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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기억    
글쓴이 : 정민영    13-09-13 14:38    조회 : 10,113
사라진 기억
 
 삶의 기억들이 어느 날 갑자기 모두 사라진다면 자신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어머니는 파란 가을하늘을 담은 호수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촉촉하게 젖은 눈망울에는 무한한 사랑과 안타까움이 서려있다. 그녀의 눈동자에 아들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보고 싶었다고, 잘 지내냐고, 몸 생각하며 일하라고, 네 아들, 딸은 잘 지내냐고, 보고 싶으니 데려와 달라고.’ 이런 말들을 하고 싶은가 보다.
 어머니는 치매를 몇 달 앓더니 말을 잊어버렸다. 가끔씩 찾아가는 나는 언어의 기억이 사라진 그녀를 마주하고 가늘고 여윈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한 체 혼잣말을 하곤 한다. 그녀는 다 알아듣는 것처럼 눈짓과 미소로 나의 말에 응한다.
 어머니의 치매는 1년 전쯤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가끔 소변을 가리지 못했다. 의사는 뇌세포가 죽어가는 치매현상으로 진단했다. 특별한 치료법도 없고 다만 현상을 지연시키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러다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되고 가족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도 순서가 있는지 그녀는 최근의 일들부터 잊더니 마지막에는 유년의 시절만을 기억하게 되었다. 유년의 기억이 사라지자 말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몇 달 후 영면에 들었다.
 치매는 늙으면 누구나 겪게 되는 병쯤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치매 부모를 모시는 자식은 참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만 했지 치매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은 없다.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의 시간들은 나의 모습을 미리 보는 것 같았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을 배울 때, ‘불’, ‘물’, ‘가난’ 등이 거론되고 마지막으로 ‘망각’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망각’은 무서운 것이기도 하고 삶의 고통으로부터 구원해 주는 역할도 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즉 치매 자체는 행복도 불행도 아닌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베이비 붐 세대들의 평균수명은 백세 가까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노년의 삶을 온전한 정신으로만 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면 고개를 젓게 된다. 사고나 병으로 죽지 않는다면 차이는 있을지라도 누구나 치매현상을 겪게 될 것이다. 치매기간은 3년, 10년이라는 말이 있다. 장수시대에는 10년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10년 동안 한결같은 효심을 보일 자녀가 있을까? 아마 십중팔구는 요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10여 년 동안 치매노인들끼리 생활하며 지낸다고 생각하면 삶이 무섭게 다가온다. 노년의 삶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은 기억들을 간직해 두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유년시절부터 치매가 오기 전까지 삶의 계단 계단마다 서려있는 작은 행복은 물론이고 안타까운 사연들, 슬픈 추억들, 심지어 고통스런 사건까지도 빼곡히 정리해 놓을 필요가 있다. 치매가 오기 시작하면 그 기록들을 읽는 습관이 중요할 것 같다.
 기억은 사라져 가지만 기록을 통해 자신의 삶을 재조명하고 총체적 인생에 대한 회고와 각각의 잘못에 대해 회개함으로써 삶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모든 공과로부터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을 때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다. 이러한 치매 기간은 우리 인생에서 소중한 과정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기억의 사라짐에 의한 삶의 내려놓음과 회개에 의한 내려놓음은 큰 차이가 있다. 전자는 강제적인 내려놓음이요, 후자는 자유의지에 의한 내려놓음이다. 강제적인 내려놓음은 생물학적인 죽음을 뜻하는 것이고 자유의지에 의한 내려놓음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유의지로 죽음을 행복하게 맞이할 수 있는 상태, 즉 그것이 ‘웰 다잉’이라고 생각한다.

강희진   13-09-14 20:52
    
잘 읽었습니다.
저는 노모가 계시지만 아직 건강해서 다행입니다...
망각이 무섭다는 것은 앎을 공유하는 사람끼리 소통이 없어진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현대사회는 선생님의 어머니보다 더욱 심한 치매를 앓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어쩜 이글은
망각, 죽음에 대한 사유보다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로 독자에게 사유할 시간을 주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건필하세요..
정민영   13-09-17 14:01
    
조언 감사드립니다.
    선생님의 조언을 읽고 또 읽고 곱씹어보다가 문득 깨달음이 왔습니다.
    메타포!
    다음에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힌 글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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