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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꽃 필 무렵    
글쓴이 : 서종채    12-05-26 08:27    조회 : 12,529
 
비가오면 읍내에서 집에까지 오는 황톳길에 늘 신발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부모님이 서울살이에 실패하고 도망치듯 귀농한곳이 시흥군 의왕읍 오전리의 오메기 마을이다
지금의 지명은 의왕시 오전동으로 30년을 넘게 살았으니 고향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비록 그곳을 떠나 살고 있지만 가끔 그 신작로길을 자가용으로 달릴때면
추억속의 한 페이지들이 나를 쉬었다 가라고 손짓을 한다
에잇 우리 동네는 언제나 아스팔트길이 생기려나 하고 투덜거렸다
엄마~ 운동화 좀 봐요
내일 신어야 되니까 빨리 빨아서 부뚜막에 말려 주세요
하루종일 농사일에 힘든 엄마에게 난 또 하나의 일거리를 만들어 준다
신작로에서 집에까지 오는 길은 황톳길이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운동화는 황톳빛으로
곱게 물들었고 바닥은 진흙으로 잘 떨어지지도 않았다
괜한 투정을 엄마한테 부렸다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고 초가지붕이 하나 둘 없어지더니
마을 진입로 공사로 온 동네 사람들이 부역을 나와 비가 오면 황톳길에
질퍽거리던 길을 시멘트 레미콘 차가 와서 군데군데 부어놓고 가면
한집에서 한명씩 나온 일꾼들이 시멘트를 황톳길에 깔기 시작했다
바쁜 아버지를 대신해서 몇 번 나도 동참하고 레미콘차가 부리고 간 시멘트를 널빤지를 이용해서 바닥을 고르고 경사진 곳에는 나무판자로 흘러내리지 않도록 고임목을 만들어 받쳤다
드디어 공사가 마무리 되던 날 마을 잔치가 벌어졌다 돼지머리를 삶고 막걸리 파티가 이뤄졌다 마을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건배하시는 이장님을 비롯해서 마을 주민들은 물론 아이들도 잔치음식을 먹기에 바빴다 시멘트가 굳고 비가와도 이젠 황톳길에서 질퍽거리면서 걷던 추억은 없어지리라 생각했다
읍내에서 터벅터벅 20분을 걸어오다 구판장이 있는 마을 회관에서 우리 집은 또 황톳길이다
100여호 가운데 우리가 사는 산악골은 아홉 가구다
아홉 가구 중에 다섯 가구가 유씨네 문중의 일가친척인데
개울을 건너면 박씨네가 제일 먼저 나오고 건너편에 유씨 문중의 목장집이 나온다
작은 길 양쪽으로 감나무가 심어져 운치를 더해준다
당말댁 할머니집을 지나 심씨 아저씨네와 이쁜이 할머니집 사이에 우리집이 있다
돌담이 고풍스럽고 담쟁이 넝쿨이 우거진 집 살구나무가 유난히 많고 감나무가
개울 가장자리로 심어져 있어 늘 풍요로운 집이다
마을 끝에 자리 잡은 지장암의 암자는 노스님이 온화한 모습으로 새벽마다 목탁을 두드린다
알람시계가 필요 없다 이집 저집에서 수탉들의 꼬끼오 하고 울어대는 소리에 잠을 깨고
노스님의 목탁소리에 4시임을 알아차리고
건너 방에서 들려오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에 잠을 깨곤했다
봄이 오면 감나무 새싹이 들기름을 칠한 것처럼 반짝반짝 소담스럽게 돋아나고
어린새싹을 따서 감잎차를 만들던 어머니의 손길이 바빴다
은은한 향기는 녹차보다 구수한 맛이 사춘기의 소년에게도 입안을 즐겁게 했다
개나리가 담장을 수놓을 때 친구들과 산으로 진달래꽃을 따러 다녔다
유난히도 진달래가 많은 모락산의 꽃 속에 파묻혀 길을 잃어버릴 정도였다
어머니는 진달래꽃으로 두견주를 담그셨다 땅속에 항아리를 묻고 진달래꽃과 설탕을 넣어 백일 동안 숙성시켜서 담근 술은 빨간 액체가 마치 핏빛처럼 우러나왔다
향기가 너무 좋고 달달한 맛이 어린 나도 몰래 한 모금씩 훔쳐 먹은 기억이 난다
진달래꽃을 따다보면 푸드득 하고 날아가는 꿩이 앉아있던 자리에는 어김없이 꿩알이 두 세알씩 있었다
부화를 시켜 보겠다고 따뜻한 이불속에 몇날 며칠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다
그만 깨져서 버리고 어찌된 영문인지 부화가 되지 않아 보니 곯아서 버리기 일쑤였다
에디슨이 되어 보고 싶었던 그 시절이 이젠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
 
