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권혜경, 아내,그리고 장미꽃 한송이
스타! 내가슴속의 영원한 스타 권혜경
산장의여인. 동심초, 물새우는해변. 첫사랑의화원. 호반의벤치등 수많은 노래를 히트시킨 왕년 가요계의 프리마돈나!
그분이 서울 한복판 정동극장 입장료해봤자 오만원짜리 그곳에서 중장년팬들을 위한 특별무대를 하루종일 꾸민다는 것이다
그분이 누구인가? 항상 꿈에서만 그리던 내 가슴속 영원한 스타가 아닌가? 나는 그분이 나온다는 신문기사를 가위로
예쁘게오려 앨범 한가운데 고이 간직하고는 10년내내 하루도 쉬지않던 가계문을 후다닥 닫고는 한걸음에 정동극장으로
달려가 입장권을 예매했다 내가 여섯살때였다 내집 바로앞 재순이네 집으로 젊은 새댁이 갓난아기를 데리고 이사를왔다
노인들이 많고 허름한집이 많았던 작은 동네에 눈썹이 시커멓고 얼굴이 하얗고 몸이 가냘픈 젊은 새댁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어두운 밤하늘의 보름달 같았다 새댁은 항상 머리를 단정하게 고대를하고 분홍색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언제봐도 수줍은듯
하면서도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였다 얼굴은 시커멓고 목소리가 유난히크고 항상 뒷머리에 쪽을지고 검은색 계통의 한복만을
즐겨입는 경상도 사투리의 엄마보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새댁은 항상 예뻐보였다 그렇듯 새댁을 엄마와 비교하면서 새댁이
내 엄마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 내가 갓난 애기가 되어서 새댁의 품에안겨 젖을만지며 빨아보고도 싶었다
늙은 엄마의 젖을 빨아본 기억이 전혀없는 나로서는 젖냄새에 대한 그리움이 무척 컸었다 그렇듯 새댁에 대한 애틋한 모정을
절실히 느낄즈음 마침내 새댁을 아주 가까이서 볼수있는 어쩌면 살을 맞닿을수도있는 기회가 찿아왔다 엄마손에 이끌려
새댁의 방안으로 놀러 간것이다 새댁의 모습을 요리조리 살펴보던 나는 새댁의 이상한 행동을 발견할수 있었다 라디오에서 노래소리가
나옴과 동시에 새댁의 모든것은 멈처졌고 눈을 지그시감고 고개를 끄덕 끄덕했다 가끔은 천장을 쳐다보며 슬픈표정을 짓기도했는데
그럴때는 하얀 얼굴이 더욱더 하얗게 변하는것 같았다 라디오 다이얼을 이리 저리 돌릴때마다 똑같은 노래가 흘러나왔는데
그때마다 새댁은 그런 동작을 되풀이했다 내가 새댁의 이상한 행동에 대한 이유를 알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새댁이 라디오 다이얼을 이리 저리 돌릴때마다 똑같은 노래가 흘러나왔기 때문이였다 산장의 여인 새댁을 그토록 심취시켜버린
그 노래는 바로 권혜경이 부른 산장의 여인 이였다 아무도 날 찾는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단풍잎만 채곡 채곡 떨어져 쌓여있네...
