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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인생의 먹구름    
글쓴이 : 이성열    13-11-19 02:16    조회 : 10,397
내 인생의 먹구름
                                                                                                                        이성열       

  60 여 년 전에 일어난 육이오는 이제 와서 어찌 보면 잊혀진 전쟁의 하나로 손꼽힐지 모른다. 적어도 그 때를 경험해 보지 않았거나, 경험 했다 해도 그다지 큰 피해를 격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겐 아마도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나 마찬가지로, 나에게 있어서 육이오란 바로 재앙의 시작이었고, 그 때문에 내 인생은 평생을 그 얼룩으로 인하여 그늘 속에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 나는 내 양친 부모를 다 잃어 버렸고, 우리 가정은 풍비박산이 되었으며, 그 때 잃어버린 우리 가족은 다섯 명이나 되었다. 아버지, 어머니, 삼촌, 고모, 그리고 10대였던 형까지 모두 내 시야에서 사라진 것이다. 그 나마 살아남은 식구들은 어리고 늙고 여자들뿐이어서 우리의 살아갈 길은 그야말로 막막하기만 했었다.
    우리는 피난 중에 가족이 뿔뿔이 헤어진 결과가 되었다. 아버지와 형이 난리 통에 양식을 구하러 간답시고 수원 집에 엄마와 누이만을 남겨 놓고 외출을 했던 것이 잘못되어 그들은 영영 돌아오질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엄마는 어린 나를 업고 누이를 데리고 아버지를 찾고자 외가가 있는 저 남쪽 경상도까지 가겠다고 밖을 헤매다 병을 얻게 되었다. 당시 유행하던 장티푸스였다. 하는 수 없이 엄마는 어린 우리들을 데리고 어딘지도 모르는 객지 피난길에 허름한 문간 방 하나를 얻어 들었다. 추위에 약도, 먹을 것도 없는 상황에서 엄마는 들끓는 고열을 혼자 견뎌 내느라 객지에서 사활을 건 병마와의 싸움이었지만, 아무도 돌봐 줄 사람 하나 없었던 것이다. 열 한 살짜리 누나는 철부지여서 겨우 엄마가 시키는 물이나 가져오는 게 고작이었다. 약은 고사하고 음식이라도 제대로 먹었다면 엄마의 병은 차도를 보였을 지도 모른다.
    해서 엄마의 병은 깊어만 갔다. 날이 갈수록 엄마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다.  눈이 헬쓱하게 되어 보기에도 무서운 귀신형상이 되어 갔고, 누워 있는 엄마의 얼굴은 검버섯으로 뒤덮여 벌써 죽은 송장의 모습을 방불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엄마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는지, 어린 나를 방에서 내 쫓고 열 한 살의 누나만을 자기 옆에 앉혀 놓고 이승을 떠날 마지막 준비를 시키는 모양이었다. 추위에 밖으로 쫓겨난 나는 어린 마음에도 야속하고 참담한 마음으로 문고리를 잡고 울며불며 매달렸다. 그러나 엄마는 냉정하게 방으로 기어든 나를 내 쫓았고 다시 들면 누워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때리고 밖으로 쫓아 몰아내 버리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엄마는 나에게 왜 그런 가혹한 행위를 했는지 모른다. 아마도 엄마가 죽기 전 정을 떼기 위한 수순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다른 이유는 나로 하여금 그녀를 평생 잊지 않도록 강력한 인상을 남겨주기 위해서 이었을까. 지금에 와서 그 이유야 누구도 알 수가 없다. 나는 엄마를 너무 어렸을 때 잃었기에 그녀에 대한 다른 아무런 기억이 없다. 그러나 오로지 엄마에 대한 나의 확실한 기억은 그녀가 죽기 전 나를 구박한 그 순간만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며칠이 지나고 나서 나는 누이로 하여금 겨우 입실이 허용 되었으나, 아랫목에 누워 있는 엄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 남매는 그렇게 울며 엄마를 잃었다. 다음날 엄마의 시체는 덮었던 홑이불에 싸인 채 동네 아저씨의 지게에 실려 어디론가 가서 묻혔다. 우리들은 서서 울면서 엄마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냈지만, 어느 장소에 가서 묻혔는지 알지도 못했다. 무심한 어른들이 가르쳐 주지도 않았고, 어린 마음에 관심도 없었다.   