새벽길을 나서는 길가에 감꽃이 떨어져 반갑게 인사를 한다
하나씩 주워서 목걸이를 만들어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건넨다
어머 낭만적이다 나도 감꽃 한번 주워 보고 싶다 하는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주말이면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 와서 놀곤했다
감꽃을 보고 친구는 자기를 닮았다고 했다
웃을때 살짝 들어가는 보조개와 짙은 쌍꺼풀의 눈이 웬지 감꽃처럼 순박하다고
말하곤 했다
감꽃을 보고 친구는 작은 나팔 같다고 했다
노란꽃이 나팔 모양으로 생겼기 때문이다 입으로 가져가 나팔을 불듯이 불어 본다
후후 하는 입모양만 보인다 작은 감꽃은 어느새 바닥에 떨어져 버리고 없다
비가 오면 감꽃은 유난히 더 많이 떨어진다
아이고 아까워라 올해는 감이 조금밖에 안열리겠네 하면서 걱정하시던 어머니
바람불면 우수수 떨어지던 감들이 어머니 애간장을 태웠었다
날씨탓에 열매의 결실이 맺지도 못하고 떨어지니 오죽 했으랴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고 감나무에 홍시가 주렁주렁 열리는 가을이오면
마음은 항상 넉넉해 진다
고즈녁한 시골풍경에 지나던 길손이 물 한모금 얻어 먹으러 들어오면
어머니는 가을걷이를 하고 고사를 지낸 떡도 내어놓고 대청마루에서 쉬었다 가라고 붙잡는다 서울살이의 인정없는 삶에 낙오자가 되었지만 넉넉한 인심이 있는 시골살이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듯 싶었다
가을이면 농익은 홍시가 떨어져 길바닥에 철푸덕 누워 있다
걸음을 멈추고 아이고 아까워라 하고 얼른 주워 흙을 털고 붉은 속살을 혀로 음미해 본다
달콤하다 행복하다 입이 호강을 하는 순간이다 감나무 꼭대기를 올려다 본다
까치 한 마리가 까악까악 거리면서 잘익은 홍시를 쪼고 있다
긴 장대에 망을 달고 홍시를 딴다
그리고 장대 끝을 가지가 잘 들어가게 뾰족하게 깎아서 가지를 꺾어 덜익은 감을 딴다
그래야 내년에 감이 더 많이 열린다고 했다 감은 일년생 가지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덜 익은 감을 읍내 사람들은 곶감을 만든다고 사간다
크고 싱싱한 감은 곶감용으로 최고였다 손으로 깎아서 처마 밑에 주렁주렁 걸어두면
마치 방문 앞에 발을 쳐 놓은 듯 했다
주렁주렁 감나무 꼭대기에 열린 제일 맛있게 생긴 홍시를 까치가 먼저 맛을 본다
녀석은 장유유서도 모르는 듯하다
그 홍시를 따서 한쪽을 도려내고 먹어본다 표현 할수 없는 자연의맛이다
몇날 몇일을 따도 감나무의 감은 줄어 들지 않는다
이웃집 당말댁 할머니 이쁜이 할머니 모두들 우리 감 좀 따 달라고 성화다
농촌에 젊은 사람이고 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감을 딸 사람이 나 밖에 없었다
주말이면 쉴 시간이 없다 부지런히 이웃집 감나무의 감을 따주고 하루 품삯도 받고
힘은 들었지만 그 당시 최고의 알바였다 할머니들은 유난히 일을 많이 도와주는 나를
무척이나 좋아하시고 예뻐해 주셨다 부지런한 녀석이라고 어디가든
인정을 받고 살거라고 하셨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겨울에 꽁꽁 언 홍시를 장독대에서 꺼내
먹는 맛이란 심장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이다 추운 겨울에 언 홍시까지 몸 안에 들어가니
머리가 아플 정도다 호흡을 가다듬고 언 홍시가 접시 위에서 사르르 녹기를 기다린다
문득 내년 감꽃이 필 무렵이 기다려진다
감꽃이 피면 함께 주경야독하던 동갑내기 그녀와 약속을 했다 대입검정고시에 합격하면 기차여행을 떠나기로 했었다
하지만 감꽃은 피고 졌건만 우리의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불합격의 통지서를 받았기 때문이다 겨우내 그리고 봄날 고생한 보람도 없이 우린 시험에 똑 같이 떨어지고 말았다
괜찮아 가을시험에 대비하자 우리도 저 감나무의 감꽃처럼 꿋꿋하게 나뭇가지에 붙어서
맛있는 홍시로 열매를 맺자 하면서 서로를 위로 했다
지금도 감꽃이 필 무렵이면 그때 그녀와 약속한 추억이 생각나 쓴웃음을 짓는다
풋사과처럼 싱싱한 풋사랑
홍시처럼 잘 익지 못한 떫은 땡감처럼 우리들의 사랑은 끝이 났지만 자장면 한그릇을 시켜
나누어 먹던 추억은 수업시간에 졸음을 깨워주기 위해 미싱사로 일하던 그녀의
거친손을 꼭 잡아주면서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주던 추억은 빛이 바랬다
 
이젠 그 고향집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없지만 추억은 뭉실 뭉실 피어난다
감꽃이 필 때면 난 또 그 시절 그 아련한 추억에 한바탕 가슴앓이를 한다
유월이 오면 언제나 처럼 내가 살던 그곳에 들려 감꽃향기를 맡으러 간다
이젠 연례행사가 되어버린 인생의 황금기에 겪었던 낭만적인 추억에
새로운 힘을 얻기 위해 삶의 기를 받기 위해 찾아가  힘찬 나래를 편다

문경자   12-05-31 13:36
    
너무 길어서 읽기가 어렵습니다.
고향, 어머니 , 감꽃, 여자친구 등 어느것에 맞추어야 할지 난감합니다.
제일 말하고 싶은 것으로 하여 쓰시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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