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
신 영 애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남편이 문 앞에 놓인 택배 상자를 현관 앞으로 들여놓는다. 인터넷으로 새벽 배송 주문을 한 신선식품이 도착했다. 어젯밤에 주문했는데 아침 6시에 이미 도착한 것을 보면서 정말 빠르긴 빠르다고 생각했다. 새벽 배송을 위해 누군가는 아침 일찍 새벽잠을 물리치고 일어나야 하겠다고 생각하니, 며칠 전 뉴스에서 나왔던 어느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가 생각났다. 하루 24시간 가운데 14시간 일을 한다고 하였다. 그들의 엄청난 노동시간과 열악한 근무환경, 그리고 부당한 대우가 문제였다. 하루에 배달해야 하는 물건의 개수는 그들이 근무시간 이내에 도저히 전달할 수 없는 수량으로, 식사 시간이나 휴식 시간마저 반납한 채 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기업은 ‘스피드 경영’을 내세우며 속도를 강조하고 있고, 실제로 속도가 생명인 배달이나 택배업체의 경쟁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하루에 미처 다 소화할 수도 없는 물건을 꾸역꾸역 밀어 넣으며 ‘빨리빨리’를 외치고 있으니 과부하가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에게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양질의 환경을 제공하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어느 노동자의 죽음은 어쩌면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인 것 같아서 우울했다.
지난달 초, 친구와 둘이 영화를 보기로 약속을 잡았다. 친구는 만나자마자 밥부터 먹자고 했다. 영화만 볼 줄 알았는데, 저녁까지 먹을 거라면 더 일찍 약속을 잡을 걸 그랬다. 시간이 빠듯했다. 우리가 간 곳은 마라탕 전문 고기 뷔페 점이었다. 친구는 그 식당의 할인권이 있는데,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먹고 가자고 재촉했다.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나는 무엇이든 미리 준비하고 계획해서 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친구는 즉흥적이다. 배고프다는 친구의 손에 끌려 들어간 식당에서 내 마음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친구는 영화보다는 마치 나와 밥을 먹으러 온 것처럼 들떠있었다. 그런 친구에게 밥을 그만 먹고 빨리 가자고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즐거워하는 친구를 앞에 두고 내색도 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나도 마음을 비워야만 했다. 광고가 끝나는 시간까지만 들어가면 된다고 생각했다가, 영화 시작 부분은 좀 못 봐도 괜찮다고 나를 위로했다. 그러다가 그냥 친구에게 영화를 포기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친구는 지금이라도 뛰어가면 되니까 일어나자고 한다. 식사하고 소화를 시킬 시간도 없었다.
영화관 입구에서 열을 체크하고, 코로나19 인증도 하느라고 시간이 또 지체되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수가 없어서 계단을 뛰어가자는 친구 말을 듣고 뛰기 시작했다. 영화는 막 시작한 듯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겨우 앉아서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영화가 한참 재미있어지고 관객들은 여기저기서 웃기도 했다. 갑자기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내 손을 꽉 잡았다. 나는 친구를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친구에게 이상이 생긴 게 분명히 보였다. “너 왜 그러니?” 하고 묻자 친구는 힘이 없는 목소리로 체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관에 오기 전 들린 식당에서 나는 마음이 조급해 별로 먹지 않았는데, 친구는 배가 고팠다면서 허겁지겁 먹었던 게 화근이 되었나 보다. 아파하는 친구를 그냥 둘 수가 없어 데리고 나왔다. 식은땀을 흘리면서 배를 움켜쥐고 있는 친구에게 잠깐 앉아서 기다리라고 하고 약국으로 뛰어갔다. 자초지종을 말하고 알약과 소화제를 사 와서 친구에게 건넸다. 약을 먹었음에도 친구는 쉽게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영화관 의자에 길게 모로 누워 신음을 냈다. 저녁 식사할 때 영화는 다음에 보자고 미리 말하지 못한 게 후회가 되었다. 그랬으면 친구가 급하게 밥을 먹지 않아도 되었을 테고, 그러면 이런 사달이 나지 않았을 텐데. 약을 먹고도 안 되면 병원 응급실로 가야 한다는 약사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마침 가까이에 대학병원이 있으니 그리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참 후에 일어난 친구는 풍선 바람 빠지는 듯한 트림 소리를 내더니 이제 좀 괜찮아졌다고 했다. 친구는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싶었다고 했다. 임도 보고 뽕도 딴다더니 두 가지를 짧은 시간에 다 해내려다 그렇게 한 가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말았다며 미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영화는 나중에 다시 봐도 되고 또 못 보면 어떠냐고 달랬지만, 놀란 가슴은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우리 속담에 ‘빨리 먹는 밥이 체한다.’라는 말이 있다. 서두르다가 오히려 목표에 도달하기도 전에 일을 망칠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이고, 어떤 일이든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나무를 빨리 자라라고 충분한 햇볕이 없이 물만 준다면 튼튼하지 못하고 웃자라기만 하여 결국은 작은 바람에도 뿌리가 뽑혀버릴 수도 있다. 좀 부족하면 어떻고 느리면 어떤가. 느림의 미학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적당한 휴식과 안정을 취할 시간조차 없이 그저 정해진 시간 내에 빨리 배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마치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급하게 먹은 저녁 식사가 결국 소화되지 못하고 탈을 일으킨 것처럼 생각되어 안타까웠다. 조금 느리더라도 천천히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줌으로써, 우리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고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