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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현지적응 다 하셨죠?    
글쓴이 : 천영순    19-05-20 04:28    조회 : 3,753
   현지적응 합평 후.hwp (19.5K) [1] DATE : 2019-05-20 04:28:18

이제 현지적응 다 하셨죠?

 

                                                                                                                        천 영 순

해외봉사의 꿈을 가슴에 품은 채 21시간의 비행 끝에 우리는 우간다 엔테베 공항에 도착하였다. 코이카(KOICA, Korea international Coorperation Agency) 해외봉사단 115기 3명의 우간다 모범 단원! 주문을 외우듯 스스로 이렇게 자부하였다. 비행기에서 내린 후 코이카 한국인 직원이 영접하러 왔을 것으로 생각하고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우리의 이름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은 뜻 밖에도 피부색이 유난히 짙은 코이카 우간다 직원이었다. 해외봉사 담당 한국인 코디네이터도 최근 발령받아 공항에 나오지 못하였다고 했다. “WELL COME TO UGANDA”라고 쓴 영문 플래카드와 야자수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니 아프리카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공항에서 코이카차로 한 시간쯤 걸려 합숙할 집에 도착하였다. 단독주택 2층에 3개의 침실이 있고, 거실이 아주 넓어 쾌적해 보였다. 나는 가장 큰 방을 쓰게 되었다. 방의 침대마다 모기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순간 말라리아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점심은 코이카 우간다 소장님이 오찬을 베풀어주셨다. 소장님은 코이카 봉사단 제 1기 대선배님이고 1990년 파견당시 최연소자였다 한다. 115기인 나는 까마득한 선배님으로 존경스럽기만 했다.

 

도착한 날부터 8주간의 현지 적응훈련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로 은행계좌와 휴대폰을 개설하고 당장 먹을 물과 생필품을 사러 갔다. 생활비는 회비를 걷어 공통경비로 썼다. 총무는 회비를 관리하고, 물건 구입, 사적 단체미팅 논의, 외부인 합숙소 초대 같은 일을 하게 된다. 60세가 다 되어가는 나는 혹시 총무를 면제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보았으나 신세대의 철저한 감각으로 정확히 기간을 나누어 맡았다.

캄팔라는 우간다의 수도이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규모의 대형마트가 여러 곳이 있다. 생수와 한국인이 선호한다는 브랜드의 쌀, 그리고 시리얼 등을 샀다. 그리고 당장 필요한 접이식 빨래 건조대는 1개에 9만 실링이라고 한다. 한국 돈 3만원 정도다. 3개를 사서 쓰고 훈련이 끝나면 각자 가져가기로 했다. 함께 간 코이카 현지 직원은 “Are you sure?”라고 하며 몇 번을 되물었다. “필요하면 사는 거지 한국돈 3만 원 정도 쯤이야하고 생각했다. 나중에 우리가 한 달 생활비 520달러를 받아 쪼개 써본 후 그것이 굉장히 큰 돈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더구나 이곳 보통 서민들 봉급이 30만 실링(100달러 안팎)정도인데 건조대 3개를 그리 쉽게 사는걸 보고 얼마나 놀랐겠는가?

 

저녁에 돌아와서 밥을 하려고 가스레인지를 켰다. 아무리 스위치를 돌려도 점화가 되지 않았다. 집주인에게 전화를 하니 가스렌지 옆에 있는 성냥으로 불을 붙이라고 한다. 가스도 다 쓰면 바꿔야지 전기도 충전해야지 먹고 사는데 만도 신경 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밥은 세 사람이 번갈아가며 해 먹었다. 구세대인 나는 김치를 담그고 수제비를 빚기도 하고, 신세대 두 단원은 스파케티나 서양요리를 만들어서 식사를 해결하였다. 늦잠을 자거나 피곤한 날 아침은 시리얼로 때웠다.

 

하루 일정은 아침 8시에 영어수업으로 시작된다. 우리는 동아프리카에서 어학연수를 온 마케레레 대학 연수생과들과 함께 공부하게 되었다. 첫날 영어 에세이쓰기와 인터뷰로 레벨스트를 하는데 몹시 떨렸다. 혹시 혼자 하위레벨 반으로 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모두 중급반으로 편입되었다. 수업 후에는 코이카 사무실로 가서 우간다의 개황, 봉사단 복무규정, 활동물품 구입요령 등 봉사활동에 필요한 강의를 들었다.

평일에는 빡빡한 강의 일정으로 쉴 틈이 없었다. 토요일 오전에도 도우미로 보내준 현지코디가 영어숙제도 도와주고 학교 등으로 이동시 동행을 해주었다. 현지코디 한 명이 배정되다 보니 서로 자기가 독차지 하려고 했다. 정보도 많이 입수하고, 영어대화 한 마디라도 더 하여 빨리 적응 싶은 마음이기 때문이다. 현지코디는 한국어를 배우는 여학생을 배정되었다. 훈련이 끝나 파견되면 나의 제자가 될 학생이지만 자연스럽게 젊은 단원과 더 친해졌다.

