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년 만의 만남
석정원
채영신(최용신) 선생님 전 상서
선생님!
건강은 좋아지셨나요?
하늘나라에서도 여전히 쉼 없이 봉사하며 살고 계시겠죠?
나이 든 소녀가 42년 만에 직접 만나러 가는 발걸음은 호기심과 설렘에 꽉 차 있습니다.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상록수』의 주인공이 실존 인물이라니! 그래서 여운이 많이 남았나 봅니다.
아르바이트하면서 동료와 책 내용을 나누던 중, ‘채영신이 실제 최용신 선생님이고 경기도 안산 상록수역에서 가까운 곳에 최용신 기념관이 있다’라는 얘기를 듣고 전율이 온몸을 감쌌습니다. ‘우리 언제 한 번 날 잡아 같이 가보자’라고 했지만, 시간이 잘 맞지 않았습니다.
‘자투리 시간에 혼자라도 빨리 다녀와야겠다.’ 마음먹고 바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은연중 긴 세월 늘 맘속에 자리했던 선생님, 기념관 옆 공원에 묘소도 있다고 하니 직접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안산 상록수역이 그 상록수와 연관이 있다니! 진작에 알았더라면 우리의 만남은 좀 더 빨랐겠죠?
오늘 나에게 주어진 빈 시간은 6시간, 저는 저녁 수업 전까지 돌아와야만 합니다. 12시에 센터에서 수업을 마치자마자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공복이지만 식사가 우선이 아닙니다. 혹시 몰라서 삶은 옥수수 한 봉지를 사 들고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바쁜 마음을 상록수 책에다 떨구고 차분하게 다시 읽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농촌 계몽운동에 선봉장이셨던 당신, 존경하는 마음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죽음 때문에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아련함을 저도 함께 간직하며 살았습니다.
2시간을 달려 도착한 안산은 푸르고 푸르렀습니다. 핸드폰 지도를 보며 기념관에 도착했습니다. 생각보다 자그마했지만 알찼습니다. 해설사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질의응답을 했습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당시에 푹 빠져든 소중한 30분이었습니다. 해설 후 혼자서 사진과 자료를 세심히 살펴봤습니다. 원래는 선교 목적으로 파견됐으나 눈으로 본 샘골(현: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은 먹고 살기도 급급한 낙후된 농촌 마을이었다죠? ‘일본이 주인이 된 이 나라, 정신까지 빼앗겨선 안 된다! 우선 한글 먼저 깨치자’ 결심하고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솔선수범하신 선생님!
남녀 차별도 심했던 그 시절, 처음부터 너무 힘드셨죠? 안 봐도 눈에 훤합니다.
짧고 굵게 살다 가신 분! 선각자로서 자신은 뒷전이고 농촌 마을의 진정한 선생님이요! 어머니였습니다!
각기병으로 시작돼 장중첩증까지 고생하다 결국은 사랑하는 임과, 자식 같은 어린 제자들마저 놓을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 현재 의술이라면 반드시 고쳤을 텐데 말입니다.
아린 가슴으로 기념관을 나와 공원으로 갔습니다. 90년 전의 숨결을 간직한 채 흐트러짐 없이 서 있는 상록수를 위시하고 하나하나 둘러보았습니다.
그때의 교회는 현재도 예배 중이고, 직접 심으신 상록수인 향나무도 그대로 있건만 임만 없었습니다. 아니 있었습니다. 드디어 찾았습니다.
누워 계신 묘소에 읍배를 드렸습니다. 비석의 글귀를 천천히 눈에 담습니다.
겨레의 후손들아! 위대한 사람이 되는 네 가지 요소가 여기 있나니
첫째는 가난의 훈련이요 둘째는 어진 어머니의 교육이요 셋째는 청소년 시절에 받은 감동이요 넷째는 위인의 전기를 많이 읽고 분발함이라 - 농촌계몽 운동가 최용신 선생님이 남긴 말씀 - 『최용신 비석에서』
임 옆에 장로 김학준 교수지 묘(1975.3.11. 가심)가 아로새겨져 있고 측면에 상록수 약혼자로 명시돼 있네요. 아! 이분이 박동혁이었군요.
덩치 크고 우직하고 건실한 느낌으로 훅 제 가슴속에 들어온 남자 주인공이었죠?
선생님! 다음엔 박동혁(김학준) 선생님께도 편지 드리고 싶은데 이해해 주실 거죠?
약혼한 지 10년 되던 해, 4월부터 같이 농촌 사업을 하기로 약속했건만, 병마에 백기를 든 최용신 선생님! 이승에서 못다 한 사랑 저승에서라도 꼭 이루시어 행복한 날 보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가치관이 맞고 지향하는 바가 같은 동지, 때론 가족보다 더 가깝고도 힘이 된다는 사실, 경험해 본 적이 있어서인지 순간 더 감응되는군요
곳곳에 남겨진 선생님의 흔적!
황혼이 저무는 길목에서 스승님의 가르침의 글귀를 다시 한번 되새깁니다.
추모비
잠자는 자 잠을 깨고 눈먼 자 눈을 떠라 살길을 닦아보세 조선에 부흥은 농민에 있고 민족의 발전은 농민에 있다
농촌계몽운동가 건국 훈장 애족장 최용신 선생 - 『추모 비석』에서
최용신 순국 60주년이 되던 1995년 추서 받고 2005년 1월에 국가보훈처의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되셨네요. 참말로 다행입니다. 이 기념관도 제자의 기탁금으로 건립이 됐군요!
훌륭한 스승에 버금가는 제자입니다. 희생 봉사하셨던 삶이 확연히 빛나는군요! 당시 천곡(샘골) 강습소가 있던 자리라니 감개무량합니다. 선생님의 마지막 제자가 2년 전 하늘나라로 가셨다는데 사제지간의 깊은 정을 나누고 계시죠?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하시겠습니까?
젊은 날의 꿈을 향해, 발을 내딛는 원년에 선생님과의 만남은 충분히 의미 있고 보람된 시간이었습니다.
최 선생님의 헌신적인 삶은 심훈의 소설 『상록수』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죠?
16살 사춘기 문학소녀도 상록수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 ‘내 인생 책’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겁니다.
저는 지금 서울디지털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다니는 늦깎이 학생입니다.
심훈 작가의 세밀한 관심과 정성 어린 손끝을 통해, 상록수 선생님의 삶이 세상에 나오게 되는 과정은 문학도로서 본받아야겠습니다.
선생님!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저처럼 상록수를 가슴에 품은 이들과 함께요.
건강히 잘 지내십시오!
2023년 유난히 푸른 가을날에
상록수 소녀 석정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