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와 만남
박해풍
가을 날씨는 운동 겸 취미생활로 자전거 타기에 딱 좋다. 3년 전 두 바퀴와 재회는 나에게 많은 변화를 안겨줬다. 한강의 자전거길을 통해 고향의 알록달록 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계절의 향기와 삶의 여유, 평화를 만끽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당시, 뚝섬에 사시던 이모님 집에 놀러 갔다가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보던 광경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넓은 공터에서 자전거를 타는 내 또래의 아이들을 스쳐지나가듯 바라보았다. 나는 그날 밤부터 열병을 앓기 시작했다. 휴일만 되면 어머니를 졸라서 용돈을 손에 쥐고 뚝섬으로 내달렸다. 당시, 서울 한복판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은 위험천만한 환경이었다. 더구나 비싼 자전거를 사달라는 형편도 안 돼 휴일이면 돈을 주고 잠시 빌려 타는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이런 이유로 이모가 사시는 그곳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공부는 뒷전으로 미루고, 휴일만 되면 자전거를 타러가는 나를 어머니는 꾸짖고 야단을 치셨지만 자전거를 향한 열병은 좀처럼 멈추질 않았다.
급기야는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 가족은 이모가 사시는 뚝섬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되자 나의 자전거 타기는 불붙는 집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절정을 치닫게 되었다. 이사 후에 끊임없이 졸라대는 나에게 어머니는 어려운 형편임에도 자전거를 사주셨다. 드디어 갈망하던 자전거를 갖게 되었다. 세상에 모든 것을 얻은 듯 기뻤다. 학교가 끝나면 나는 총알같이 집으로 와서 제일 먼저 자전거를 닦고 조이고 기름칠을 했다. 그리고 뚝섬유원지로 드라이브의 시동을 걸었다. 부르릉~ 부르릉~ 나에겐 세상에 둘도 없는 자가용이자 친구였다. 피아트 124도 부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부리나케 돌아와 자전거를 찾는데 보이질 않았다. 어머니께서는 불같이 화를 내시며 고물장수한테 팔아버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하시는 게 아닌가! 나는 땅을 뒹굴며 고래고래 소리치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공부는 안하고 자전거에 빠져 사는 모습에 어머니께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중학교 때 들어와서 같은 반 친구들과 임진각을 갔다 온 적이 있었다. 그중에 한 친구는 삼촌이 타고 다니는 멋진 자전거를 타고 나와 모두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기어가 '덜컥철컥' 들어가던 아름다운 소리가 지금도 내 귀에 생생히 살아있다. 응암동에서 임진각 가는 길은 멀고도 힘든 여정이었다. 위험천만한 국도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리들의 자존심 건 경주는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논두렁에 모여서 각자 싸온 간식을 펼쳐놓고 신나게 떠들고 먹으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목청이 터져라 따라 불렀다. 며칠 앞으로 다가오는 시험 걱정은 뒤로 한 채... 우리들의 임진각 투어는 그렇게 노을이 질 때쯤 해서 끝이 났다. 그 후 시간이 흘러가면서 세상에 새로운 즐거움이 새록새록 넘쳐나기 시작했다. 오토바이가 생기고, 네 바퀴의 자가용이 생기면서 자연스레 그는 나에게서 멀어져갔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내 곁으로 돌아온 두 바퀴. 다시 내가 자전거를 타게 된 동기는 홀로 여행을 통해서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하는 일은 고작해야 산책이나 근처 카페에 앉아서 주변 풍경이나 음악을 듣다 오는 심심하고 따분한 여행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던 중, 떠오른 것이 나에게서 멀어졌던 자전거이었다. 주변을 둘러보기에도 좋고, 무엇보다 기동성이 좋았다. 작년 봄에는 강원도 동해안 자전거길을 타고 정동진을 다녀왔다. 한강을 끼고 달리는 느낌하고는 사뭇 달랐다. 파도소리가 만들어주는 교향악을 들으며 시원하게 불어오는 해풍을 안고 페달을 밟았다. 심심하고 외로웠던 여행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즐겁고 신나는 여행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시작된 자전거와 다시 만남은 또 다른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줬다. 지금 내 동반자는 접이식 미니벨로다. 차 트렁크에 쏙 들어가니 이동과 보관에 수월하다. 무엇보다 홀로 떠나는 여행지에서는 좋은 동반자로 더할 나위가 없다. 여기저기 여행을 함께하며 추억과 기쁨을 공유하는 옛 친구를 다시 만났으니 이 행복이 또 어디 있으랴?
서울서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한강 자전거길을 자주 찾는다. 계절의 변화를 가장 먼저 전해주는 곳이 바로 이 길이다. 주말과 휴일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전거 라이더들이 모인다.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자전거에 멋진 복장들이다. 코스가 다양한 한강 자전거길 중, 내가 자주 가는 팔당 길은 멀고도 힘들지만 경치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땀을 흘리고 가뿐 숨을 몰아쉬며 페달을 밟는다. 강바람은 계절의 향기를 품어 날린다.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는 나에게 자전거 타기는 좋은 해소 방안이다. 더불어 운동도 되니 일석이조가 따로 없다. 요즘은 카톡으로 주변사람 들에게 자전거 타기를 권유하며 건강 전도사로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많은 이들이 운동과 취미생활로 일상의 활력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전거는 페달을 놓는 순간 넘어진다. 은륜의 두 바퀴는 이제 은발의 친구가 되어 세상을 다시 한 번 내달린다. 옛 추억과 함께. 넘어지지 않는 삶을 위해서라도 나는 오늘도 힘차게 페달을 밟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