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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 울음    
글쓴이 : 박병률    15-06-01 20:01    조회 : 7,211

                                고양이 울음

                                  

  6m 길이 50m 정도인 우리 집 앞 아스팔트포장이 군데군데 깨졌다. 움푹 팬 자리에 고양이가 볼일을 보고 자갈로 덮는 시늉을 한다. 찬사를 보내줄 만하나 은폐치고는 허술하다. 냄새를 맡고 파리가 꼬인다. 배설물을 땅에 묻는 행동은, 천적의 추적을 피하려고 본능에 의존하는 습성이 있는 모양이다. 골목에서 50m 정도 벗어나면 동산(한양대학교 용지)인지라, 고양이와 마주치면 어이, 어이소리를 내며 내가 팔꿈치를 들고 산을 가리킨다. 하지만 애초 사람의 손에 길들어서 방향감각을 잃어버렸는지 사람 체취를 맡던 감각기가 살아 있는지, 산길을 외면한다.

 나는 야생 고양이와 전쟁 중이다. 배설물을 치우다가 움푹한 부분을 시멘트로 여러 번 발랐다. 줄다리기하듯, 차가 다녀서 깨지면 고놈은 발로 파헤치고 볼일을 본다. 하루는 냄새를 지우면 오지 않겠지,그런 생각에 수돗물을 틀어서 물청소를했다. 웬걸, 그 후로 화장실이 깨끗하다고 동네방네 소문을 냈는지, 하던 짓이 늘었다. 나도 이웃 사람처럼 그러든지 말든지, 본 체 만 체하면 그만인 것을.

  어느 날 큰 도로에서 아스팔트 포장을 하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을 바라보다가 시멘트를 바르던 자리가 떠올랐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아스콘 한 대야를 얻었다. 집에 오자마자 꽃삽으로 시멘트 부스러기를 긁어내고 아스콘으로 메웠다. 내 차로 왔다 갔다 하면서 다지기를 했다. 차 안에 앉아서 미소를 머금고, 승리의 기쁨을 미리 상상했다. 고양이한테 '화장실이 여기냐' 하고 내가 따지지 않아도 평화가 찾아오겠지 하였으나, 내 생각은 빗나가고 말았다. 고양이 처지에서 화장실이 없어진 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길바닥에 징검다리를 놓듯 볼일을 보았다. 삼일을 지켜봤다. 습성조차 메말라 버린 듯해서 동물도감을 찾아보았다.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함께 살 경우, 우두머리 고양이가 마치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듯, 배설물을 묻지 않고 자리를 뜨는 모습을 왕왕 볼 수 있다라고 씌어 있다. 다섯 마리가 우두머리가 되려고 경쟁을 하는지. 매일 한두 무더기는 차바퀴에 뭉개지고 사람은 지뢰밭인 양 피해 다녔다. 낮엔 그렇다치고 밤이 문제였다. 누군가 발에 밟힌 줄 모르고 계단을 오른 모양이다. 아침에 발 도장이 찍혀 있는 것을 대걸레로 닦아냈다. 눈에 보이는 족족 치웠으니 내가 고양이의 위계질서를 파괴한 셈인지도 모른다.

  어디 그뿐인가. 고양이가 배설물을 흙 속에 파묻는 습성은 화단에까지 번졌다. 인터넷에서 고양이 퇴치법을 검색했다. 고양이가 식초를 싫어한다고 해서 식초 원액을 박카스 병에 담고 뚜껑을 송곳으로 뚫어서 화단 군데군데 파묻었다. 효과가 없었다. 2 작전에 돌입했다. 페트병에 물을 담아서 고양이 눈이 부시도록 화단 앞에 줄줄이 세워놓기도 했으나 또 허사였다. 고양이가 한 번 지나가면 꽃이 시들어버렸다. 고민 끝에 내가 고안한 제3의 방법을 시도했다. 우산 고치는 집에 가서 우산 살대를 얻어다가 꽃 주위를 빙 둘러가며 꽃보다 높이 올라오게 땅속에 꽂았다. 그 뒤로도 고양이가 엉덩이를 어찌나 들이밀던지, 분비물을 보는 족족 제거하고 우산 살대를 촘촘히 늘려야만 했다.

  문제는 얼마간 지나서였다. 고양이 2마리가 새끼 3마리를 데리고 우리 집 앞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땅바닥에서 공기놀이할 정도의 작은 돌멩이를 집어 들었다. '요놈들 맛 좀 봐라' 내가 소리를 지르며 돌멩이를 던졌다. 큰소리에 놀랐는지 고양이는 이미 줄행랑을 쳤고, 돌멩이가 튀어서 현관문(강화유리)을 때렸다. 자동차 유리가 깨지듯 금이 아래에서 위로 퍼즐처럼 번졌다. 유리가 바닥으로 쏟아졌다. 유리를 지탱하고 있던 스테인리스가 쨍그랑거리고, 세 번째 돌계단의 모서리가 깨졌다. 분노가 극에 달하면 이성을 잃어버리고, 무엇에 갑자기 놀라면 억장이 무너진다라고 사람은 흔히 말한다. 자연을 지배하려는 오만이 재앙으로 덮쳐왔을까? 유리조각을 한 움큼 왼손바닥에 올려놓고,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알갱이를 굴려본다. 해가 정오로 건너갈 때, 알알이 보석처럼 반짝거린다. 강화유리는 충격이나 급격한 온도 변화에 견딜 수 있도록 단단하게 만들어졌다고 한다. 마땅히 제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 무너져버린, 텅 빈 공간. 현관문 쪽을 한 번 쳐다보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무심코 던진 돌멩이 하나가 부메랑이 되어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한국산문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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