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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새와 힘겨루기    
글쓴이 : 박병률    20-11-16 18:58    조회 : 8,316

                                       참새와 힘겨루기

 

 차조기씨앗이 싹이 돋았다. 차조기는 들깨와 비슷하지만 줄기와 잎이 자줏빛을 띠고 있다. 잎은 약용으로 쓰인다는데 깻잎을 닮아서 깻잎이라는 말이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다. 여름철 입맛이 없을 때 잎에서 풍기는 그윽한 향이 좋아 밥을 싸 먹으면 식욕이 돋았다.

  올봄, 새싹이 자라서 줄기가 서고 잎이 나왔을 때, 물을 주려고 물 조루를 들고 밭에 갔는데 차조기 세 그루 중 두 그루는 떡잎이 사라지고 줄기만 앙상하게 서 있었다. 채소를 가꾸면서 얻은 경험으로 미뤄볼 때 야도충이라는 벌레가 있으면 식물의 잎을 갉아 먹고 줄기를 잘라버리는 습성이 있다.

  무엇보다 차조기를 살려야겠다는 마음이 컸다. 해마다 싹이 나오면 벌레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모기장을 씌웠는데 시기를 놓친 셈이다. 차조기를 돌보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뒤로한 채 다시 싹이 돋을 거라는 희망을 앞세워,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참새가 날아와서 물 조루에 주둥이를 박고 목을 축였다.

  “조루에 빠지면 어쩌지?”

  혼잣말했다. 참새가 물을 먹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여서 접시에 수돗물을 가득 담아서 조루 옆에 놓았다.

  참새 두 마리가 번갈아 가며 물을 먹더니, 한 놈이 갑자기 다른 놈 머리를 쪼아댔다. 그러다가 머리털이 뽑힐 정도로 뒤에서 물고 늘어졌다. 한 놈은 도망가려고 발버둥 치고 한 놈은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물린 놈이 안쓰러워서 소리를 질렀다.

  “, 대그빡 피날라!”

  참새 머리에서 피가 날까 봐 소리치자 두 마리가 옆집으로 날아가서 담장에 나란히 앉았다. 사람 말귀라도 알아듣는 것처럼 위아래로 고갯짓을 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한 놈이 또 머리를 쪼아대니까 우리 집으로 다시 날아왔다. 못살게 굴던 놈이 뒤따라오더니만 짝짓기를 하지 않는가! 참새가 짹짹거리고 가느다란 다리로 통통거리며 밭에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거나, 깻잎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 생동감이 넘쳐서 저절로 힘이 솟았다. 하지만 정성스럽게 식물을 가꿨는데 병들고 벌레가 뜯어 먹으면 속상하다. 나는 미소를 머금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줄기만 서 있는 차조기두 그루와 잎이 한두 개 달린 한 그루까지, 빙 둘러 지주를 세우고 모기장을 지붕처럼 씌웠다. 일을 마치고 나니 뭔가 해결했다는 성취감이 들었다. 커피잔을 들고 거실 창문에 기대어 차조기덮은 모기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때마침 참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 종종걸음으로 모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참새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눈 깜박할 사이에 잎사귀를 따서 물고 가는 것이 아닌가. 나도 모르게 큰소리가 나왔다.

  “참새, 네 이놈! 야도충을 의심했잖아.”

  물도 떠다 주고 그랬는데. ‘물에 빠진 놈 구해 줬더니 내 보따리 내놔라하는 식이었다.

  참새가 다녀간 뒤 잎이 돋아나기를 바랐지만, 시간이 흐르자 세 그루 몽땅 줄기까지 말라비틀어졌다. 잎과 줄기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빈자리를 바라보며 흥얼댔다.

  “자주색 옷을 입은 깨, 해마다 봄이 오면 새싹이 돋아 줄기가 서고 잎이 번져서 식탁에 올랐지, 밥 한 숟갈 깻잎에 싸서 오물거리면 고소한 향이 입안에 고여.”

  깻잎을 생각할수록 침샘을 자극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고 있을 때 봄이 가고 여름이 왔다. 텃밭에는 가지, 고추, 토마토, 오이, 들깨가 크고 잎이 넓적넓적 늘어 날 때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들깨가 자라는 틈새를 비집고 차조기 모종이 엄지손가락 크기만큼 자라고 있었다. 씨앗이 늦게 싹이 돋아난 모양이다. 새싹을 바라보며 참새와 깻잎이 살아가는 방식에 대하여 생각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라는 속담이 떠올랐으므로.

  모종을 삽으로 떠서 해가 잘 드는 곳으로 옮겨 심었다. 모종 옆에 한 뼘 정도 되는 막대기를 세우고 모기장을 땅바닥까지 씌운 뒤 참새가 얼씬 못하도록 벽돌을 눌러놓았다. 참새와 깻잎이 힘겨루기하는 것을 보고도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물 조루로 깻잎에 물을 주면서 한마디 건넸다.

  “잘 커라, !”

                                                         2020, 11 한국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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