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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량진 블루스    
글쓴이 : 이나경    25-06-24 16:17    조회 : 1,393
   노량진 블루스 (1).hwpx (50.1K) [1] DATE : 2025-06-24 16:17:06

노량진 블루스

 

이나경

 

 

지하철 문이 열리자 숨이 턱 막히는 습기와 함께 생선 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서울 한복판에서 바다 내음을 맡을 수 있는 유일한 곳, 노량진. 이곳은 천국을 꿈꾸는 자들의 지옥이다. 이 불지옥을 걷다 보면 날이 너무 더워 찜통 속 도미가 된 기분이다. 학원을 도착하기도 전에 지칠 것 같아 잘생긴 아르바이트생이 있는 카페에 가서 900원짜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테이크아웃 한다. 학원에 도착한 후, 맨 뒷자리에 앉아 등줄기를 서늘한 벽에 기댄다. 음료를 마시며 내 앞에 앉아 있는 수백 명의 뒷모습을 멍하게 바라봤다.

 

자세가 꼿꼿한 사람들 사이로 머리 꼭대기부터 무너지고 있는 뒷모습들이 있다. 저런 뒷모습을 가진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대개 30~40대다. 내 나이가 30대 중반으로 향하고 있으니 나 역시 저런 모습이겠구나 싶어져 괜히 허리를 바르게 고쳐 앉아본다. 구부정한 척추를 가진 30대가 꼿꼿한 20대를 이기려면 맨 앞에 앉아도 부족할 텐데 이렇게 맨 뒤에 앉아도 괜찮은 것일까, 이런 걱정을 시작하려던 차에 수업 시작을 알리는 안내가 나온다.

 

드디어 수업이 끝났다. 나만의 보상 시간을 가질까 했지만, 오늘 모의고사 석차와 성적을 보니 난 보상이 아니라 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었다. 짐을 바리바리 챙겨 터덜터덜 독서실로 향했다. 내 나이 또래들은 다들 임용에 합격하여 완벽한 삶을 살고 있다. 근데 왜 나는 아직도 이렇게 노량진 구석에서 미완의 존재로 우두커니 앉아 있을까.

 

몇 년 전의 나는 내 교실이 있고 내 학생이 있던 기간제 특수교사였다. 비록 비정규직이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았던 20대 청춘이었다. 서른이 될 때, 친구들은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것에 대해 괴로워했다. 하지만 난 오히려 좋았다. 어린 나이에서 비로소 젊은 나이가 되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이토록 젊은 나인데 왜 나는 기간제 교사 재계약을 하지 못한 것일까, 왜 다른 학교에서는 날 채용 해주지 않는 걸까. 다시 임용 공부 따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취업이 되지 않아 30대 중반에 강제로 이 노량진으로 돌아오게 된 이 씁쓸한 인생이란.

 

독서실 구석에 앉아 붉은 비가 내리는 시험지를 찬찬히 살펴본다. 보면 볼 수록 점점 화가 난다. 이렇게까지 공부했는데 아직도 쓸모없는 점수인 것이 화가 나고 무엇보다 내가 알고 있는 개념인데 문제를 오독해서 엉뚱한 답을 써놓은 것들이 너무 많다. 난 이런 실수를 실제 임용고시에서도 종종 했었다. 저런 실수로 인한 형벌을 지금 이 독서실에서 받고 있는데 난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 이 골방에서 징역살이를 해야 하는 걸까. 순간 내가 너무 밉다. 내 머리를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때리기 시작했다. 머리를 한참 때리다가 눈을 떠보니 시험지가 눈물로 다 번져있다. 화장실에 가서 세수한다. 그리고 다시 자리에 앉아 서브 노트 정리를 한다.

 

인생에서 내가 온전히 성취한 것이 있었던가. 어릴 땐 유명한 문학상을 많이 받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런 작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다가 문득 나에겐 글 쓰는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재능이 없는 사람이 노력하는 것만큼 불쌍한 것은 없다. 심지어 나는 글을 쓰는 목적까지 속물이다. 그때부터 절필을 선언하고 완전히 다른 진로로 방향을 틀어 대학에 들어갔다.

 

내가 들어간 학과는 교사 자격증이 나오지만 먹고 살려면 임용고시에 합격해야 하는 곳이다. 그러려면 공부를 매우 잘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난 공부에도 재능이 없는 사람이었다. 도서관 대신 호프집 출석하기 바빴던 학우들만큼 나쁜 학점을 자랑하며 겨우겨우 졸업했다. 졸업과 동시에 임용 준비를 내리 했지만 1차 문턱은 넘지 못했다. 그래서 비정규직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근데 지금은 강제로 정규직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 처음엔 어쩔 수 없이 시작한 공부지만 지금은 오기가 생긴다. 내 인생에서 뭔가 하나쯤은 이뤄내고 싶다.

 

눈물로 수놓은 불면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나는 다시 터덜터덜 노량진을 향해 걸어간다. 지금은 불지옥으로 걸어가고 있지만 어느 순간 뼈까지 시린 겨울이 올 것이다. 지금의 나는 부족하고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 난 반드시 해낼 것이다. 결국 성공할 그날을 위해 펜을 칼처럼 들고 종이를 방패 삼아 노량진이라는 전쟁터로 난 오늘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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