그렇게 시작되는 애절한 가사와 멜로디가 시대적으로 어두웠고 젊기때문에 감각이 예민한 새댁에게는 무척이나 가슴에 와 닿았던
모양이였다 새댁은 누군가 곁에 있다는것을 뒤늦게 감지 했는지 짐짖 무안해 하면서 라디오를 꺼 버렸는데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산장의 여인을 불러재켰다 그날 딱 세번을 듣고는 여섯살 짜리가 그 노래를 끝까지 완벽하게 불렀으니 새댁은 난리였다
어떻게 이꼬마가! 어떻게 이 꼬마가! 를 반복하면서 주인집 재순 엄마 옆방 귀영 엄마 옆옆방 훈식이 엄마 모두 나와 보라고
소리 소리 질렀다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두손을 배꼽위로 모은채 똑바로 서서 산장의 여인을 다섯번이나 계속해서 불렀다
그날부터 나는 그동네의 초 일류 가수가 되어 있었다 노래 뜻도 모르면서 새댁이 그토록 좋아하는 노래이고 남들이 모두
내노래를 극찬해준다는 사실 만으로 나는 이리 저리 불려다니며 산장의 여인을 불러 재켰다 이렇게 맺어진 산장의 여인과의 인연은
몆년후 고등학교에 다니는 누나의 수학노트가 완전히 권혜경씨의 노래로 도배되어 있는것을 보면서 나는 완전히 권혜경씨의 팬이
되어버렸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선생님이 노래를 시키면 가곡 내 고향 남쪽 바다 다음에는 산장의 여인을 꼭 불렀다
그 당시 유행가를 부르면 목소리를 버린다고 하여 가곡을 불렀는데 선생님은 앙코르 송으로 산장의 여인을 시키곤 했다
선생님 께서는 내가 그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중학교 때는 가요 책 맨 뒤쪽에 나오는 연예인 주소란에서
남가좌동 140번 권혜경 씨의 주소를 입수하여 라일락 꽃처럼 향기로운 권혜경 씨 안녕하십니까? 를 서두로 팬레터를 썼다가
찢고를 하루에도 수십번을 반복했지만 보낼수는 없었다 나이가 나보다 20년이나 연상인 그분에게 감히 보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70년대에 들어서자 라디오에서 권혜경 씨의 노래는 거의 들을수가 없었다 노래를 들으려면 그 당시 유행하던 음악다방을 가야만 했다
나는 그분의 히트송 레코드판을 수십장 구입해서는 음악다방 DJ 들에게 돌리고 노래를 많이 틀어줄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전축이 있는 친구들 에게는 공짜로 선물을 했는데 권혜경의 레코드판을 소지하고 있거나 권혜경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곧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버렸다 그당시 대학생 신분으로 레코드판 구입 비용은 내게 커다란 부담이 되었지만 권혜경 이라는 나의 팬에대한
순수한 사랑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권혜경씨의 노래가 다방에서 자주 울려 퍼진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늘 행복했었다
그 날 공연 날 ~그날이 드디어 왔다 나는 정동 극장으로 제일 먼저 달려갔다 홀에 들어서자 권혜경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응!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리허설을 하는 나의 스타 실제로 처음 듣는 그분의 목소리! 나는 떨리는 마음을
간신히 억제하고 큰 소리로 "권혜경씨.권혜경 씨! 저 저 저는 권혜경씨 팬입니다 이렇게 외치면서 내가 다니는 회사 사보를 획 던져 주었다
그 속에는 나의 영원한 팬 권혜경 이라는 나의 글이 실려 있었다 빨간 장미꽃 한 송이를 두 손에 꼭 쥔 채 권혜경씨가 무대에 등장했다
레코드판 표지에서나 볼수있는 그런 모습이었다 나는 손목이 부러져라 박수를 치고는 또 쳤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갑자기 권혜경 씨가 내려오더니 내 손목을 꽉 잡고는 나를 무대 위로 올려 놓는것이 아닌가? 곧 이어 손에 있던 장미꽃을 내 가슴에
달아주는 순간 어 이것이 왠일인가? 40 인조 서울시향의 호반의 벤치 반주가 나오면서 권혜경씨가 오른팔로 내 어깨를 감싸 안으며
나에게 마이크를 내 주었다 내 님은누구일까? 어디 계실계실까? 호반의 벤치로 가봐야겠네! 감격스럽게도 그분과 나는 얼굴을 마주보며
그분의 히트곡 호반의 벤치 노래를 불렀다 항상 꿈에서만 그리던 내 스타의 어깨에 손을 걸친채노래를 불렀으니
정말 꿈을 꾸는듯한 기분이였다
녹화 카메라가 내 주위를 빙빙 돌때 그 기분은 이상야릇 하였고
