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2020년 ‘개린이날’
신문주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 ‘개린이’는 “어린 개를 이르는 말[로] 개와 어린이를 합친 말이다.”로 되어 있다. 점차 많은 수의 반려인들이 어린이날을 ‘개린이날’과 ‘묘린이(어린 고양이)날’로 삼고 있다. 그런데 네이버를 검색해 보니, 개린이날을 5월 5일뿐만 아니라 4일, 6일, 7일, 12일, 14일에도 기념하고, 한 달에 한 번 강아지에게 선물하는 날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언제 개린이날이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네이버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은 2016년 한 반려동물용품 회사의 개린이날 대회다. 코로나 사태 속 2020년에는 개린이날 관련 기사 수가 급증했다. 이렇게 개린이날이 알려지면서 기념 산책, 바자회, 원데이 클래스, 캠프파이어, 강아지 전문 티브이 채널 행사 등이 열리고 있다.
2020년에 ‘개린이날’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다. 개린이날을 축하하는 반려인들이 비싼 수제 간식과 영양제, 옷, 장난감 등을 사 주고 반려견들과 식당, 애견 카페에 가거나 ‘개족사진’(개+가족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10년 된 몽실이는 노령견이지만 반려동물을 위한 특별한 날을 기념하고 싶었다. 아쉽게도 투병 중이신 어머니 곁을 오래 비울 수 없어서 몽실이와 잠시 산책을 하기로 했다. 평소 돌던 동네 주변 대신 산책로로 향했다. 지름길을 찾다가 그날따라 안 가 본 길을 택했다. 몽실이는 호기심이 발동해 골목길 가장자리에 코를 킁킁거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열린 문으로 푸들 강아지가 난데없이 튀어나오더니 몽실이에게 돌진했다. 몽실이를 잽싸게 들어 올리자 푸들은 내 발목을 물었다. 이빨 자국이 선명한 피부에서 피가 났다. 통증보다 광견병에 대한 불안으로 부랴부랴 집에 돌아왔다.
어머니께는 아무 내색도 하지 않고 급히 내 방으로 가 응급처치법을 검색했다. 흐르는 물에 비누로 10분 정도 상처를 씻으라고 했다. 물로 씻고 식염수로도 수도 없이 씻은 후 소독약을 발라 일회용 반창고를 붙였다. 그런 다음 대여섯 군데 정형외과에 전화했지만 마침 공휴일이라 모두 휴진이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다음 날 동네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파상풍 주사를 맞거나 항생제 복용을 하라고 했다. 근육주사를 맞지 말라는 주치의의 당부가 떠올라 항생제와 소염제를 2주간 복용하기로 했다. 2주가 되니 상처가 아물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의사는 상처용 연고를 주면서 하루에 두 번씩 6개월간 바르라고 했다. 반년 동안 꾸준히 연고를 발랐지만, 지금 내 발목 뒤쪽에 일원 동전 크기의 짙은 색 점이 남아 있다.
그날 사고로 많은 걸 느끼고 깨우치게 되었다. 먼저, 이 정도로 일이 마무리되어 감사하다. 통증이 계속되고 독한 약을 먹을 때는, 날 물었던 푸들과 그 주인을 원망했다. 내 고생을 몰라 주는 몽실이가 야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몽실이가 물렸으면 한 달은 족히 다리에 고정붕대를 해야 했을 것이다. 만일 내가 맹견에게 물렸더라면 목숨을 잃었을지 모른다. 또한 강아지가 본래 야생 동물임을 새삼 깨달았다. 인간과 공생하면서 순화되기는 했으나 그의 조상 회색 늑대의 습성이 감춰져 있다. 유기견들을 키우며 시집 『개의 노래들 (Dog Songs)』을 펴낸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Mary Oliver)도 강아지를 귀엽게만 보는 것은 인간의 편견이라고 했다. 개는 우리와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지만, 언제 공격성이 발동할지 알 수 없다. 이제는 몽실이와 산책할 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른 강아지들이 오는지 주위를 살핀다. 또 되도록 발목을 덮는 튼튼한 양말과 바지를 입는다.
아이가 없는 부부나 1인 가구, 비혼일 경우 반려동물은 특별한 가족이다. 요즘에 어린이와 반려동물의 학대와 유기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보통 반려인들은 반려동물들을 “자신의 어린 자식을 대하듯 소중하게 여[긴다]”(박현욱, 『서울경제』 2020.4.26.). 강아지 평균 수명이 11년에서 15년 정도인데, 잘 걷지도 못하는 20년 된 강아지를 조심스레 산책시키는 반려인을 봤다. 노령견 강아지를 간병하느라 일 년 동안 친구도 못 만났다는 아주머니도 있다. 특히 정든 강아지가 떠난 후 애도하며 가슴앓이를 할 때 강아지는 이미 한 가족이다. 사실, 몽실이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가면 몽실이를 “아이”로 나를 “엄마”로 부른다. 몽실이를 목욕시키고 수건으로 닦고 드라이어로 말리는 걸 보고 여동생이 “꼭 아기 키우는 것 같네.” 했다. 얼떨결에 ‘엄마’가 되었지만 몽실이가 짧은 여생을 행복하게 살도록 정성껏 보살피려고 한다. 몽실이는 물론 모든 반려동물들이 개린이날 하루만 아니라 매일매일 가족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 수 있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