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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발보다 발    
글쓴이 : 신문주    19-06-02 11:18    조회 : 8,480

신발보다 발

                                                                                                                             신문주

 

      “자기 발에 맞아야지, 신발 치수는 아무 쓸모가 없어.” 대학 구내에서 수십 년간 구두를 수선해 온 명장, 맥가이버 아저씨 말씀이다. 치수가 같아도 신발 마다 실제 크기가 다를 수 있어서 신을 살 때 실제로 신고 걸어 봐야 한다고 하였다. 최근 들어 맞지 않는 구두를 사서 고생하다가 수선하기가 벌써 세 번째다. 왜 내가 고른 구두는 죄다 신데렐라의 유리구두가 돼 버릴까?

      아저씨는 내게 구두를 신어 보라고 한 후 예리한 눈으로 내 펌프스를 이리 저리 살피더니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었다. “신발이 커서 벗겨져요.”했더니, “값은 꽤 줬겠구먼. 어쩌다 이리 큰 구두를 샀을까?”하며 쯧쯧 혀를 찼다. 나는 차마 말을 못 했다. 그날이 균일가 세일 마지막 날이었고, 오후 늦게 수업을 마치고 병원 저녁 식사 시간에 맞춰 어머니께 가는 길에 번개처럼 샀노라고. 남이 신었을 때 참 편해 보였는데, 내가 막상 신어 보니 한 번 신고는 더 이상 신을 수 없었다. 아저씨는 구두 바닥에 덧 깔창을 넣은 다음 나 더러 교정을 걸어 보고 오라고 했다. 철쭉과 진달래, 개나리가 만발한 아름다운 교정을 마치 모델이나 된 듯 여유를 부리며 걸어 봤다. 그래도 신발은 벗겨졌다. 그러자 아저씨는 구두 뒤꿈치 부분에 심을 대고 그 위를 가죽 조각으로 발라 주었다. 두어 번 더 신고 벗고 하면서 벗겨지면 덧 깔창을 더 대었다. 신발을 보호하려고 구두 뒤축 굽까지 대었는데, 그렇게 하면 신발이 발에 더 조여진다고 했다. 이제 내 발이 신발 안에서 요동도 하지 않게 되었다. 수선을 마치면서 아저씨는 “이렇게 큰 신발은 애초 사지 않았어야 했어.” 하였다.

      아저씨는 얼마 전에도 내 단화를 수선해 주었다. 어느 날 지하철 역사 내 가게에 “성수동 남녀 수제화 공장도 직매,” “100% 천연 소가죽”이라는 큼지막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들어가서 편한 구두 한 켤레 사려다가 애물단지를 가져왔다. 발등 중앙에 신발 끈이 있고 안쪽 옆면에 작은 지퍼도 달려 있었다. 통굽은 아니나 바닥이 제법 두껍고 굽도 4-5센티미터 정도 높고 얌전하면서 튼튼해 보이는 갈색 구두였다. 그런데 한 번 신고 외출했다가 내가 잘못 골랐음을 깨달았다. 부드러운 가죽이 내 발을 잡아주지 못해 신으면 발이 앞으로 쏠리고 그 결과 내 엄지발톱이 신발 코에 부딪쳐 끝없이 수난을 당하였다. 아저씨는 이 신발도 덧 깔창과 뒤꿈치 심을 덧대어 발이 움직이지 못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신어 보니 신이 너무 조여서 발이 무척 아팠다. 어머니는 나더러 참을성이 없다고 하셨지만, 결국 그 구두는 동네 의류 함 행이 되었다.

      또 한 번은 샌들 한 켤레를 사려고 구두 가게에 들어갔다가 계획에도 없던 구두까지 산 적이 있었다. 주인은 지난 25년 간 유명 백화점 구두 매장에서 일했으며 현재 구두 공장도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는 나더러 맨발로 A4 크기의 백지 위에 서 보라고 했다. 펜으로 내 발 모형을 뜨더니 내 발을 진단해 주었다. 무지외반증이 있고 평발이고 엄지발톱이 위를 향하여 올라 와 있으며 뒤꿈치가 일자형이라 신발이 걸리지 않고 벗겨진다고 했다. 그리고 내 발 치수는 250이라고 했다. 주인은 내 발의 볼이 넓으니 앞이 둥근 신을 고르라고 하면서, 내 상식과 달리 낮은 신발이라고 내 발에 편한 게 아니라고 했다. 마침 편한 구두가 필요한 터라 전문가의 도움으로 이번에는 내게 꼭 맞는 구두를 찾게 되리라 기대했다. 이 구두 저 구두 신어 보다가 앞이 둥글면서 바닥이 두껍고 높이가 6센티미터나 되는 펌프스를 골랐는데 신발이 벗겨져서 구두 뒤꿈치에 심을 대야 했다. 그런데 집에 온 뒤 이 구두를 신고 외출하니 발이 너무 아팠다. 몇 번 견뎌 보려고 시도했지만 도저히 신을 수 없어 어느 단체에 기증하였다.