 

교육을 받으며 시차 적응이 덜 되어서인지, 해발1,200미터의 고지대라서 그런지 몹시 피곤하였다. 가장 어려운 과목은 우간다 강사에게 성희롱 예방교육 강의 였다. 아직 우간다식 영어도 귀에 익숙하지 않은데 영어강의를 들으니 신경만 곤두섰다. 할 수 없이 코디네이터에게 통역을 해 달라고 하여 내용을 겨우 알아듣게 되었다.

두 번째 주에는 광견병 예방주사를 2회에 걸쳐 맞았다. 영월교육원에서 여섯 가지 예방주사를 맞아 이젠 쉽게 맞을 수 있었다. 그러나 동기중 간호단원은 크게 비명을 질렀다. 간호사도 주사를 무서워하는 줄은 처음 알았다. 우간다에서는 남자 간호사가 많다. 길가에서 재봉틀을 놓고 옷 수선을 하는 남자도, 여자들의 손톱과 발톱정리를 하는 사람도 거의 남자였다.

 

3번째 주에는 국립박물관과 센트럴 모스크 등을 관람하였다. 국립이라고는 하지만 각 부족의 역사가 다르다보니 국가적으로는 특별한 전시품도 없고 관리도 허술하였다. 관심이 없이 지나다가 어느 한 곳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88 서울올림픽에 관한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었다. 얼마나 반가운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우간다에서 우리나라 사진을 만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저녁에는 우간다 전통춤을 공연하는 은데레 극장에 갔다. 우간다의 주요 부족의 노래, 드럼, 대표적인 전통 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었다. 이 공연은을 보면 우간다 부족의 문화를 다 경험 할 수 도록 구성되었다. 걸죽한 사회자의 입담이 관객을 사로 잡았다. 바베큐와 맥주를 먹으며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공연에 푹 빠져들었다.

시티투어가 있는 날은 캄팔라에서 가장 크다는 나카세로 전통시장에 갔다. 채소와 과일로 유명한 시장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북적이는지 쉽게 지나갈 수가 없었다. 퇴직하기 전에 전통시장업무를 담당하면서 여러 나라의 시장을 가 보았지만 이처럼 인파가 많고 혼잡한 곳은 처음 보았다. 현지인들은 지나가는 우리를 툭툭 치면서 헤이, 차이나하며 호객을 했다.

8주 중 5번째 주에는 자신이 근무할 기관에 가서 OJT(on-the-job training)를 받았다. 나는 근무지인 마케레레대학 어학센터에 가서 담당 코워커와 어학센터장에게 인사를 했다. 무척 반갑게 맞아주었다. 간호단원은 병원으로, 미술교육 단원은 지방에 있는 은산지중학교로 갔다.

OJT기간 1주동안에는 자신이 살 집도 직접 구해야 한다. 대부분의 외국인은 안전을 위해 경비가 24시간 지키는 집을 구한다. 안전하고 깨끗해 보이는 집은 월1,000 달러 이상 부르는데 우리는 540 달러 범위 내에서 활동기관과의 거리, 안전, 편리함을 생각하여 결정해야 한다. 집구하는 것은 어렵지만 후에 안전이나 다른 문제가 생기면 부담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인지 전적으로 자신이 결정을 해야한다. 아직 동서남북도 모르는데 어떻게 안전하고 편리한 집을 구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잠이 오지 않았다. 브로커와 임대업자들은 코이카 봉사단원이 짧은 기간 안에 집을 구해야 하는 것을 알고 가격을 아주 높게 불렀다. 나는 근무지인 마케레레 대학의 게스트하우스에 임시 숙소를 정하고 좀 익숙해지면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치안이 좋지 않은 우간다의 경우 봉사단원은 해가 지는 오후7시 이후에는 이동을 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7시부터 밤이 시작되다보니 활동할 낮의 시간은 짧고 밤은 아주 길게 느껴진다. 거실에 모두 모여 다운로드 받아온 영화를 같이 볼 때도 있고, 가끔은 경쾌한 음악소리를 틀어 집안 분위기를 바꾸어 주었다. 견학이나 교육을 받고 코이카차로 집에 데려다 주는 날에는 꼭 장을 보았다. 차가 없기 때문에 이런 때 물과 쌀과 채소 등을 잔뜩 사가지고 와야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8주에는 가까운 관광지 진자(Jinja)12일 여행을 다녀왔다. 나일강 발원지 (Source of Nile)가 우간다에 있는 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이곳을 두고 역사적으로는 이집트와 많은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 여행을 잘 마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동기 한 명이 심한 설사를 했다. 담당 코디네이터는 전화를 받자마자 달려와 병원으로 싣고 갔다. 해외에서의 이런 도움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콜레라일까 걱정했지만 검사결과 콜레라는 아니라고 하여 다행이었다. 혼자 살 때 처음 병원에 가는 것 보다 합숙할 때 병원에 가 본 것이 좋은 경험이라고 서로 위로 하였다.

마지막 날 담당 코디네이터는 우간다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여기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니 이들을 낮게 보지 말고, 항상 감사하며 활동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코이카 소장님을 모시고 각자 최종 PPT 발표를 끝으로 현지 적응훈련을 마쳤다. 코이카 우간다 소장님 명의로 된 수료증을 받고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코이카 직원은 우리에게 축하한다며 말했다. “이제 현지 적응 다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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