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과 변명 사이
강수경
내게 증상이 시작된 것은 약 3년 전이었다.
그날은 보통 때와는 다르게 몹시 지치고 우울한 하루였다. 같은 직장에 다니는 동료가 두 달 먼저 입사했다는 이유로 텃세를 드러내놓고 부렸기 때문이었다. 사장과는 오래전부터 개인적 친분이 있었던 관계로 본의 아니게 내 직급은 낙하산 모양을 하고 있었으니, 이래저래 불만이 많이 쌓였었던 것이다. 상처가 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교묘히 비틀어가며 툭툭 던질 때도 어린 친구여서 더더욱 그러려니 하며 배려라는 명목으로 입을 굳게 다물어 주었고, 그 대가로 내 가슴은 시리게 불어대는 바람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퇴근 시간이 다 될 무렵, 어색한 눈빛을 던지며 사장이 식사 자리로 잡아끌었다. 이끌려간 자리는 어김없이 불길한 예감으로 흘러갔다. 보통 때라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들었을 말들이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앞뒤 정황 맞지 않게 업무실적을 놓고 시비를 걸더니, 결국 별다른 이유도 없이 함께 회사를 끌고 가기엔 어려울 것 같다는 결론을 담담하게 통보했다. 퇴근 전 동료가 사장에게 건넸던 알 수 없는 미소가 문득 스쳐 지나갔고, 토사구팽(兎死狗烹)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도와달라고 먼저 손을 내밀었던 그가 이번엔 나를 버리고 있었다. 무심하게 대하는 사장의 태연한 태도에 그만 할 말을 잃어, 아무런 대꾸 없이 고개만 겨우 끄덕거려 주었다. 주위에 사물들이 초점을 잃고 흐릿하게 번져갔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참담한 마음을 부여안은 채 무거운 발걸음을 떼며 터벅터벅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집안은 급하게 출근하며 자행한, 온통 내가 저질러 놓은 잔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옷가지들이 이리저리 사방에 널려있고, 서랍들은 열린 채로 들쑤셔져 있었다. 제자리에 있어야 할 가방이며 액세서리 화장품 등등 잡다한 모든 것들이 뒤죽박죽 뒤엉켜 방안에 널브러져 있었다. 신발도 벗지 않고 한참을 그 광경에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일상적으로 빈번히 일어나는 상황이었음에도 욱한 감정이 가슴속을 파고 뜨겁게 올라왔다. 초라한 내 모습이 어질러진 집안과 겹쳐 보이며 왜 그렇게 비참했던지, 방 정리를 하다가 그만 털썩 주저앉아 꺽 꺽 소리 내며 펑펑 울고 말았다.
3년 전 그날 이후로 나는 점점 이기적으로 변해갔다. 어떤 경우의 약속이든지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횟수가 줄어든 것인데, 그 이유가 바로 외출 전 집안 정리 정돈을 반드시 하고 나가는 강박이 시작됐기 때문이었다.
홀로 지낸 지 오래된 솔로족인 나로서는 집에 대한 애착이 각별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나 인간관계에서 기인하는 많은 갈등은 대부분 밖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집으로 연결되어 들어와, 결국 집이라는 공간에서 해결점을 모색하며 풀어나갔다. 그래서 나에게 집은 중요한 의미를 부여했다.
집에 들어오면 우선 불편한 느낌이 없어야 했기에, 깨끗하고 포근하고 따뜻한 기운이 흘러서 심신에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어야만 했다.
어쨌든 강박은 오로지 나만의 편의를 위한 행동이었고, 약속 시간은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은 부분으로 전락해갔다.
그러는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는 약속 시간을 지키지 못한 변명만 자꾸 늘어갔다. 내 강박은 나만의 비밀이 되어 꼭 꼭 숨겨둔 채 ,말도 안 되는 변명거리로 대충 무마하는 기만이 자연스럽게 따라다녔다.
결국 나를 위한 강박적 행동은 이타심을 조심스럽게 빼내 가기 시작하였고, 변명만 늘어놓고 신뢰 안 가는 어쭙잖은 인간으로 변해간 것이다.
나는 현재까지도 강박과 변명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고 있다.
이 위험한 놀이는 언제쯤 끝이 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