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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한국인    
글쓴이 : 신문주    18-12-15 08:53    조회 : 7,315
   나는 한국인.hwp (30.5K) [1] DATE : 2018-12-15 08:53:13

나는 한국인

 

신문주

     요즘 보이그룹 방탄소년단이 전세계에 우리나라를 알리고 있다. 신나는 춤과 음악, 가슴에 와 닿은 노랫말로 국내외 다양한 계층의 청중들에게 즐거움과 위로를 주고 있다. 얼마 전에는 <강남 스타일>의 가수 싸이와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연아 덕분에 우리는 한국인임이 자랑스러웠다. 아프리카 오지 수단에서 사랑의 의술을 펼쳤던 고 이태석 신부님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재들이 명석한 두뇌와 출중한 기술로 세계 곳곳에서 대한민국을 빛내고 있다. 햇수로 칠 년간 미국에서 살면서 지극히 평범한 유학생이었던 나도 감히 우리나라를 대표한다고 강하게 느꼈던 때가 두 번 있었다. 그러나 내 경우는 전혀 자랑스럽지 않은 이유 때문이었다.


     첫 번째 사건은 2003년 5월 미국 위스콘신 주의 시인 로린 니데커(Lorine Niedecker) 탄생 백주년 기념행사에서 있었다. 당시 19세기 미 동부 매사추세츠 주의 시인 에밀리 디킨슨에 대해 박사 논문을 쓰고 있던 터라 “위스콘신의 에밀리 디킨슨”이라 불리는 니데커에 관심이 생겼다. 게다가 현대시를 전공한 지도 교수님께서 마침 그 시인을 연구하고 계셨다. 백주년 기념행사는 내가 다닌 학교가 있던 밀워키의 공공 도서관에서 주최하여 니데커의 생가가 있는 포트 앳킨슨(Fort Atkinson)까지 관광버스를 타고 갔다.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봄의 경관을 감상하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버스가 시인이 생전에 일했던 포트 앳킨슨 공공도서관에 멈췄고, 나는 잠이 덜 깬 상태로 차에서 내렸다. 도서관 강당에서 시인의 삶과 시세계를 조명하는 학술 발표와 시 낭송이 있었다. 로비에서는 시집과 대형 기념 포스터를 전시 판매하고 있었다. 이미 등록할 때 포스터 한 장을 받았지만, 나는 문득 지도교수님께도 한 장 선물하고 싶었다. 그러면 그는 연구실 방문에 붙일 것이었다. 그래서 판매원 여성에게 가서 얼마냐고 물었는데, 내 귀에는 “25 센트”로 들렸다. 난 의아해하면서 속으로 ‘오늘이 행사 당일인데 이렇게 많이 남았으니 헐값에 파는가 보다.’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25센트짜리 동전 한 개를 꺼내 주었는데, 그 판매원은 너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25 달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잠이 확 깼다. 너무나 무안해서 포스터가 담긴 원통을 얼른 제 자리에 놓고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 나왔다. 그 여성은 행사 진행 요원이어서 등록비를 받으면서 내가 한국인임을 알고 있었다. 난 속으로 ‘학생이라고 등록비도 반값 할인을 받았는데, 포스터까지 거저 달라고 한 셈이었으니 한국인은 다 거지로 알면 어떻게 하나.’하고 걱정했다. 그 와중에도 난 ‘지도 교수님께 내 걸 드려야지.’하고 생각하면서 내 포스터 통을 보니 웬걸 비어있었다. 아까 판매대에서 빈 통을 집어 들었다가 당황해서 내 포스터가 든 통을 그 자리에 놓고 바꿔 가져 온 것이었다. 다시 돌아가서 내 포스터를 받아 올 용기가 없었다. 게다가 그 여성은 밀워키 공공도서관에서 일하고 있어서 그 날 이후 도서관에 갈 때마다 그를 마주칠까 봐 마음을 졸였다. 2007년 여름에 귀국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이 사건만 생각하면 내가 그 여성에게 “어글리 코리언”의 부정적 이미지를 남겨 준 것 같아 무척 마음이 불편했다.

