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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AL SOLUTIONS 에서    
글쓴이 : 최숙희    12-06-09 03:46    조회 : 16,517
공증할 일이 있어 POSTAL SOLUTIONS에 갔다. 9시까지 운동 클래스에 가야 하기에 8시에 여는 가게의 첫 번째 손님이 되려고 부지런을 떨었다. 항상 나보다 발걸음이 빠른 남편이 먼저 성큼 거리며 가게로 들어가는가 싶었는데, 큰 박스 두개를 들고 차에서 내리는 한 여자를 보고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박스 하나를 들어주며 문을 잡고 도와주는 것이 보였다.

가게는 주인 혼자 보고 있었기에 우리는 박스 가져온 여자 뒤에 서게 되었다. 주인의 전화 말소리를 들어보니 다른 점원은 9시에 온다고 한다. 별 수 없이 기다리는데, 요금을 정하려 무게를 달다가 박스를 흔들어 보고는 빈 공간이 많다고 말한다. 작은 박스가 돈이 절약되겠다며 사무실안에서 약간 작은 박스를 찾아 가지고 나온다. 포장을 뜯어 물건을 꺼내 옮겨 새로 테이프를 부치고 하는 동안, 여자는 차로 가서 긴 우산 두개를 더 가져왔다. 주인은 다시 안으로 들어가 가늘고 긴 박스를 우산용으로 찾아왔다.

나머지 한 박스의 물건을 옮겨 새로 포장하여 요금을 정하는 일련의 모든 일들이 슬로우 비디오 보듯이 너무나 천천히 일어났다. 어딜 가나 빠지지 않는 미국 사람들 특유의 점원과 손님 사이의 쓸데없이 긴 수다도 오늘 따라 더 길고 지루했다. 간간히 오는 전화도 받아가며 주인이 혼자 일하는 사이에 30분도 넘게 흘러갔다. 가만히 남편 얼굴을 살피니 역시나 눈썹을 찡그리고 서있다. 집에 가서 옷도 갈아입고 밥도 먹어야 운동을 갈 터인데 오늘 따라 공교롭게 매너있게 행동한 남편이 원망스러웠다.

어차피 시간에 맞추기는 힘들게 되었다 싶으니 마음이 느긋해져서 천천히 가게를 둘러보았다. 그리 넓지 않은 가게 한편으로 메일박스가 죽 늘어서 있고, 중앙에 UPS, FedEX, 우체국 업무를 보는 카운터가 있으며 옆으로 작은 선물들과 카드가 전시 되어 있었다. 군인들 위문품 모으는 코너와 걸스카우트 쿠키 판매대가 꽤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것들은 가게 주인의 이익과는 상관이 없을 터였다.

여자가 가져온 박스 그대로 요금을 매겼으면 주인 입장에서 더 이익을 보고 일도 빨리 처리하여 더 많은 손님을 받았을 터인데, 눈앞의 이익 보다는 멀리 보는 장사를 하는구나 하고 한 수 배운다. 본인이 더 수고 하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줄이고 손님의 이익을 도모하였으니 손님의 신뢰를 얻게 될 것이다. 작은 가게의 운영이지만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여 양심을 파는 앏팍한 상술이 아니라 신뢰를 쌓아가며 긴 안목 장사를 하는 주인이 멋져 보였다.

뷰티서플라이를 남편과 함께 십년 째 하고 있다. 그전엔 한국서 송금되는 돈으로 살았기에 처음 가게를 인수 하고는 내손으로 돈을 벌게 된것이 마냥 신기했었다. 미국 같이 가게도 많고 물건도 흔한 곳에서 어떤 귀한 인연으로 우리 가게를 매일 찾아주나 생각하며 손님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초심은 간데 없고 타성에 젖어 하루하루를 보내온 것 같다. 표면상으로는 손님을 미소와 친절로 맞이하나 말 설은 이국땅에 와서 장사하느라 너희들 뜻 받이를 하고 있지만 무엇으로 보나 내가 한수 위라는 건방진 속생각이 싹텄었나보다.

어눌한 영어가 부끄러워 별 대꾸를 못했을 때에는 문제가 없었는데, 영어가 조금씩 들리니 손님을 가르치려 들거나 논쟁이 생겨 손님을 잃게되는 경우도 많아진다. 손님은 왕이라는 소매상의 기본자세를 잊었다. 더 열심히 발품을 팔아 다양하고 좋은 물건을 싼 값에 제공해야 하거늘 장사 덜 되는 것을 불경기 탓만 했다. 오늘 POSTAL SOLUTIONS 주인의 모습을 보고 비즈니스의 자세를 다시 가다듬어 본다. 미국 와서  아침에 출근할 곳이 생겼을 때 기뻐했던 처음 그마음을 생각하며 초심으로 돌아가는 리셋버튼을 눌러야겠다.

유시경   12-06-13 01:25
    
장사꾼인 저로서도 시간이 흐를수록 장사라는 게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초심을 잃지 않고 손님을 대해야 하는데 그 간사함이 정치와 별반 다르지 않거든요. 제 개인적으론 소매상의 기본 자세는 "손님은 가족이어야 한다"라고 생각해요. 손님을 왕으로만 대하니 나중엔 신이 되시더라는...ㅎㅎ
포스탈 솔루션스를 우리말로 풀이하면 '빠른 우편업무 대행"쯤 되는지요? (편의점을 겸한) 전체적으로 그런 느낌으로 읽었는데 제 생각이 맞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공증업무와 선생님의 개인사업간의 본질엔 다소 차이가 있진 않나 싶기도 하구요...
깔끔하고 간결한 문장 잘 읽었습니다. 건필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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