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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떠오르다    
글쓴이 : 이지영    24-05-31 09:48    조회 : 2,916
   시,떠오르다.hwp (70.0K) [0] DATE : 2024-05-31 09:48:50

, 떠오르다

                                                                                                                     이지영

 

 작년부터 디지털대 문예창작과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시 과목을 수강하면서 시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 가는 중이다. 시를 읽다 보면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게 되고, 어느 순간 무엇이 시인에게 시를 쓰게 했을까를 떠올리게 된다. 시냇물처럼 흘러가는 일상에서 느낌표가 그려지는 시간을 붙잡아 두고 싶었을까. 대상을 관찰하고 시상이 떠올라 기록하면 그 순간들을 계속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

 서울에 벚꽃이 피기 일주일 전쯤, 남산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다. 지하철 서울역에서 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면 도서관에 닿는다. 그날따라 서울 버스 노동조합 파업으로 도서관까지 30분 가까이 걸어서 올라갔다. 산 오르막길이라 오랜만에 등산하는 기분을 느끼며 천천히 오르자, 버스를 탈 때와 다르게 평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느 자그마한 커피숍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간판 아래 마음을 내려드립니다라는 문구이다. 따뜻함을 풍기는 주인장의 마음이 느껴진다. 커피를 내릴 때, 마음을 다해 정성껏 내려줄 것만 같았다. 그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면 주인장과 마음을 나누며 이야기하고 싶을 것 같다.

 옷 상점 진열장 아래쪽엔 동네 멍멍이 목 축이는 곳이라는 재미있는 문구가 쓰여있었다. 이 동네 개들은 산책할 때 목마를 일은 없겠단 생각에 마음이 훈훈해졌다. 그런 느낌을 시로 써보고 싶은 생각에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도서관에 도착했다. 길을 가다 왜 그 글귀들은 내게 들어왔을까. 며칠 후, 마음에 남아 시가 되었다.

 

남산 가는 언덕길 카페가 서 있다

입구에 줄지어 활짝 핀 진달래꽃

벌처럼 웅성거리며 다가가는 연인들

- 자작시 소월길에서부분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쌀쌀했던 가을날, 동네 공원 입구 매주 목요일 밤을 파는 용달차가 서 있었다. 밤을 수북이 실은 차에서 밤을 까는 아저씨가 있었다. 기계를 돌려서 깎고 수행하듯 칼로 속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낸다. 투명 비닐에 담긴 밤은 방금 목욕하고 나온 아이처럼 말끔하다. 차 옆을 지나는 사람들은 얼마예요, 묻고 밤을 보며 지나간다. 공원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운동하고 나왔는데, 같은 자리에서 같은 자세로 아저씨는 밤을 까고 있었다. 해가 넘어가며 날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정성스레 깨끗하게 깎아내고 있었다. 아저씨는 껍질이 목에 걸려 고생한 적이 있었을까.

아저씨, 밤 얼마예요?”

작은 건 오천 원, 큰 건 만 원이요.”

하나씩 주세요.”

이만 원을 건넸다. 많이 담았다며 작은 걸 두 개 가져가라는 말이 어눌하다. 집에 가고 싶다는 것으로 들리는 발음이 아프다. 기울어 있는 남은 한 봉지가 눈에 밟혔다. 난 밤 세 봉지를 배낭에 넣었고, 아저씨는 용달차를 몰고 저만치 달려갔다. 이 이야기는 산문시로 쓰였다.

 

 시에 대한 영감을 주는 요소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림, 영화, 음악, 문학 작품 등 다른 예술 작품을 감상하거나 새로운 장소를 방문하는 것도 자극이 될 수 있다. 나는 주로 새로운 장소나 자연, 그늘진 곳에서 발견한 것들이 많이 다가온다.

 안타까운 사고로 세상을 떠난 어린 희생자의 목소리로 노래한 시를 읽은 적이 있다. 십 대의 고등학생은 괜찮다며 부모를 위로하고, 그 부모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노래했다. 서로의 아픈 마음을 다독이며 시는 위로를 전하고, 사회에 시사점을 주었다. 시는 어두운 곳을 밝히는 촛불 같은 것일까. 지금은 습작 단계에서 시를 배우고 있지만, 훗날 세상의 비를 피하는 우산 같은 시를 쓸 수 있기를 소망한다.

 시를 쓰다 보면 일상의 평범한 것들도 특별하게 여겨지며 시는 현재를 소중하게 여기도록 마법을 부린다.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순간을 수집하게 하고 세상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한다. 나에게 시는 세상 너머를 바라보는 하나의 렌즈가 되었다. 나도 누군가의 마음을 내려주는 시를 쓸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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