      두 번째 사례는 2007년 4월에 있었던 버지니아 공대 총기 난사 사건이었다. 이 학교 영문과 4학년이던 한국인 이민 1.5세대 조승희의 총에 교수와 학생 등 33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23세였던 조승희는 8세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와서 한국인이나 미국인 친구도 없이 외톨이로 지냈으며 정신과 내원 경력이 있었다. 내가 이 사건을 알게 된 경위는 그 날도 여느 때처럼 미사 참례 하러 성당에 들어섰는데,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독일인 여교수님이 내게 다가와서 다짜고짜 “문주 나라 사람이 총으로 사람을 많이 죽였어.”하는 것이 아닌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하지만 정작 이 사건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꼈던 때는 수업 시간이었다. 당시 온통 미국인 학생뿐이었던 영문과에서 나는 유일한 외국인, 그것도 아시아계 여성이었는데, 바로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수업 중 평소에 예의 발랐던 한 미국인 남학생이 나를 불편한 눈빛으로 보다가 내 시선을 피했다. 2001년 내가 처음 미국에서 공부를 시작할 때도 9/11사태가 있었다. 그 때도 외국인으로서 한동안 곱지 않은 눈길을 받긴 했어도 아랍인들이 범인이어서 그렇게 직접적인 반감은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이 버지니아 공대 사건은 내 졸업식을 한 달여 앞두고 발생했는데 이번에는 범인이 바로 한국인이었던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이 사건이 일어나기 한 주 전에 논문 발표회를 마쳤는데, 만일 이 사건이 발생한 직후였다면 미국인 교수들과 학생들 앞에서 내가 발표를 제대로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그 당시 심적 부담이 너무 커서 결국 지도교수님을 찾아뵙고 조언을 구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황당하지만, 그때 난 “영문과와 전 학교에 사과문을 낼까요?”하고 물었다. 그런데 그는 “네가 잘못한 일이 없는데 왜 그래야 하느냐”고 하셨다. 그 때 깨달았다. 나는 내 자신과 나라를 쉽게 동일시하는 반면 교수님은 개인과 국가의 경계가 분명하다는 것을. 같은 미국인이면서도 이렇게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래서 일부 미국인 학생들이나 미국 대중들이 주는 무언의 압력에도 지도 교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견뎌낼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하면, 당시에는 고통스러웠지만 이 두 사례 덕분에 내가 한국 사람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내 개인의 삶이 전부인 양 살다가 처음으로 내가 한국인임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는 국적 포기자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올해 일월에서 시월까지 국적 포기자가 3만 명을 넘어 10년래 최고치로 치솟았다. 경제 규모 10위권 안에 드는 우리나라지만 젊은이들에게 “헬조선”으로 불릴 만큼 행복지수가 낮다. 유엔 자문기구 지속가능한 발전 해법 네트워크가 발표한 <2018년 세계 행복 보고서>는 2017년까지의 자료를 바탕으로 국가 순위를 매겼는데, 우리나라는 10점 만점에 반올림하여 5.9점으로 중상위권인 57위를 했다. 평가 항목은 국내 총생산, 기대 수명, 국민의 소득, 국가의 사회적 지원, 선택의 자유, 부패에 대한 인식과 사회의 너그러움 등이라 한다. 기쁜 소식은 2008년-2010년과 2015-2017년을 비교할 때 우리의 행복지수가 반올림하여 0.2점 올랐다. 그동안 성급한 경제화와 서구화 바람에 우리나라의 수준 높은 정신적 문화적 유산들이 뒤로 밀려나 버렸지만, 이제는 우리의 근본을 되찾아야 할 때이다. 그리고 전통과 우리 시대의 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한 예로 방탄소년단이 탈춤의 미학을 춤과 음악 속에 녹여 내어 국내외 팬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사랑과 자비, 믿음처럼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소중한 가치들을 되찾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믿음으로 어둠에 지지 않고 빛으로 계속 걸어간다면, 헨리 데이빗 소로가 《월든》에서 설파했듯이 우리가 모르는 새 성공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그래서 다음 세대는 더욱더 많은 이들이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게 되길 기원한다.

 

 

 

 


신문주   18-12-15 08:57
    
안녕하세요?

오랫만에 글을 올립니다.

죄송하게도 첫째와 둘째 문단의 형태가 어그러져 있습니다. 바로잡으려고 해 봤지만 되지 않았습니다. 불편하시겠지만, 첨부 파일을 참조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고견을 기다리겠습니다.
신문주 드림.
노정애   18-12-19 16:52
    
신문주님
반갑습니다.
오랫만에 신문주님의 글을 보니 너무나 반갑습니다.
건강은 좋으신지? 잘 지내셨는지? 친구에게 말을 걸듯 물어보고 싶어집니다.
파일을 열어
님의 글을 찬찬히 읽었습니다
너무나 잘 쓰신 글입니다.
시사성도 좋고 정보도 좋고
문맥의 흐름도 아주 좋습니다.  잘 쓰셨습니다.
저까지 한국인인게 자랑스러워지려고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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