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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에게 하듯이 대해줘    
글쓴이 : 윤소민    24-08-07 23:08    조회 : 3,754

남에게 하듯이 대해줘


최근에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필드를 나가네, 동남아로 골프 여행을 가네마네 해도 저는 골프 안 합니다.” 하면서 내 인생에 골프는 없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사실 나는 무늬는 운동 선수지만 운동 신경이 심각하게 안 좋다. 그러니 내가 골프를 배운다면 남들 두 배의 시간과 돈이 필요할 것이고, 그런 비용은 생각만 해도 부담스럽다. 그래서 일찌감치 포기했다.

그런데 얼마 전 동문회에서 무료 골프 강좌가 오픈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격주로 토요일에 운영하고 가을까지 진행하는데 마지막에는 필드 경험을 한다.

! 대박! 이런 기회가 있다니! 배워도 남들만큼 늘지는 않겠지만, 골프 용어나 게임 룰을 알게 될 거고, 그러면 대화 나눌 때 알아는 듣겠구나...무엇보다 공짜니까 진짜 나쁘지 않겠다.’

서둘러 신청하고는 들뜬 마음으로 퇴근한 남편에게 자랑했다. 남편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국물 떠먹던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답답하다는 듯이 언성을 높였다.

하지 말라니까. 당신은 운동 안된다니까. 내가 말했잖아. 언제였지? 예전에 당신 테니스 배울 때 내가 그거 보고 얼마나 어이없었는데. 운동 신경이 이상하다니까...”

내가 시간 쓰고 돈 쓰는 게 아까워서 그러는 거 아니고?”

당연히 아깝지! 투자해서 뭐가 늘면 안 아깝지. 해도 안 되니까 아까운 거지!”

나는 할 말이 없어 일단 물러났다. 하지만 잘해서 나도 되는 스포츠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리라 결심했다.

레슨시간 마다 강사님의 설명, 몸의 자세, 손 모양, 다리 모양, 허리를 돌리는 각도, 하나하나 눈을 크게 뜨고 새겨보고 새겨들었다. 집에서는 거울을 보면서 연습하고, 틈나는 대로 유명 골프 선수의 쇼츠를 보면서 자세를 관찰했다.

그래, 골프는 대단한 순발력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공을 잘 보내서 넣으면 되는 거잖아. 이렇게 열심히 배우면 예상외로 잘 할 수 있을 거야!’

몇 번의 레슨 후 드라이브 시간이 되었다. 가장 큰 채를 소리나게 휘둘러 공을 멀리 직선으로 보내야 한다. 강사님은 몸의 중심 잡기, 허리 돌리기, 체중의 이동, 왼팔의 깁스 같은 고정 등 몇 가지나 되는 주의점을 설명하고 시범 보였다. 보기에도 어려워 보였지만 실제는 더 어려웠다. 몸의 중심은 자꾸 휘청거리고 체중 이동은 전혀 되지 않았으며, 한 가지 주의 사항을 신경쓰면 다른 것을 놓쳐서 도무지 자세가 안 나왔다.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도 어렵다고 힘들어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들 나보다는 나았다. 팀별로 순회하며 자세를 봐주던 강사님이 나를 보더니, 별도의 방에서 조교에게 개별 지도를 받으라고 했다. 창피하게 부진 학생이 되어버렸다...

참 한결같기도 한 운동 신경이다. 그래도 <오히려 좋아>라는 원영적 사고를 떠올리며 조교님의 개별 지도를 집중 지도의 기회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채를 휘두르는 순간순간 당신은 운동 안 된다니까했던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혼난 학생같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에 힘을 주고 깜빡이며 조금씩 삐져나오려는 눈물을 말렸다. 그런 내 마음을 조교님이 눈치챌까 봐 그의 눈을 피했다.

집에 오면서 남편에게 개별 지도 받은 이야기를 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말해봐야 또 그만두라고 할 테니까. 하지만 남편이 오늘 어땠어?” 라는 물었을 때 나는 사실대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혹시라도 괜찮아, 그러다 보면 차차 나아지지.’라는 남편의 위로를 기대했다. 참 터무니없는 기대다. 남편은 텍도 없는데...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더욱 기세 등등하게 말했다. 자기 예상이 맞아 신나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다니까!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해도 안 된다니까! 이제 봐봐라. 점점 더 다른 사람들하고 실력 차이가 벌어질 걸?”

! 시간이 갈수록 차이가 더 커진다는 사실! 그건 생각 못했다. 정말 그렇게 되겠구나 싶은 합리적 추론에 눌러놓았던 울음이 터졌다.

어릴 적부터 달리기 때문에 없어졌으면 했던 가을 운동회, 평균 이하 학점을 찍어대던 교대 체육 과목, 필기 시험보다 긴장했던 임용 체육 실기...내 몸이 내 맘 같지 않아 부끄러웠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남편은 불난 데 기름을 철철철 붓는 실수를 했다.

당신은 바보야? 당신 말대로 대책 없는 운동 신경이라면 살면서 그 때문에 좌절스러웠던 일이 많았을 거라는 생각 못 해? 어떻게 너는 해도 안 된다는 말을 서슴치 않고 하냐? 그리고 그런 말! 내 평생에 들어본 적도, 누구에게 한 적도 없는 그런 말을 도대체 몇 번을 하는 거야?”

남편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거듭 사과를 했지만 이미 끝났다. 웬만해서는 단기간에 화해하는데 이번에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자꾸 사과하고 애교를 부리길래 마지못해 용서해 줬다. 그리고 물었다.

골프는 당신이랑 같이 해도 좋을 운동인데, 당신이 그러는 진짜 본심이 궁금해

나는 당신이 잘하는 거 하면 되는데, 괜히 잘 안되는 거 해서 속상해하고 상처받는 게 싫어서 그래. 가족이니까 그런 말 해 줄 수 있는 거고...”

그래, 가족이니까 그런 말을 하는구나...걱정하는 마음, 위해주는 마음을 굳이 가시 돋친 상자에 담아 건네는 관계...가족이니까...

여보, 나를 그냥 남에게 하듯이 대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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