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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개마을    
글쓴이 : 이미정    19-03-03 21:29    조회 : 4,803
   안개 마을.hwp (31.5K) [1] DATE : 2019-03-03 21:29:41

안개 마을

이 미정

 안개다. 사방을 둘러봐도 안개뿐인 풍경이다. 두 눈을 감았다가 뜨면 속눈썹 가득 맺은 습기가 흘러내릴 것처럼 풍부한 안개로 둘러싸인 동네는, 팔당대교 아래 한강을 끼고 있어서 계절마다 안개를 듬뿍 뿜어내는 재주도 가지고 있다. 특히나 계절이 넘어가는 간절기에는 몸살을 하듯이 안개로 덮여버린 마을은 회색 도시를 연상케 해주고 있었다. 어젯밤에 단지 내에 방송이 울렸다. " 아이를 찾습니다, 8살 여자아이로 청바지에 땡땡이 잠바를 입고 있었다고 합니다. 놀이터에서 없어진 것 같다고 하니 보신 분이나 보호하고 계신 분은 관리사무실로 연락 바랍니다." 시계를 보니 저녁 9시를 넘긴 제법 늦은 시간이었다. 거실 밖 밤하늘에는 먹물 같은 저녁 하늘에는 평소에 종종 떠 있던 별들도 별 하나 없는 어둠뿐이었다. 다시 한 번 방송이 울렸다. 11시가 넘어선 꽉 찬 어둠만이 가득하였다. 덩달아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어쩌다가 길을 잃었을까? 제발 집으로 돌아오렴, 침착하렴, 거실을 돌면서 중얼거렸다. 그때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기억이 깊게 숨겨둔 추억을 펼치기 시작했다.

 1996년 햇살이 활짝 핀 봄. 과천 어린이 대공원에서 8, 5살의 두 딸과 이런저런 놀이로 신나게 놀았다. 오후 6시가 되자 퇴장할 시간이라는 노래가 대공원 곳곳 스피커에 울려 퍼졌다. 순간 대공원 골목길은 숨바꼭질이 끝났다는 듯이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나와 길을 가득 메우며 걷고 있었다. 저녁 바람은 서늘하니 낮에 흘린 땀을 식히기에 안성맞춤이었고, 종일 놀이에 바빠 저녁도 못 먹어서 허기진 배를 달래면서 걷고 있었다. 그때 가볍게 뛰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던 큰아이가 눈앞에서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이 이리저리 뒤엉키어서 눈앞에서 깡충 거리던 아이는 숨바꼭질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대공원 가로수 나무 아래 자리 잡기 시작한 어둠들은 자기들의 영역들을 넓혀와 위협하는 듯했다. 가슴은 콩닥거렸고, 작은아이 손을 더 꼭 잡고 빠른 걸음으로 큰아이 이름을 목청껏 불러 보았다. 거리의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들로 재빠르게 대공원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큰 아이 이름을 더 크게 부르며 애타는 목소리로 호소하듯 불러보았지만 이미 시작된 어둠이 먹어버렸다.

  얼마쯤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가방 속 삐삐가 울렸다. 하필 이런 시간에 삐삐가 귀찮기도 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확인을 해 봤다. 모르는 번호가 찍혀 있었다. 눈길은 공중전화부스를 찾고 있었다. 어둠이 장악한 대공원 거리에는 공중전화부스도 숨바꼭질하듯이 보이지 않았다. 서성거리던 발길은 근처 상점에 들어가 사정을 얘기했다. 상점 주인은 아무 말 없이 전화기를 내어 주었다. 감사 인사도 잊은 채 삐삐에 적힌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는 손가락은 가게 안 불빛에 도움을 받아 힘을 얻었다. 여자 목소리가 들리더니 꼬마 아이가 엄마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삐삐를 쳐 달라고 했단다. 순간 다리가 풀려서 주저앉고 말았다. 두 눈만 말똥이 뜬 채로 나를 바라보는 작은 아이 손을 꼭 잡고 알려준 근처 상점을 찾아갔더니, 애타게 찾았던 큰아이가 상점 언니 곁에 서 있었다. 묶은 머리는 풀어지고 볼은 붉게 상기돼서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다행인지 큰아이를 꼭 안고 울고 말았다. 작은 아이도 놀란 눈으로 "언니" 하며 손을 꼭 잡아 주었고, 상점 주인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대공원 지하철역으로 접어들면서 이번에는 두 아이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마주 잡은 손길은 힘이 들어 있었다. 여전히 대공원 길에는 많은 사람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저 지하철역으로 빨려 들어갔다.