    그것이 내 인생에는 평생 먹구름이 되었다. 내가 자라면서 변변히 얻어먹지도 못하고 허약한 몸으로 겨우 생을 지탱해온 계기가 된 것도, 향학열에 불태울 나이에 제때제때 학교 진학이 어려워서 헤매던 어린 시절도 다 육이오 때 부모 잃은 기구한 내 인생 역정 때문이었다. 
    그 후 우리는 엄마가 써서 누이의 손에 쥐어 준 주소가 적힌 쪽지를 가지고 피난처 동네 아저씨의 도움으로 그때까지도 살아 계셨든 할머니가 살고 있는 시골집으로 돌아 왔다. 그곳엔 연로하신 할머니와 시집 안 간 작은 고모가 식구의 전부였고,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전후 겨우 네 식구가 남았다. 시골에는 재산도 없었고 변변히 농사지을 밭뙈기 하나 없었다. 부모 없는 나는 어딜 가나 천덕구니였고,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부모 대신 누나, 할머니에게 야단맞고 정자나무 그늘에 서서 엄마 없는 설움을 달래야만 했다.
      다음 해 여섯 살이 되어 학교엘 들어갔으나, 원체 약골인 나는 하루건너 옮겨 다니는 학질 때문에 거의 매일이다시피 학교에서 쫓겨났다. 학교에서 무상으로 주는 키니네를 먹고 나면 어지러워 돌아오는 잔디밭에 누워 잠이 들었고, 상급생 누나의 등에 업혀 논두렁길로 집에 돌아 올 때면 하늘이 노랗게 물들고는 했다.
      그즈음 나는 학교 가는 것도 마음에 내키지 않았고 오히려 지겨웠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공납금을 내야 했었는데, 우리는 하도 가난해서 그걸 다달이 내기가 어려웠다. 자연히 첫째 달부터 밀려온 월사금이 열 달이 되어도 내지를 않았으므로 그 시달림이 말이 아니었다. 아침 조회 시간마다 앞으로 불려 나가 닦달을 당하고 심지어는 종아리까지도 맞는 경우도 허다했다. 그렇다고 집에 와서도 사정이 어려우니 누구에게 떼를 쓸 형편도 안 되었다.  엄마가 살았다면 적어도 내가 이토록 곤란을 당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엄마의 친정아버지는 엄청난 재산가라는 소리는 들어왔으므로, 나 하나 정도 학비를 못 내도록 버려두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놈의 난리가 나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것이다. 나는 차라리 학질로 골치가 아프다가 그냥 죽어 버리기나 했으면 좋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그런데 얼마가 지나서 학교 교감 선생님이 우리 집엘 방문했다. 집안을 앞뒤로 둘러보고 할머니와 무슨 말들을 주고받고 하더니 교장 선생님이 학교로 돌아갔다. 다음 날부터 담임선생의 밀린 공납금을 가져오라는 채근은 멈추었다. 극빈자 면제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 면제가 오래 가지는 못하였다. 학년이 바뀌면서 교감 선생님과 담임도 모두 바뀌었던 것이다. 나는 어렵사리 겨우 보통학교 6학년을 마치고 중학교 진학은 포기해야만 했었다. 
    육이오가 발발한지 어언 60년이 지난 지금, 조국의 반쪽에서 번영을 구가하는 남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육이오야 말로 정녕 잊힌 전쟁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반쪽에서 신음하는 동포들과, 나같이 그 얼룩으로 상처받은 적지 않은 피해자들에겐 아직도 육이오는 씻기지 않는 상처로 남아 평생 을씨년스럽고 신산한 세월을 운명으로 알고 살아야 할  것이다.



최기영   13-12-05 23:58
    
전쟁이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오로지 인륜에 비극 일 뿐이라는 사실을 신랄하게 표현해 주셨네요.
왜 전쟁을 반대해야하는가에 대한 메세지를 생의 경험으로 쓰신 글, 아주 잘 읽었습니다.
 
건필하십시요 ^^
임도순   13-12-07 14:07
    
안녕하세요, 글에서 선생님의 나이를 유추해보니 45년 해방둥이 같으십니다. 저는 57년생입니다. 지난 시절의 뚜렷한 기억이 평생동안 잊혀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어머니의 무정함으로 인해 오늘날의 선생님이 홀로 자수성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앞 편글의 새의 세계에서 날개가 돋힌 새끼 새를 냉정하게 내버려둔 것과 같습니다. 저도 어려서 세번이나 버려지는 무정함에 몸을 도사린 적이 있었습니다. 글이 친구이고, 대화자이고 갈 길을 암시해주는 안내자이기도 합니다. 상처가 많은 사람은 남의 상처를 잘 읽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 상처를 아물게 해 줄지도 압니다. 글을 쓰는 사람에게 글은 치료약이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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