      구두를 신을 사람은 나인데, 나는 내 의견보다 전문가들의 말을 더 믿고 우왕좌왕하였다. 구두 가게 주인은 앞이 둥글고 치수가 250인 구두를 고르라 했고 맥가이버 아저씨는 내가 칼 발이니 앞이 뾰족하면서 내 발에 맞는 구두를 고르라 했다. 맥가이버 아저씨가 이번에 애써 고쳐 준 구두가 내 발에 척 맞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집에 와서 신어 보니 너무 꽉 죄어 내 엄지발톱이 신발 코에 부딪치는 통증 때문에 신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직접 구두를 손보기로 했다. 우선 덧댄 깔창을 떼어냈다. 그 다음엔 덧 댄 뒤축 굽을 떼어 냈다. 굽이 높아져서 내 발이 앞으로 더 쏠리게 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굽을 아교풀로 단단히 붙여 놓아서 내가 칼로 떼다가 원래 구두 굽을 흉하게 훼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수선을 하지 말고 그대로 학교 중고가게에 기증할 걸. 그랬으면 누군가 기분 좋게 새 신처럼 신을 수 있었을 텐데, 내 욕심 때문에 이 예쁜 구두를 망가뜨렸구나.

      펼 벅 여사의 소설 《대지》에 보면 가난한 농부 왕룽의 조강지처인 아란이 나온다. 얼굴은 아름답지 않지만 심성이 곱고 일을 잘하고 아이도 잘 낳는 건강한 여성이다. 그런데 왕룽이 치부를 하면서 첩을 들이고 첩에 빠져 아란을 멀리한다. 아란은 전족을 하지 않은 자신의 크고 미운 발 때문에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 딸이 발가락뼈가 구부러져 고통을 호소해도 딸의 발을 천으로 더 꽁꽁 동여맨다. 맞지 않는 신발이 내 발을 꽉 죄어 고통을 느낄 때마다, 아란의 딸을 떠올렸다. 하지만 요즘 세상에 아란의 딸처럼 발의 통증을 느껴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런데도 나는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 이제껏 내게 맞는 구두를 신어 본 기억이 없어 내게는 불편함이 더 편해서 일까?

      아무리 크고 못 생긴 발이지만 내 존재 전체를 싣고 다니는 소중한 친구인데, 내가 그동안 너무도 무심했다. 내 발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내 눈이 가는 대로 생각 없이 덜컥덜컥 구두를 샀다. 게다가 내 발은 아버지 발을 빼닮았다. 내 발을 볼 때마다 4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가 떠오른다. 아버지는 이제 눈으로 뵐 수 없지만 내 몸의 일부로 나와 함께 살아 계신다. 아버지의 선물인 내 발을 엄청난 고통 속에 빠뜨렸던 나의 경솔함을 깊이 뉘우친다. 옷보다 몸, 신발보다 발이 더 중요하다. 나의 발, 나의 미운 아기 오리여, 앞으로 신발을 사게 되면 꼭 그대에게 먼저 물어보리라.

 


신문주   19-06-02 11:21
    
안녕하세요?

오랫만에 글을 올립니다.
제 글을 개선할 수 있도록 조언 부탁드립니다.

신문주 드림.
노정애   19-06-07 19:05
    
신문주님
잘 지내셨나요
건강은 좋으신지요.
신문주님의 글을 보니 너무나 반갑습니다.
이 글은
주제도 소제도 모두 좋습니다.
구성도 아주 잘 쓰셨습니다.

'치수가 같아도 신발 마다 실제 크기가 다를 수 있어서 신을 살 때 실제로 신고 걸어 봐야 한다고 하였다. '
--->
같은 치수의 신발도 조금씩 다를수 있다며 구입할 때는 반드시 신고 걸어봐야 한다고 했다.

' 다음 나 더러 교정을 걸어 보고 오라고 했다.'
---> 다음 학교 교정을 걸어 보라고 했다.'

요렇게 간결하게 쓰면 좋겠습니다.
잘 쓰셨는데 제가 괜히 몇말씀 드려봅니다.
그나저나 예쁜 신발 못 신어서 어쩌나요.
신문주님 같은 분들이 생각보다 많답니다.
이 글 읽으시면 다들 공감하실것 같아요.
글 잘 읽었습니다.
신문주   19-06-07 22:20
    
노정애 선생님,

안녕하세요? 기억해 주시고 염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께서 고쳐 주신 부분이 참 마음에 듭니다. 수정본에 그래도 써도 될까요?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는 분이 많다고 하시니 크게 위로가 됩니다. 사실, 너무나 제 개인에 국한된 소재와 주제가 아닐까 염려했었습니다.

바쁘실 텐데 제 글을 꼼꼼이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정애   19-06-10 21:01
    
반갑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고친 글이 마음에 드신다니 제가 다 좋습니다.
얼마든지 쓰셔요.
또 좋은 글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신문주   19-06-14 22:22
    
노정애 선생님,

선생님이 고쳐 주신 덕분에 문장이 매끈하게 되었습니다.
그대로 쓸 수 있게 허락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또 글을 올릴 수 있도록 애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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