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한방이다.
임 세 규.
10마리의 경주마들이 일제히 땅을 박차 오르고 뛰어 나간다. 말의 근육은 힘차게 튀어 올라 관중의 “ 와 아 ” 함성 소리와 함께 공기 속을 가르며 트랙을 질주한다. 말이 사람인지, 사람이 말인지 기수와 말의 몸은 혼연 일체다. 한 번의 경주에 말은 체중이 10 ~ 15kg 빠질 정도로 체력 소모를 한다고 한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과천 경마장으로 가는 길이다. (경마장 옆 공원은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시설이 잘되어 있다.) 참 오래간만 이다.
20대 초반, 경마장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케릭터 인형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입구에서 둘리 인형 탈을 쓰고 경마장에 온 손님들을 반기며 사진을 찍고 깜직한 춤을 추는 일이다. 짓굿은 아이들은 건물 뒤 야외 탈의장까지 따라오며 놀린다. “ 에이.. 사람이네.” “사람이 들어가 있네.”
오전 9시 경마장 앞의 바리케이트가 열린다. 신상품이 나오면 줄을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우루루’들어가는 것처럼 문 앞에서 기다린 사람들이 일제히 뛰어 간다. 탈을 쓰고 인형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말끔한 정장을 입고 손에는 경마 정보지를 들고 달리는 이, 아이를 등에 업고 다급한 표정으로 뛰는 아주머니, 술이 덜 깬 듯 휑한 얼굴로 걷는 아저씨. 휴일 아침 비교적 이른 시간에 개장을 하자마자 앞 다투어 어디론가 황급히 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분명 도박꾼임에 틀림없다.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한 손에는 펜을 들고 당일 나온 경마 분석지를 보며 1등 할 것 같은 말을 예측한다. OMR 답안지에 “ 이번엔 이 놈 일거야.”정답을 확신하고 마킹한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환전 창구 쪽으로 가는 길이다. 입가와 눈주름에 은은한 미소를 띤 한 남성이 유리창 너머 아가씨에게 종이 한 장을 내민다. 잠시 자리를 비운 그녀는 돌아와 1만원권 대 여섯 다발을‘쓰윽’반달 모양의 환전 구멍으로 내어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 광경이 머릿속을 멤 돈다. ‘단 한 번의 베팅으로 저렇게 많은 돈을 벌수도 있구나.’
죽음을 앞에 두고도 빠져 나올 수 없었다던 도박의 늪을 아직도 걷고 있는 경마 도박 중독자의 이야기다. 친구와 함께 처음 경마장에 가던 날 흙먼지를 날리며 트랙을 달리는 말들이 눈앞에서 시원스럽게 달리는 모습을 보고 묘한 즐거움이 생겼다. ‘5천원만 베팅 해보자’ 아무렇게나 찍은 말이 다른 말들을 제치고 1등으로 들어왔고 처음 경주에 50만원을 벌었다. 다음 주말에 다시 10만원을 걸었다. 80만원의 쾌락이 아드레날린의 분비를 촉진 시켰고 심장의 두근거림을 가져왔다. 너무 쉽게 돈을 딴 것. 경마 중독의 시작 이었다. 딸 때도 많았지만 잃을 때가 더 많았다. 본전 생각이 났다. ‘ 이러면 안 되는데’하면서도 마음속의 공허함은 ‘한 번 더, 한 번 더’를 외쳤다. 많은 돈을 잃고 술에 취해 집으로 들어가자 아이들이 울고 있었다. 아내는 그 날 집을 나갔다.
경마 도박은 세 단계로 나뉜다고 한다. 초기에는 단순한 재미가 있다. 중기에는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간다. 말기에는 돈을 잃을 걸 알면서도 간다. 마권을 구매하는 이들을 보면 적은 금액으로 베팅하는 이들은 드물다. 즐기는 것과 중독의 차이는‘자신의 이성을 얼마만큼 조절하고 통제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도박 중독 역시 ‘자기 절제’여부에 따른다.
정부는 도박이 사행심을 조작하고 자살, 노숙, 절도, 각종 비리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라는 사실을 분명 알고 있다. 강원 랜드의 경우, 폐광 지역의 낙후된 경제를 살리고 국민 생활의 복리증진에 이바지 한다는 이념으로 설립 되었지만 입찰비리, 회사기금 횡령, 채용 비리, 도박 중독자 양산등 사회적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내국인이 유일하게 출입할 수 있는 정선 카지노는 9000원인 입장료부터 신용카드 결제가 아닌 현금으로만 할 수 있다고 한다.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일부러 만들어진 것이다.
앞, 뒤가 맞지 않다. 국가는 국민의 건전한 여가 생활과 복지를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마장, 경륜장, 카지노 사업 등을 합법적으로 운영 하고 도박을 권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알고 있으면서도 왜 그럴까. 사회학에서는 도박을 ‘고통 없는 세금’이라고 한다. 자기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합법화된 도박을 통해 막대한 금액의 세금을 내기 때문이다. 국가가 도박을 묵인과 방조로 지켜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광명 스피드 돔은 가족단위를 위한 대규모 놀이 시설과 문화공연, 등으로 관람을 유도하고 있지만 경기가 벌어지는 경륜장 안은 베팅한 선수에게 온갖 욕설이 난무 한다. “ 더 빨리 더 빨리 밟아. 이 XX야. ”야외가 아닌 돔 형식이니 더 잘 들린다. 아이들과 함께 한 경륜 경기는 ‘깜짝 놀라’ 더 이상 관람하지 않는다.
경마장은 연인, 가족 단위의 다양한 사람들이 주말 나들이를 간다. 주말에는 각종 체험이나 볼거리 등 행사들도 많다. 자전거나 인라인도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멀리서 트랙을 달리는 말들도 구경 할 수 있다. 건전한 게임으로 경마를 즐길 수 있다면 좋으련만 화장실에 붙어있는 명함 하나가 시선에 들어온다. ‘ 오링 되고 열 받으면 도와 드립니다 !’즉시 대출. 경마장 내 상주함.
도박이 없는 사회는 불가능 할지도 모른다. 땀 흘려가며 노동으로 번 소중한 돈 보다 일확천금으로 돈을 벌고 싶은 허황된 마음의 꿈들은 오늘도 “와 아”경마장 함성 속으로 달린다. 인생 한방이다. 달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