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점에 서서
사무실 옥상에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구름이 잔뜩 낀 회색 하늘에서는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다. 아래를 내려다본다. 아담한 중학교 교정이 자리하고 있다. 낯익은 벽돌 건물, 운동장, 플라타너스의 짙은 녹음이 한 폭의 풍경화 같다. 수업 시간인지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다. 고요하다. 조화로운 풍경은 추억의 창을 열게 만든다.
중학시절은 내 인생의 황금기이기도 했고 가장 고통스럽던 시기이기도 했다. 멋진 학생복과 모자 그리고 가방을 만지작거리면서 입학식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중학생이 되면 문무를 겸한 멋진 신사가 되는 그림을 매일 그렸다. 입학식 이후의 생활은 천국, 바로 천국이었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에 도서관 문이 닫힐 때까지 책을 읽었다. 별빛을 친구 삼아 집에 오는 길에는 항상 꿈이 동행했다. 2년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호사다마’라는 말은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나보다.
천국에 서서히 마가 끼기 시작했다. 가세가 기울더니 가정에 크고 작은 골칫거리들이 생겼다. 처음에는 어른들의 일이라며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환경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인문계냐, 실업계냐의 선택의 순간이 온 것이다. 몇 날, 몇 달을 고민해도 뾰족한 답은 보이지 않았다. 불면의 시간들이 계속됐지만 누구에게도 답을 구할 수 없었다. 실업계 원서를 들고 담임에게 갔다. 담임은 무슨 일이냐고 묻는 대신에 나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사정을 얘기하고 도장을 받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잘못된 선택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목표에서 벗어난 길은 열심히 달릴수록 꿈으로부터 더욱 멀어질 뿐이다. 가쁜 숨을 내쉬며 뒤돌아보니 나 자신이 어디에 와 있는지를 잃어버렸다. 순식간에 너무 멀리 가버린 것이다. 길을 잃은 아이가 엄마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이다. 방향을 잃어버린 삶은 학업을 접고 고향을 찾게 만들었다. 고향은 어머니의 품이다. 산과 들과 바람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우쳐 줄 변함없는 친구들이다. 그 대지에서 나를 다시 찾았고 평상심으로 돌아왔다. 고향은 나를 또다시 도시로 내밀었다.
도시인으로서의 삶은 성취와 좌절, 행복과 불행, 두려움과 도전의 반복이었다. 잘못된 선택이 만든 운명과 한바탕 전쟁을 치루는 동안 자녀들이 모두 성년이 되었다. 은퇴를 할 나이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신은 인간의 운명을 예정해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삶의 원점에 다시 섰다는 느낌이다.
삶에서 얻은 하나의 깨달음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어떠한 결정을 하든 그 결과는 전적으로 자신이 지고가야 할 몫이라는 것도 배웠다. 중요한 결정은 대부분 불안한 마음을 동반한다. 결단은 현안에 대해 체크리스트를 작성하여 항목별 가치를 평가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여 멘토와 공유하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또한 모든 판단과 결정은 평상심을 유지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많은 우회로를 돌아온 삶을 통해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함을 배웠다. 살아있음으로써 언제고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다시 일서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런 가진 것이 없어도 가족과 사회를 위해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조건은 살아있어야 하고 평상심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전반기의 삶은, 야구로 말하면 포볼로 진루해서 후속타자들의 희생번트와 도루 그리고 희생플라이로 홈에 귀환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안타 하나 없이 1점을 낸 것이다. 그 1점은 가족과 친구 그리고 동료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후반기의 삶은 그들의 희생에 보답해야 하는 시간이다. 번트를 대고 희생플라이를 쳐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멋진 희생플라이를 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시작할 일은 마음공부다. 항상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다스려야겠다. 지난 시간의 실패와 성공은 현재의 삶에 시금석 역할을 할 때 가치 있는 경험으로 자리매김한다. 경험을 녹여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자 한다.
선택의 기로에 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멋진 희생플라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