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상 지방출장을 자주 간다. 선박이 쉴 수 있는 부두를 건설하고 뱃길을 계획하는 일을 한다. 항구가 대부분 원거리에 있어 KTX를 자주 이용한다. 남쪽으로부터 벚꽃 소식이 전해올 무렵 목포에 갔다. 일이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되어 예약열차를 변경하려고 매표소에 들렸더니 특실, 일반실은 매진이고 유아 동반석만 남았다한다. 낯선 4인이 서로 마주보며 몇 시간을 동행해야 하는 꽤 불편한 구조다. 두어 시간 기다리는 지루함 대신에 불편함을 택했다. 맞은 편 좌석에는 4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부부가 서너 살 쯤 되는 사내아이를 데리고 탔다. 남편은 황소만한 덩치에 말 수가 적고, 여인은 후덕한 품세다. 좁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눈인사만 하고 책에다 코를 박았다. 조금 지나자 산만하고 졸음도 오고 눈길을 줄 데가 마땅찮아서 그냥 잠을 청했다. 얼마쯤 지났을까. 혼잣말이 귀를 두드린다.
‘옛날에는 기차여행을 하면 서로 달걀도 주고받으며 재미있게 보냈었는데......’라거나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는데......’하는 푸념어린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짜증이 나면서 웃음이 나왔다. 살며시 눈을 떴다. 조용히 하라고 주의를 줄까 하는데 아니다 싶다. 세 살 바기 아이는 엄마 품을 놀이터로 알고 있나보다. 올라타고 목을 감싸고 신이 났다. 아이의 즐거움은 엄마의 입으로 옮겨왔나 힘든 줄도 모르고 계속 무슨 말을 쉬지 않고 쏟아낸다. 그 모양새가 말을 걸게 했다. ‘어디 다녀오는 길이세요?’ 하고 물으니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가족여행으로 목포를 찾았는데 하룻밤도 머물지 않고 그냥 올라간다며 먹을거리도 별로 없고 볼거리도 신통찮았다며 불평을 해댄다. 들을 수도 딴청을 피울 수도 없는 묘한 상황이 되었다. 여행을 주도한 황소 같은 신랑은 눈만 뻐끔거린다. 듣기가 민망했던지 식당 칸에 다녀온다며 아이를 데리고 나간다. 기회는 이때다 싶었는지 시아버지 흉을 하기 시작했다. 시어머니 흉을 보는 며느리는 자주 접했지만 시아버지 흉을 보는 며느리가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동행한 직원이 ‘시댁이 어디세요?’하고 물으니 인덕원이라고 한다. 내가 얼른 말을 받아서 ‘내 직장이 인덕원 사거리에 있는데요.’ 하니 ‘아휴 어쩌면 좋아, 큰일 났네.’하며 놀라는데 그 모습이 조금은 모자란 여인 같다.
잠시 침묵하는 사이에 신랑과 아이가 돌아왔다. 아이와 아빠의 손에는 먹을거리가 가득하다. 과자 몇 개를 앞으로 내민다. 대화가 자연스럽게 아이에게로 옮아갔다. 아이가 몇 살이냐고 물으니 세 살이라고 한다. 직원이 자기 아이와 비슷하다고 답하니 바로 친구가 되었다. 나이가 몇이냐며 사생활로 이어졌다. 아이 엄마는 40대 초반이라고 한다. 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참 걱정이 많겠군요. 나도 40에 아이를 가졌었는데 벌써 대학생이 됐다고 하니까 그 아줌마, 눈을 껌벅거리더니 갑자기 웃으면서 말한다.
“입만 열면 뻥이야!”
그 말에 우리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환하게 웃었다.
동행한 직원이 사실이라고 말하자 반신반의한 표정으로 참 젊게 보인다고 말하면서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뻥이야’란 한 마디가 낯선 벽을 걷어냈고 갑자기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불편할 귀경이 뜻밖에도 편한 시간이 되어 세상살이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광명역에 도착했다. 바보처럼 보이는 젊은 아줌마가 모두를 즐겁게 만든 것이다. 가족이 작별하는 것처럼 따뜻한 눈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어쩌면 사람살이란 것도 자신이 보는 세상을 솔직하게 드러내야 맛이 나는 것 같다. 세상살이가 고단한 것은 상당부분 남들에게 잘나 보이려고 하는데 있음을 느꼈다. 조금 못나 보이고 부족하여도 괜찮다는 마음이 자신과 주변을 편하게 하는 비결이란 생각이 든다.
가끔은 ‘뻥’도 치고 웃으면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