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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몬 디톡스(수정본)    
글쓴이 : 최숙희    12-07-26 14:39    조회 : 10,199
레몬  디톡스

친정엄마가 한국서 나의 결혼사진을 들고 오셨다.  20여 년 전 것이지만 배경을 뿌옇게 처리해서 인지  인물이 뽀샤시하게 돋보인다.  자기 아버지를 닮아 머리가 많이 벗겨진 남편과 중년 이후 몸이 불어  두루뭉술해진 나를 사진 속 인물과 연결하기 어려운지 집을 방문하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꼭 한다.  “왜 이리 망가졌어?”  “예뻤네, 살 좀 빼”  “탈랜트 배종옥 닮았네”  “남자 집사님 하이모 하나 해 드려”

이민 1세라면 누구나 그랬듯이 생활기반을 잡느라  바삐 살았다.  당연히 외모를 가꿀 경제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 미국 온 지 15년이나 지나 모든  것이 자리잡힌 지금 그 말은 핑계밖에 안된다.  선천적으로 움직이기 싫어하고 맛있는 음식을 유난히 밝히는 나의 탓이다.  이제는 외모보다 건강상의  이유로 체중을 줄여야 함을  알고 있지만,  실천이 어렵다.    스트레스 받으면 식사를 못하는 사람도 있다는데 나는 만사 젖혀놓고  밥부터 먹으니 평생 살이 빠져본 적 없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밥을 굶어 본 기억을 가까스로 더듬어 보니 중고등학교때  체력검사를 앞두고  한두 끼가 고작이었다.  게다가  밥 한끼 먹으면  도로아미타불이 되곤 했다. 

한 달 전 정기검진에서 당뇨 위험군이니 체중을  줄이라는 의사의 권고를 들었다.  일주일에 두번씩 나가는 라인댄스와 주말을 이용한  산행은 식욕만 좋게 할 뿐 체중감량의 효과는 하나도 없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기에  마음이  급해졌다.    인터넷을 뒤져보다가  ‘레몬 디톡스’를 발견하였다.  ‘마스터클린즈’라고도 불리는 레몬 디톡스 요법은 짧게는 3일부터, 일~이주동안  식사를 전혀 하지 않고 레몬 물에 메이플시럽, 카이엔페퍼를 타서 수시로 마시는 것이다.  안젤리나 졸리와 데미무어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했다고 유명세를 탓으며  체중감량효과 외에도  몸 속 노폐물과 독소를 빼주어 만성피로도 없애준다고 한다.  일부러  체중을 줄인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서 슬그머니 그만두는 일이 없게끔 하였다.  어지럽거나 속이 쓰려서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면 어쩌나 한 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머리가  맑아지고 몸도 가벼워지면서 자신이 생긴다.  3일짜리 단기 코스에는  가끔 도전을 해야지 하고 마음먹었다.  밥심으로 산다던 내가  밥을 여러 끼 굶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무엇보다  턱선이 갸름해졌다는 격려를  들으니 기뻤다. 

충분한 준비 없이 갑자기 시작한 이민 생활인 만큼 시행착오가 많았다. 이민초기 경제적 자립과 아이들 교육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답답한 상황에 절망했다. 남의 일로만 여겼던 소송을 나의 일로 겪어보니 사람을 믿지 못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고,  무엇보다 영주권 없는 것이 마음의 큰 짐이었다. 아이들 학교 결석시키고 엘에이 다운타운 이민국 앞에서 인터뷰 기다리느라 새벽부터 몇 시간씩 줄 서서 추위에 떨던 일이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새파랗게 젊은 이민관의 뻐기는 듯한 태도에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울분을 삼키며 이대로 주저앉을 순 없다고 다짐하였다. 영주권을 받은 지금은 추억이 되었으나, 고생한 보람도 없이 일이 어긋나서 서류를 다시 집어넣고 몇 년씩 기다리기를 되풀이할 때 느꼈던  좌절감은 내 인생에 약이되고  독이 되었다.

100 미터 달리기 하듯 숨 가쁘게 집안 살림과 가게 일을 하며 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 없이 지내왔다.  몸처럼 마음도 늘 바쁘기만 했다.  디톡스로 빼내야할 노폐물이 어찌 몸에만 있으랴 싶다.  앙금같이 가라앉아 있을 시기와 질투, 아집, 분노를  마음의 디톡스로 없애버리고  대신 사랑과 이해, 용서와 너그러움으로 채우고 싶다.  “잘 될 거야” 의 긍정적 마음가짐을 갖고 싶다.  한국 나이로 50세가 되었다.  어느새 살아온 날이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 많아졌다.  살아온 시기만큼 때 묻고 얼룩졌을 나를 이불 홑청 뜯어 빨아 풀을 먹이듯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나고 싶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깃든다는 평범한 말이 생각난다.  며칠간의 레몬 디톡스가 어느 정도 ‘새로운 나 ‘만들기에 일조했길 바란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고은  <그 꽃> 전문

짧은  시가 인생의 후반전을 더욱 열심히 살아보라는 희망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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