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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로 피는 꽃    
글쓴이 : 박병률    15-03-15 10:28    조회 : 5,612

                        

                          홀로 피는 꽃

                                                                     

   3 여름방학 때였다. 마을 앞 냇가에 도랑물 흐를 때, 물가에 앉아서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고 밝은 달만 쳐다보니라는, 노랫말을 떠올리며 하모니카를 불었다. 논두렁 밭두렁에 반딧불이 날아다니고 하늘에 별이 초롱초롱했다. 때마침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우리 동네 앞을 지나갔다. 여자 혼자 밤길을 가기에는 무섭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망설이다가 여학생한테 다가가서 어디까지 가느냐고 물어보았다. 여학생이 뒤를 돌아보았다.

  , 내가 좋아하던 y였다. 나는 y를 쳐다보고 말문이 막혔지만, y는 내가 묻지도 않는 말을 했다. 친구 집에서 놀다가 막차를 놓쳤다고 했으므로. y가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했는데 나는 y의 집이 어딘지 몰랐다. 내가 자청해서 집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둘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국어 시간에 배웠던 소설가 황순원소나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y는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소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하지만 나는, 우리가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과 소녀 같았다. 이런 대목이 있지 않은가.

  소녀가 걸음을 멈추며

  “너 저 산 너머에 가본 일 있니?”

  벌 끝을 가리켰다.

  “없다.”

  “우리, 가보지 않으련? 시골 오니까 혼자서 심심해 못 견디겠다.”

  “저래 뵈두 멀다.”

  “멀면 얼마나 멀기에?”

  소설속에 나오는 소년과 소녀의 대화를 떠올리며 얼마쯤 걸었을까, 재를 넘고 저수지가 보이자, “저수지 아래가 우리 동네야."라고, y가 저수지를 가리켰다. 그래서 내가 소나기에 나오는 대사를 흉내 냈다. “멀면 얼마나 뭐노?” 내가 운을 떼자 y가 웃으며 꿰나 멀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저수지 아랫마을이 y가 사는 동네였다. y를 대문 앞까지 바래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하지만 y와 함께 지나갈 때와 달리, 산은 더욱 높아 보이고 저수지 물에 빠진 달은 유난히 희고 번득거렸다. 저수지를 지나면 상여를 보관해두는 집이 있다대낮에도 그 길을 지나가려면 머리끝이 서서 자꾸 뒤를 돌아보던 생각이 났다. 이어 할머니가 들려주던 도깨비 불이 떠올랐다. 동네 술 취한 사람이 저녁에 산길을 가다가 도깨비한테 홀렸다고 했다. 동네 사람이 누구랑 싸우다가 상대방을 큰 소나무에 묶어두었다고 큰소리치기에 다음 날, 그 집 식구가 가서 보았더니 빗자루를 칡넝쿨로 둘둘 감아놨다거나. 동네에서 대빗자루모양의 불빛이 나가면 어김없이 동네 초상이 난다는 이야기가 꼬리를 물었다. 십 리 길을 걸어 집으로 오는 밤길, 무서움이 밀려올 때 일부러 큰 기침을 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옷을 갈아입는데 메리야스가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남녀 공학으로 5반까지 있었다그중 여학생이 한 반이었는데 y가 반장이었다. 나도 1반 반장을 하면서 대의원 회의 때 만나고, 체육대회나 아침 조회시간이면 y와 나는 자기 반 맨 앞에 서서 줄을 세웠다. 선생님께 경례 구령을 부칠 때 내가 곁눈질하며 y가 잘하나 못하나 바라보았다. 이처럼 학교에서 y와 가까이 있으면서도 보고도 못 본 척 관심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런저런 추억을 간직한 채 졸업한 지 30여 년이 흘렀다. 동창들 소식도 모르고 살다가 몇 년 전 서울 재경동창회가 결성되었다. 매달 25명 정도 3개월마다 만나는데 y도 거의 빠지지 않았다. y 머리카락이 희끗희끗 하고 얼굴에 잔주름이 있지만, 나에겐 여고생 모습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다.

  동창회 끄나풀로 y의 시부모상에 조문을 가서 y 남편이랑 인사도 나눴다. 한 번은 동창 모임 때 열댓 명이 아차산으로 봄소풍을 갔다. 헬기장을 돌아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꼬부랑길 계곡 옆에 돗자리를 폈다. 자리에 앉자마자 학창 시절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나는 y한테 다가가서 고 3 여름방학 때 이야기를 꺼냈다. “자네를 집에 바래다주고 올 때 머리카락이 하늘로 치솟고, 누가 따라오는 것 같아서 뒤도 안 돌아봤어,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등에서 식은땀이 난단게.”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y가 말을 이었다. “청년이 엄살 부리는겨? 그때 소나기이야기를 했지.” y가 말끝을 흐렸지만 나더러 청년이라는 말은 무엇보다 크게 들렸다. 장이야 하면 멍이야 하듯 나도 한마디 거들었다. “배경 참 좋아요.”라고 말한 뒤, 뒤로 몇 발짝 물러서서 카메라를 들이댔다. 사진을 찍을 때 사물을 또렷이 보려면 조리개를 풀었다, 조이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카메라도 y를 바라보는 내 마음처럼 고3 학창 시절로 초점이 자동으로 맞춰진 모양이다. 초점이 맞지 않으면 인물이 흐릿할 텐데, 렌즈를 통하여 바라본 y는 고3 여름방학 때처럼 덧니를 드러낸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여름이 오면 언제나 내 마음에 홀로 피는 꽃!

 


    

                    

경희사이버대학교 2014 KHCU Academy Festa 백일장부문 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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