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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달리는 이유    
글쓴이 : 류승하    24-05-20 01:08    조회 : 1,390
내가 달리는 이유
류승하

 2024년 새해를 맞으며 크게 결심했다. ‘올해는 달리기를 제대로 해보자’는 거였다. 비염 때문에 수영장을 그만두고 크게 체중이 불어난 상태였기에 더욱더 운동이 절실한 상황이기도 했다. 또 유튜브 인기 영상으로 인기 연예인 ‘기안84’가 마라톤에 도전하는 장면이 추천되니 ‘나도 도전해야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혼자 무작정 뛰면 다치기 쉽다기에 인터넷을 뒤져 바로 달리기 교실에 등록하고, 망설임 없이 수업료를 카드로 긁었다. 며칠 뒤 ‘뚝섬유원지역 3번 출구 인공암벽장으로 모이세요’라는 단체 공지가 카카오톡으로 날아왔다.

 첫 수업은 1월 초였다. 오전 7시, 겨울 칼바람을 뚫고 해도 안 떠 앞이 깜깜한 뚝섬으로 갔다. 처음부터 만만치 않았다. 코치의 지도에 따라 하나둘 하나둘 몸을 푸는데 귀가 떨어지고 온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달리는 게 이렇게 힘든 거였나, 사실 이때부터 그만두고 그냥 집에 갈까 몇 번을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진짜 위기는 조깅을 시작하면서 찾아왔다. 한강변 자전거 도로를 따라 두 줄로 조깅하는데 숨이 턱턱 차올랐다. 채 1km를 달리지 못하고 종아리가 땅땅해지며 발이 무거워졌다. 얼굴로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안경은 계속 흘러내리고 겨울 칼바람에 얼굴에 눈물인지 콧물인지 뭔가 잔뜩 엉겨 붙었다. 옆에서 코치가 같이 뛰면서 “할 수 있어요. 힘내세요. 파이팅!”을 외쳐주었다. 거기 맞춰 비명인지 기합인지를 힘껏 내질렀다. “할 수 있다. 으아악!!”

 ‘인생은 마라톤이니 자신만의 속도로 꾸준히 뛰세요’라고 누가 말했던가, 그러나 그날의 나는 도저히 그런 생각을 할 새가 없었다. 오직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고개를 아래로 처박고 앞사람 허리춤 체육복 마크를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여기서마저 낙오하면 집에 돌아가 부끄러워 할 말이 없을 것 같아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훈련을 겨우 마치고는 늦은 아침으로 눈물과 콧물을 섞어 순대국을 콱콱 씹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말을 퍼트린 사람들이 말야, 하나 빼먹은 게 있는 것 같다. 인생은 (죽어나게 힘든) 마라톤 아닌가? 괄호 안 내용을 괘씸하게 생략했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아무도 달리기를 안 할까 봐 거짓말을 좀 한 것 같기도 했다.

 그날 그렇게 힘들었지만 달리는 걸 포기하지 않은 건 다행이었다. 이유는 역시 순대국. 뛰는 건 미치도록 힘들었는데 순대국은 너무 맛있었다. 달리고 나서 입맛이 더 확확 도는 게 달리기 수업에 나가고, 몇 달을 꾸준히 뛰는 힘이 돼 주었다. 먹기 위해 훈련하고 매주 수업에 나갔다. 그렇게 포기 없이 훈련에 매진한 결과 지난 4월에는 대구에서 열린 10km 대회에 나갈 수 있었다. 완주 후 ‘나도 할 수 있다’는 기쁨의 눈물이 밀려왔다. 자신감에 내년 동아 마라톤 풀코스에 출전해 진정한 마라토너로 거듭나고야 말겠다는 거창한 목표도 생겼다. 그리고 그날도 지친 몸을 달래기 위해 역시 뜨끈한 순대국에 고기를 먹었다.

 달리기 전도사 무라카미 하루키는 저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마라톤은 달리는 경기이지 걷는 경기가 아니다. 그것이 내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다. (…) 설령 기어가는 한이 있어도 결승점에는 도착하고 싶었다.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키는 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무슨 일이 있어도 달리기를 포기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 나도 마찬가지다. 매번 뛸 때마다 죽을 듯 힘들지만, 완주 후 달큰한 순대국을 기대하며 뛰러 나간다.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간 반드시 골인 지점도, 순대국도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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