번 조회 시간마다 한 시간이 열 시간 같았다. 3학년 올라가면 연대장을 새로 뽑을 거라는 말씀과 달리 나는 3학년에도 운동장 조회 때면 전교생 앞에 서야 했다. 하루빨리 중학교 생활이 끝이 났으면 하고 바랐다.

     몇 해 전 초등학교 친구들 모임에서 어린 시절 얘기가 회자되었다. 친구들은 당시 내가 웅변대회에서 외치던 모습을 용기 있는 모습으로 추억했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조회 시간에 구령하던 모습을 부러워하고 자랑스러워했다고 말해주었다. 또한 달리기를 잘해서 매번 상품을 받았던 것도 부러웠다고 했다. 친구들은 내가 칠판에 가지런하게 아침 자습을 필사해 놓던 모습, 친구들 앞에서 용기 있게 외치던 모습, 달리기 선수였던 나를 그렇듯 좋은 모습으로 기억해주어서 신기하고 놀랍기도 하면서 너무나 고마웠다.

     여전히 나는 사람들 앞에 서야 할 일이 생기면 손에 땀이 쥐어지고 괜히 얼굴에 근육이 경직된다. 잘 나오던 목소리도 저절로 기어들어 가고 심장이 두근거린다. 또한, 얼굴은 붉어지고 입술은 내가 꾹 다물어도 자꾸 떨린다. 얼마 전 어느 모임에서 임원을 선출하는 일에 참석하게 되었다. 나는 예비 후보자들을 안내하는 일을 하였는데, 후보자 중 한 분이셨던 어느 어르신을 안내하게 되었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신 그분은 내 손을 잡으시며 떨린다고 하셨는데 그 떨림이 내 손끝으로 전해져 왔다. 그때 나는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많은 사람이 그렇게 긴장하고 어려워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을 만큼 두렵고 떨렸던 내 어린 시절의 단편적인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기쁨과 슬픔, 아픔들이 더해져 추억이라는 멋진 선물로 돌아온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의 어떤 기억들이 먼 훗날 나를 추억하는 소중한 선물이 되기를 기대해 보면서 오늘도 힘차게 하루를 시작한다


노정애   20-11-27 20:40
    
신영애님 글 잘 읽었습니다.
좋는 추억이 많으신 신영애님이 많이 부럽습니다.
이 글은 첫 단락은 빼셔도 좋겠습니다.
글 속에 잘 들어나니 따로 작가의 감상은 쓰지 않으셔도 되는것이지요.   
'나는 말이 없고 조용한 아이였다고 스스로 기억했으나, 내 친구들과 형제들은 나를 활동적이고 외향적인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다. '
이 단락은
'어린 시절 얘기가 회자되었다.' 다음에 넣어주시면 될것 같아요.

4학년 이야기 부터는 한 단락만 나눠주세요.

누구나 대중 앞에 서는것는 떨리는 것이지요. 아이의 시선에 잘 맞춰서 잘 쓰셨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수고많으셨어요.
     
신영애   20-11-29 19:25
    
노정애 선생님
안녕하세요

졸작을 올리면서 가슴 조마조마, 부끄러운 마음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칭찬을 해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너무 기분이 좋고 행복합니다.

선생님의 고견을 너무 감사하게 생각하며
저의 졸작에 잘 녹여보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선생님의 건강을 기원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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