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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외 형과 '산수이'오디오    
글쓴이 : 박해풍    19-01-22 17:45    조회 : 3,974

                            과외 형과 산수이'오디오

                                                                                                박해풍 

 

   고등학교 시절, 아담이 이브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었듯이 나는 친구의 꼬드김에 넘어가 과외를 시작했다. 장소는 동대문 근처로 응암동 집과는 좀 멀었던 곳으로 기억한다. 그다지 과외에 흥미가 없던 나는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녀석을 피해 다녔지만 학교와 동네에서 마주칠 때마다 자꾸 귀찮게 졸라댔다. 결국, 마지못해 친구의 부탁을 한 달만 들어주기로 마음을 먹고 따라 나섰다 

  당시, 서울의 유명 대학을 다니던 형 둘은 각자 수학과 영어를 가르쳤다. 학업이 끝나면 버스를 타고 과외를 받으러 가는데 항상 눈꺼풀과 씨름을 했다. 피곤한 마음에 괜스레 짜증이 나서 친구를 은근히 원망하기도 했다. 쪼르륵 쪼르륵 배에서는 연방 뱃고동이 울려댔지만 과외시간에 맞추려면 순이네 떡볶이 집과 오부자 만두집 앞을 지긋이 눈을 감고 침을 흘리며 지나가야했다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 2층의 오래된 일본식 가옥은 수학을 가르쳤던 형의 집이자 과외 장소였다. 독자인 형은 넓은 2층을 독채로 쓰는 호사를 누리고 있었다. 형은 유독 나를 친동생처럼 살갑게 대해주었다. 어머님께서는 쉬는 시간에 간식도 챙겨주시고 동생이 생겨서 좋겠다고 하시며, 친어머님처럼 다정하게 대해주셨다. 형은 그 집안의 독자였으니 동생들이 얼마나 귀엽고 예뻤을까? 쉬는 시간에는 타 대학 여학생과 미팅을 하면서 어디 가서 영화를 보고, 어디서 곱창에 소주에 마셨다는 둥, 깨 양념에 치즈를 뿌리고 커피 향을 날리며 미주알고주알 대학생활의 흥미 거리를 던져주곤 했다. 캠퍼스의 호기심에 갈망해하는 우리들에게 형은 청량 음료수이자 슈퍼맨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 큰 사건(?)이 일어났다. 2층 층계를 오르고 있는데 귀에 익숙한 이글스의 호텔 캘리포니아가 웅장하게 울려 퍼지고 있는 게 아닌가? 이게 뭐지? 긴장과 호기심을 안고 층계를 뛰어 오르며 나는 두 귀를 쫑긋 세웠다.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급히 형 방문을 열었다. ! 당시에는 구경도 하기 힘든 명품 오디오가 떡하니 방 한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일제 "산수이" 오디오였다.

  은색의 앰프는 유리 넘어 파란빛을 은은히 비추고 있었고 턴테이블은 화려하면서 안정적으로 레코드판을 조용히 돌리고 있었다. 커다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팝송에 나는 그만 넋을 잃고 푹 빠져들고 말았다. 내 방에 다 낡아 비틀어져 삑삑 소리만 나던 "독수리표 전축"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그날부터 공부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형과 나는 멋진 오디오와 오리지널 레코드판에서 나오는 최상의 음질로 귀를 호강시키기 시작했다. 집에서 빽판으로만 듣던 소리는 똥개와 그레이하운드의 격차가 났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공부가 문제가 아니었다. 내 인생은 명품 오디오와 함께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각오로 과외를 다니기 시작했다. 과외가 있는 날은 아침부터 기분이 들뜨고 빨리 수업이 끝내기만을 고대했다 

  약속한 한 달이 화살같이 지나고 두 달이 됐을 무렵, 먼저 과외를 하자던 친구가 집에서 다니는 게 너무 힘들다며 그만두겠다는 것이다. 멋진 오디오와 꿈같은 음악 감상에 빠져있던 나로서는 참으로 난감했다. 그때부터는 적반하장 격으로 내가 먼저 과외를 계속하자며 친구를 꼬드기기 시작했다. 계속하자는 나와 그만두겠다는 친구와 옥신각신하며 티격태격하다가 결국 갈라서게 되었다.

  그 후 같은 이유로 하나 둘씩 친구들은 내 곁을 떠나갔다. 폭풍이 휩쓸고 지나고 며칠 후 형이 나를 조용히 불렀다. 혼자는 가르치기가 힘들다며 과외를 같이할 친구를 모아 오란다. ~ 이곳 멀리까지 과외를 받으러 올 친구도 없거니와 3~4명을 불러 모으는 일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형도 그것을 아는지 우울한 시간은 한동안 흘렀다. 나도 더 이상은 미안한 마음에 계속 머물러 있기도 그렇고 해서 결국, 형과 "산수이"와는 아픈 이별을 해야만 했다.   

  턴테이블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앰프 스위치를 올리자 ~” 하는 묵직한 전자파의 긴 파장이 울려 퍼졌다. 벽에는 전설의 가수들이 액자 속에서 미소를 보내고 있다. 주말에 딸 결혼식을 치른 친구를 앞세워 우리들은 축하 겸 뒤풀이로 7080 카페를 찾았다. 맥주와 먹태의 환상궁합에 잔은 계속 비워지고, 스피커에선 신청곡 호텔 캘리포니아가 울려 퍼졌다 

  순이네 떡볶이, 오부자 만두, 시장 골목길과 2층집에 다시 가보고 싶다. 그리고 내 마음을 빼앗던 멋진 산수이와 형이 그립고 보고 싶다. 추억에 취하고 음악에 취하는 멋진 밤이다.


노정애   19-01-25 20:57
    
박해풍님
재미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몇 말씀 올리겠습니다.

제목에서 오디오는 빼셔도 좋겠습니다.
과외형 보다는 이름을 쓰시는게 어떨까요? 아니며 이니셜로 K형이나 J형. 이렇게 바꾸시기는 힘들까요?
읽으면서 이 부분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져서입니다.
그리고 쪼르륵이 뱃고동 소리는 아닌것 같아 다른 비유를 찾으셔야할듯합니다.
멋진 음악으로 귀 호강을 하는데 똥개와 그레이하운드 보다는
음악에 어울리는 다른 비유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스승님 말씀이
"글을 쓸때는 언어가 모자라도록 고민해 봐야한다."고 하셨답니다.

글을 다 쓰시고 퇴고의 과정에서
소리내어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글에서 빼야할것들을 과감하게 빼 보는 것이지요.

힘들게 쓰신 글에 제가 드린 말씀이 혹 마음 상하게 하신것은 아닌지요.
조금만 다듬으면 더 좋은 글이 될것 같은 욕심에 드리는 말이랍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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