  지금도 과천대공원을 가는 일이 있으면 아이를 찾았던 상점을 나도 모르게 찾아보곤 한다. 세월이 많이 지난 만큼 옛 상점과 주인은 없어졌지만, 기억 속의 고마운 사람들은 내 가슴속에 따뜻하게 남아 있는 은인들이였다. 그때 큰아이가 엄마 삐삐 번호를 기억하고 있었던 것처럼, 지금 길을 잃은 아이도 엄마 휴대폰 번호를 기억하고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엄마의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도하면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뒤적거리던 밤을 이불속에 구겨 넣고 뿌연 아침을 맞았다. 여전히 안개는 자욱하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온 동네를 장악하고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큰아이는 서른이 되었고, 독립된 자아를 가지고 자신만의 생활을 당당하게 해내고 있다. 생각해보면 아득한 아픈 기억이었고, 누군가 아이를 찾는다는 방송이나 문구를 보면 가슴속의 아픈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올라 나의 심연은 작은 일렁임으로 흔들린다. 한숨을 크게 쉬고 거실 창문을 활짝 열어 안개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관리실 인터폰을 연결했다. " 여보세요? 길 잃어버린 아이 찾았나요?" "~예 찾았다고 합니다." "그럼 방송을 하셔야죠. 얼마나 걱정이 돼서 잠을 설친지 아시나요?" " 안 그래도 많은 분이 전화 주셔서 아이 찾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안개가 많이 끼어서 다른 일이 많아 잠깐 잊어버렸네요." 하신다. 역시 안개 마을이다. 안개가 많아서 다른 일을 처리하느라 찾았다는 방송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안개 마을 사람들은 안다. 안개가 주는 몽롱한 기분을…….

  그래도 아이가 안개 속에서도 엄마 휴대번호를 기억하고 있었구나 하는 안도감에 가슴은 시원하니 좋아서 안개를 듬뿍 담아 커피 물을 끓였다. 안개 마을 커피는 사람들을 포근히 감싸주는 맛이 일품이다. 안개로 수면제를 만들어 팔겠다는 <무진기행>의 한 대목이 생각나기도 한다. 이곳 한강 변 안개 마을에는 강줄기 따라 커피숍 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어서 사람들을 유혹해 안개마을 커피에 중독 시키고 있다. 이른 아침 한 모금의 안개 커피로 지난밤 뒤적거림을 말끔히 씻어내려는 듯 손길은 커피 잔을 감싸 쥐고서 안개 마을을 바라본다.

2019.1.



이형표   19-03-04 22:28
    
안개 마을의 해프닝이 글쓴이의 과거와 접목되어, 서정이 깃든 안개 마을답게 그 풍경이 아주 잘 표현되었습니다. 잘 쓰셨습니다!!!
김성은   19-03-06 08:45
    
안개마을에 대한 묘사가 아름다운 글입니다. 아침 커피향 가득한 글. 잘 읽고 갑니다.
이미정   19-03-12 13:01
    
감사 합니다~ 이형표선생님 김성은 선생님
두번째 글 쓰기가 두려워지는 순간 입니다.  조급해하지 않고 나만의 문장력을 길러 보겠습니다.
박영화   19-03-23 21:53
    
도입이 무척 극적입니다. 전개도 그렇고요.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이 있네요.
이미정 학우님, 글쓰기는 오래된 작가 님들도 그 한 편, 한 편이 쉽지 않을것 같아요.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마음은 저만치 가 있는데, 컴퓨터 자판은 첫 줄에 멈추기만 하지요.
시작이 반이라 했으니, 반은 성공하셨어요. ㅎㅎ
이미정 학우님만의 문장력~ 기대할께요. 잘 읽었습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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