정말 흐뭇했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객석에서 "응 " 가수구나 가수! 이렇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는 완전히 스타가 된 기분이었고
무대를 내려올때 어떤 분들이 요즈음 왜 가수 생활을 안 하느냐고 물어올때 나는 그냥 아 네! 네! 하면서도 속으로는 킥킥거리고
웃고 있었다 장미꽃 한 송이를 가슴에 달고 신나는 마음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나칠무렵 갑자기 낮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신아빠! 예신아빠! 여긴 왠일이야! 고개를 획돌려 쳐다보니 뜻밖에도 아내였다 아니 아내가? 아내가? 다시 한번 고개를 돌려
위를 쳐다보니 아내는 분홍색 유니폼을 입고 요금소에서 근무중이였다 순간 나는 아침에 첫 출근을 한다던 아내의 모습이 떠 올랐다
"아" 오늘이 아내가 처음 출근하는 날이지? 나는 나도 모르게 가슴에 꽂혀있던 장미꽃 한 송이를 아내의 손에 꼬옥 쥐어 주면서
큰 소리로 축하해! 축하해!을 연신 외쳐댔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다 아뿔사! 그건 주는것이 아닌데...내가 실수 했구나! 곱게
말려가지고 영원히 기념으로 보관하는 것인데...아내가 근무하는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는 난리가 난 모양이였다 아내의 처음 근무를
기념하기위해 근무 시간에 맞추어 장미꽃을 선뭃하는 그런 님자가 요즘 세상에 어디 있느냐고...특히 고속도로 톨게이트 근무자와
시간을 맞춘다는것은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아내 역시 장미꽃 선물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는데 사실이지 나는 권혜경
특별무대 때문에 아내의 첫 출근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첫 출근을 알고 있었다해도 아내의 근무 시간에 맞추어 장미꽃을 들고
찿아갈수 있는 용기가 내겐 없었다 그런 내가 장미꽃 한 송이로 인해 아내는 물론 고속도로 직원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남이
되였으니 그 모든것이 권혜경씨 덕택같았다 내가 권혜경씨 에게 주었던 헌신적인 팬사랑에 그분 또한 나에게 보답을 해준것 같았다
내가 아내의 첫 출근을 잊을새라 장미꽃을 주어서 아내와 나 사이에 소원해질뻔했던 사랑을 더욱더 충만하게 해 주었으니... 나의 스타
권혜경씨와의 첫 만남에서 받은 장미꽃 한송이 아내의 첫출근 근무시간에 맞추어서 끝난 권혜경 특별무대 아내와의 우연한 만남과
장미꽃 한 송이 선물 그 모든것이 잘 짜여진 드라마틱한 각본처럼 생각되었다 아내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차마 진실을
말할수 없었다 그게 아닌데 진짜 웃겨하면서 계속 침묵을 지킬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2008년 5월 어느날
TV 뉴스에서 권혜경 씨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권혜경 씨와 정동극장 에서 처음 만난 이후 간간히 전화 통화를 하면서 근황을
물어 보고는 했는데 청천 병력같은 소식이였다 가요 역사의 한 폐이지가 허무하게 넘어가는 그런 순간이였다 어딘가 모르게
나를 지탱해주던 내 가슴속의 영원한 스타가 이제는 완전히 사라져 영영 볼수 없다니 내가슴 한 구석이 무너지는 느낌이였다
시간이 되면 형편이 되면 꼭 찾아 뵙겠다고 마음만 먹었을뿐 실행에 옮길수 없었던 나 자신이 너무 무능해 보였다
간간히 가요무대 프로에서 들어보던 그분의 생음악을 이제는 영영 들을수 없다고 생각하니 세월이 흐르면 늙고 병들고
마지막으로 죽음의 문으로 들어갈수 밖에 없는 우리네 인생이 너무 안타까웠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별의 슬픔은
몰랐을텐데...언젠가는 청계천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그분의 히트곡 병마와 싸우며 병실에서 취입했던 노래 물새우는 해변을
발견했지만 마침 돈이 없어 못 샀다는 내 얘기를 듣고는 무척이나 아쉬워 했던 적이 있었다 물새우는 해변은 대중가요 역사상
하프가 처음 사용된 곡으로 매우 귀한 레코드판이기 때문 이였다 평소에 그분은 본인의 레코드판을 팬들에게 모두 주어서
