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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아    
글쓴이 : 박병률    15-08-24 20:06    조회 : 6,378

                                     괜찮아

 

  약혼식을 마치고 아내 될 사람과 둘이 손잡고 창경원 벚꽃 터널을 걸었다. 꽃이 눈송이처럼 바람에 날리고 머리 위로 벌들이 윙윙거렸다. 가끔 아내의 치맛자락이 펄럭이고 노란색 옷고름이 흐느적거렸다. 사자와 호랑이가 있는 동물원을 한 바퀴 돌아서 수정궁 앞 호수에 다다르자 아내가 뱃놀이를하자고 제안했다. 호숫가에는 나들이 나온 가족과 데이트를 즐기는 청춘 남녀들로 북적였다. 우리 차례가 되어서 배에 올랐다. 내가 노를 저을 때 뱃머리는 방향을 잃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 자리에서 뱅뱅 돌았다. 보트를 타려고 순서를 기다리던 주위 사람들의 함성과 박수 소리가 크게 들렸다. 내가 안절부절못할 때 '괜찮아, 힘내'라고 아내가 말했지만 나는 호수의 물 위에 곱게 이는 물비늘만 연신 걷어 올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아내가 지루했던지 돌아앉아서 노를 잡았다. 노를 잡고 팔을 쭉 펼 때 노가 물속 깊숙이 빨려들고 팔을 오므리자 물보라를 일으키며 보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에 탄력이 붙고 구경꾼들과 멀어질 때 뒤를 힐끗 돌아보았다. 양손을 높이 쳐들고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아내더러 최대한 멀찌감치 가자고 했다. 호젓한 곳에서 아내가 시범을 보였다. 동해바닷가가 고향인 아내는 무희가 무대에서 춤을 추듯 무리 속에 합류하기도 하고 멀리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내가 아무리 연습을 해도 전라도 농촌에서 자란 나하고는 달랐다. 아내의 코치를 받아가며 꿀처럼 달콤한 말을 나눌 때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배를 반납할 시간,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나는 개선장군이나 된 것처럼 노를 저어가며 선착장으로 향했다.

  지금은 창경궁으로 바뀐 당시의 창경원은, 벚꽃 개화시기에 맞춰서 음악회는 물론 야외에서 영화를 상영하거나 라디오 공개무대를 여는 등 각종 행사가 많았다. 특히 ‘밤 벚꽃놀이’는 오색전등으로 치장하고 서울 시민의 잔치마당이었다. 그럴 땐 전국에서 사람들이 밀물처럼 밀려들고 미아가 발생하는가 하면 소매치기가 극성을 부리기도 했다. 1984년 동?식물원이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옮겨가면서 창경궁으로 옛 궁궐의 모습은 되찾았지만….

 창경원 구경 후 그날 밤 아내가 짐을 챙기려고 밤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다. 이틀 후 열차로 올라온다는 연락을 받고 도착 시각에 맞춰서 서울역에 나갔다. 마침 눈에 다래끼가 나서 한쪽 눈에 안대를 하고 개찰구에서 아내를 기다렸다. 수많은 사람이 썰물처럼 역을 빠져나갔지만 아내는 없었다. 열차 시간표 위에 걸려있는 벽시계를 보았다. 시곗바늘은 아내가 타고 온다는 통일호 열차가 도착한 지 20분이 지났음을 가리키고 있다. 대합실에서 공중전화기를 붙들고 집으로 전화했다.

여동생이 받았다.

  ‘언니한테 전화 왔는데, 시계탑 앞에서 오빠를 기다린데요’ 라고. 

시계탑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탑을 몇 바퀴를 돌았으나 아내를 찾을 수 없었다. 길이 서로 엇갈렸을까 하는 생각에 역 광장에서 대합실로, 대합실에서 화장실 앞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다니다가 다시 집으로 전화했다.

 이번엔 어머니가 받았다.

  '야야, 애미가 집에 막 도착힜다.'라고 어머니의 사투리 섞인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가느다랗게 들렸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서울역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내한테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아내가 나를 쳐다보더니 오른손으로 입을 가리고 씩 웃었다. 그 후 내가 이야기하기 전에 아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청량리역에 내려서 보따리를 들고 나를 찾아다녔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아내는 청량리역에서 기다렸고, 나는 서울역에서 아내를 찾았던 셈이다. 나는 그때만 해도 시골에서 올라오는 모든 기차가 서울역을 통과하는 줄로 알았다.

 그날 저녁 냉면집에서 냉면을 먹으면서 ‘내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왜 웃었느냐고’ 아내한테 물었다.

그러자 아내가 답했다.

  ‘한쪽 눈 가리고, 나를 마중 나온, 성의가 고마워서, 요’라고. 리듬에 맞춰 띄엄띄엄 가사를 읊듯이 받아줬다. 그 여운은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았는가. 내 생의 어스름한 골목에서 서성거릴 때 '괜찮아, 힘내' 그 이름 조용히 불러본다.

                                            시에 2015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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