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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양보    
글쓴이 : 김태겸    13-12-19 14:51    조회 : 6,478
아름다운 양보
 
김 태 겸
 
   지난 가을, 총 800㎞에 달하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연일 25㎞ 내지 30㎞를 걷는 강행군이었다. 보름쯤 되던 날 왼쪽 발바닥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때 페이스를 늦추었어야 했는데 욕심을 부린 게 화근이었다. 물집은 점점 커져 발바닥 윗부분을 뒤덮어 버렸다.
 
   그날도 아침 7시부터 길을 나섰다. 왼쪽 발이 지면에 닿을 때마다 내 몸은 전기에 감전된 듯 움찔움찔 떨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고통이었다. 자연히 걷는 속도가 더디어져 오후 늦은 시각까지 20㎞도 채 걷지 못했다. 더 이상 인내심만으로 버티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쉼터에서 양말을 벗고 발바닥을 살폈다. 대형 물집이 터져 살갗이 찢어지고 내부의 벌건 속살이 들여다보였다. 게다가 발뒤꿈치를 딛고 오랫동안 걸었더니 왼발의 정강이까지 부어올랐다. 응급처치를 위해서라도 빨리 순례자 숙소를 찾아야 했다.
   다음 마을에 쉬어가려고 안내 책자를 펼쳤다. 인구가 5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다. 숙소는 하나밖에 없는데 그나마 수용 인원도 40명에 불과했다.
   서둘러야 했다. 순례자 숙소는 선착순으로 침대를 배정하기 때문에 마감이 되는 경우 어쩔 수 없이 그 다음 마을까지 이동해야 한다. 어떤 순례자는 늦은 시각에 마을을 찾아가다가 산 속에서 길을 잃어 바위 위에 침낭을 깔고 노숙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지금의 발 상태로는 반드시 다음 마을에서 숙소를 확보해야 했다. 5㎞ 이상 떨어진 그 다음 마을까지 걸어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자칫하면 노숙을 각오해야 한다. 안간힘을 다해 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그러나 쓰라린 발바닥으로 걷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순례자들이 계속 나를 추월해서 지나갔다. 땀으로 범벅된 이마 너머로 저 멀리 마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여성 두 명이 나를 앞질러 가다가 나를 알아보고는 걸음을 멈췄다.
   순례길을 출발하던 첫날, ‘생장 피드 포르’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 산 중턱에 있는 쉼터에서 만나 차 한 잔을 같이 나눈 미국인 모녀였다. 어머니는 70세라고 했는데 사슴과 같은 날렵한 다리로 어찌나 씩씩하게 걷던지 나를 탄복케 했었다. 딸은 40대 후반으로 60년대의 명화 ‘졸업’의 여주인공이었던 ‘캐더린 로스’를 닮았다. 짧은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지만 매우 유쾌해서 기억에 남았었다.
   모녀는 절뚝거리며 걷는 나를 안쓰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발바닥의 물집이 터졌을 뿐 다리 관절이나 근육에는 이상이 없으니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들도 먼 길을 걸어와 지쳐 보였기에 먼저 가라고 손짓을 했다. 한동안 망설이던 그들은 나를 지나쳐 마을을 향해 걸어갔다.
   가까스로 마을에 도착해 순례자 숙소를 찾았다. 거의 탈진 상태에 도달하여 숙소 입구에 들어서면서 배낭을 멘 채 주저앉을 뻔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침대 2개가 남아 있다고 하여 그 중 하나를 배정 받을 수 있었다. 속으로 ‘참 운이 좋았구나.’ 하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다음날 아침 다시 순례길을 떠났다. 어젯밤 발바닥에 베타딘 용액과 항생 연고를 듬뿍 바른 다음 붕대를 동여맨 채 푹 자고 났더니 상처가 많이 아물었다. 통증도 많이 줄어들어 걷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제법 속도를 내어 점심 때 한 마을에 도착했다.
   아담한 노천 식당을 골라 자리를 잡으려는데 저쪽 테이블에서 그 모녀가 식사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테이블에 가서 합석해도 되냐고 물으니 무척 반가워한다. 식사를 함께 하면서 그동안 서로 걸어왔던 여정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참 대화하는 도중에 딸이 내게 어제 그 마을의 숙소에서 묵었는지를 묻는다. 나는 아주 운이 좋았다고 대답하면서 한편으로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저녁 숙소에서 그들을 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딸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어제 그 숙소에 도착했을 때 비어있는 침대가 2개밖에 없었어요. 우리가 침대를 차지하고 나면 뒤따라오는 당신이 잘 데가 없을 것 같아 그 다음 마을까지 걸어가 숙소를 구했어요.”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두 사람도 무척 지쳐 보였었는데 내게 침대를 양보하려고 어두운 저녁 그 먼 거리를 계속 걸어갔다니…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소지연   13-12-19 16:15
    
제목 만큼이나 아름다운 마지막 단락입니다.
극한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남을 먼저 배려하는 그런 분들이 있어 인생은 훈훈한 길이 아닌가 합니다.
임정화   13-12-20 09:51
    
김태겸 선생님, 마음이 훈훈해지는 글 잘 읽었습니다.
이야기로 시작되어 이야기로 끝나는데도 사람들을 일깨우고 감동을 주는 글이네요.
누구나 저 미국 모녀분들처럼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글이 긴장감도 있어서 단번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김태겸   13-12-20 21:20
    
과찬의 말씀에 감사 드립니다. 덕분에 글을 더욱 쓰고 싶은 에너지를 얻었습니다.
기회가 되는 대로 습작을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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