정작 본인은 소장본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쩌다 권혜경 씨와 전화 통화를 할때면 마치 몇십년 사귄 친구처럼 편하고 다정하게
대해주어서 긴시간동안 별의별 얘기를 다 나눌수가 있었다 정동극장에서 받은 장미꽃 한 송이에 대한 사연을 들려주자 그럴줄 알고
장미꽃 한송이를 준것이고 그꽃이 아내의 첫출근 기념이 되었다니 오히려 영광이라고 하면서 그녀 특유의 웃음 소리로 허허허 하고
웃었는데 몇일후 장미꽃 한다발이 "축!첫출근 이라는 쪽지와 함께 집으로 배달되었다 그분은 놀라운 정신력으로 몆번씩이나
불치병과 싸우면서 이겨 냈었다 작곡가 박춘석 선생이 뇌출혈로 쓰러져 식물인간으로 있는것을 얘기하면서 환자 스스로 살려고하는
의지가 없으면 절대로 일어날수 없다고 하던것이 어제 같은데 본인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니...살아생전 산장의 여인 노래비를
꼭 세우겠다는던 왕년의 대스타가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하늘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몇십년은
그늘진 이웃들을 위해서 노래로 봉사활동을 할수 있었을텐데 ..남들한테 못된짖은 도맡아 하는 악랄한 인간들은 요리조리 죽음을
피해가며 잘도 살아 가는데 하필이면 그토록 깨끗하게 살아가던 권혜경씨가 돌아가셨다니...내가 어릴때는 앞집의 새댁이
좋아하는 가수이기 때문에 무작정 좋아했고 10대 때는 남들이 모두 좋아하는 대 스타이기 때문에 무작정 좋아서 팬레터를 쓰고
또 썼고 20대때는 사랑의 아픔을 겪으면서 그분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견듸어냈고 30 40대때는 사회 생활의 좌절감을 맛볼때마다
그분의 노래를 들으며 용기를 냈으며 50대 이제 정말 그분 노래에 대한 의미 그분의 목소리 음악성을 평가하며 진정으로
그분을 존경할수 있었는데 돌아가셨다니...이제는 그분이 영원히 가셨으니 나는 이제 희망이 없는듯했고 한동안 허탈감에
우울할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분의 마지막을 위해서 무엇을 해줄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그렇다 권혜경.권혜경.특집 방송을
방송국에 건의해 보기로했다 나는 가수 위원회에 전화를 걸었다 가수 위원회 에서 권혜경씨의 KBS 가요무대 추모 특집 방송을
추진해 보는것이 어떻겠느냐고 건의 했더니 처음에는 권혜경씨가 누구냐고 오히려 되물은 후 한참 후에야 기억해 내서는
그런 계획이 없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는 흘러간 스타들에 대한 배려가 일부에 치중되어 있다는 현실이 슬폈다
또한 인터넷 상에서나 들어볼수있는 그분의 히트송들이 생전에는 왜 자주 들을수 없었는지 대단히 아쉬웠다
조만간 권혜경 씨의 산소를 찾아가야겠다 장미꽃 한 송이를 손에 들고 아내와 함께 그분의 산소를 찾아가서 장미꽃에 얽힌 사연을
아내에게 고백해야겠다 수년전에 당신에게 주었던 그 장미꽃은 내가 당신의 첫 출근을 기념하기위해 준비한 꽃이 아니고
사실은 나의 스타 권혜경씨가 나에게 준 선물로써 영원히 보관 하려고 마음 먹었던 것인데 나도 모르게 그만 당신에게 주어서
무척이나 후회 했었다고... 허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와 당신과의 사랑을 더욱 더 돈독히 해주었고 내가 권혜경씨를 내 가슴속의
영원한 스타로 생각하듯이 당신 또한 내 가슴속의 영원한 진짜 스타로 생각하라는 그분의 따뜻한 배려였다고 얘기해 주어야겠다
사실 그날 권혜경씨의 특별 무대가 없었다면 장미꽃 한 송이를 아내의 첫 출근에 마추어 줄수도 없었고 공연 시간이 아내의 근무 시간에
마추어 끝나지 않았다면 더 더욱 아내를 만날수가 없었고 아내는 그날의 감격스러움을 맛볼수 없었을것이다
그 모든것이 권혜경 씨에게 보내 주었던 내 헌신적인 팬 사랑에 대해서 그분 또한 내게 보답을 해준것 같았다 아내와의 사랑을
더욱 더 돈독히 하도록...아내에게 고백을 하면서 이런 얘기도 해주어야겠다 내 이름은 승호 아내의 이름은 호순 두 이름을 합치면
승호 호순 호순 승호가 저절로 이어지는데 이것은 권혜경씨가 불렀던 노래 청실 홍실 보다도 더욱 더 값진 천생연분이라고...
몇일 후면 결혼 31주년 딸아이 결혼식이 목전에 있는데 지난날 장미꽃에 얽힌 내 얘기를 듣고 아내가 실망 했다면 내 모든것을
이해 해주고 그대신 장미꽃 두송이를 권혜경씨 무덤가에 꽂아놓자고...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