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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박꽃도 꽃이다    
글쓴이 : 박병률    21-04-18 09:29    조회 : 7,303

  호박꽃도 꽃이다


 호박꽃도 꽃이냐?”

 그런 말을 들으면 장미꽃만 꽃이냐.”라는 말이 내 입안에서 뱅뱅 돈다. 끝내 말할 수 없어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통증을 느꼈다. 오래전 집 울타리에 덩굴장미를 심었는데 해가 갈수록 줄기가 손가락 3개를 합친 만큼 두꺼워지고 가시가 사방으로 무섭게 뻗쳤다. 해마다 장갑 낀 손으로 가지치기를 하다가 손과 팔뚝에 가시에 찔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고민 끝에 장미를 뽑아버리고 그 자리에 호박을 심었다.

 얼마 안 가서 울타리에 호박 줄기가 무성하게 번졌다. 내가 키우고 싶은 방향으로 순을 접으며 줄기를 끈으로 군데군데 묶어 주었다. 시간이 흘러 호박꽃이 피었다. 수꽃은 대만 길게 올라오고 암꽃은 달걀만 한 열매를 달고 꽃이 핀다. 호박꽃이 피면 벌들이 꿀을 따려고 모여든다.

 꽃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마련인데, 어떤 사람은 호박꽃도 꽃이냐며 콧방귀를 뀌고 지나치지만 나는 호박꽃에 다가가 입맞춤을 하거나 꽃 속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꽃이 활짝 웃고 있을 때 운이 좋으면 꿀벌 2~3마리가 꽃 속에 머리를 처박고 꿀을 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벌들이 꿀을 따느라고 정신이 팔렸을 때 호박꽃 꽃말이 떠올랐다. 꽃말은 포용, 해독, 사랑의 용기란다. 내 나름대로 꽃말을 해석했다.

 벌들이 꿀을 따느라 이 꽃 저 꽃 옮겨 다니며 귀찮게 해도 웃음을 잃지 않는 것은 포용이요, 벌들이 한바탕 잔치를 치를 때 수정이 이뤄진다. 수정이 되면 꽃이 오므라들고 머지않아 꽃이 떨어진다. 호박꽃은 세상 뒤편으로 사라지면서 호박잎과 호박에 공을 넘겨준다. 이 또한 포용아닌가.

 호박잎은 데쳐서 밥을 싸 먹고, 풋 호박은 따서 된장찌개 끓일 때 듬성듬성 썰어 넣고, 늙은 호박은 호박즙이나 호박떡을 만든다거나 호박죽을 쑤어 먹으면 달짝지근하다. 특히 늙은 호박 꼭지 부분을 도려내 씨를 긁어낸 뒤 꿀 1컵 정도 넣고 도려낸 부분을 다시 닫은 다음, 3시간 정도 다리면 물이 고이는데 산모가 출산 후 부기를 빼는 약으로 쓰인다는 것은 해독이요, 호박씨는 프라이팬에 볶아먹으면 고소하다. 호박잎 줄기는 삶은 다음 마늘 넣고 프라이팬에 살짝만 볶아준다. 호박은 많은 걸 세상에 내놓는데 사랑의 용기가 아닐까?

 호박꽃을 생각하며 나태주 시인 풀꽃을 떠올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는 호박꽃을 오래 보는 편이다. 호박꽃이 등불처럼 환해서 오래 보다 보면 마음이 한층 밝아지고, 꽃 속에 수술이 우뚝 솟아있는데 사람이 목젖을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 것처럼 보였다. 속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며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하지만 장미꽃을 처음 봤을 때는 꽃이 화려해서 내게 강렬하게 다가왔지만 얼마 못 가서 싫증을 느꼈다. 사람도 얼굴은 반지르르한데 겪어보지 않고 속을 알 수 없듯, 내가 장미 가시에 손이 찔려서 피를 본 탓인지 꽃이 예쁘다는 생각보다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호박 줄기는 솜털 같은 게 있지만 장미처럼 손을 다치게 하는 일이 거의 없고, 호박꽃은 봄부터 서리가 오기 전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암꽃은 처음부터 작은 호박과 한 몸이 되어 세상에 얼굴을 내미는데, 어떤 사람은 호박꽃을 바라보며 절구통 같은 몸집, 멋 부린다고 호박꽃이 장미 되나한다거나, 또 다른 사람은 호박에 줄을 긋는다고 수박이 되나라고 비아냥거렸다. 말장난을 좋아하는 일부 사람이 속은 들여다보지 않고 겉만 보고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다. 심지어흥부전호박에 말뚝 박기가 나오는데, 심술궂고 못된 짓을 한다는 놀부이야기는 웬만한 사람은 다 안다.

 “호박꽃과 호박이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소리를 듣는다면 뭐라고 할까?”

 잠시 엉뚱한 생각을 했다.

 호박꽃은 투박하지만 순수해 보이고, 호박이 세상을 둥글둥글 살아가는 모습이 오래전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으므로. 무엇보다 호박꽃 활짝 피면 나팔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나팔수가 되어 세상을 향에서 한 말씀 던지지 않았을까? ‘호박꽃도 꽃이다라고 외치는 것 같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디선가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방 창문을 열었다. 눈길 가는 데로 따라갔다. 늦가을,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창문 너머 울타리에 호박 세 덩이가 매달려 누렇게 익어간다. 호박을 오랫동안 바라보는데 호박꽃이 겹쳐 보일까?

  성동신문 202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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