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으로 간 자유인
최정옥
작은애가 21살이 되고, 결혼과 함께 시작된 육아와,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의 시간도 줄일 수 있게 됐다. 나와는 반대의 MBTI를 갖는 남편과 매번 함께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혼자 가는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했다. 인생 1막 결혼 전, 인생 2막 육아가 끝났다고 생각할 때쯤, 인생 3막 자유인으로서 오로지 나를 위한 삶! 오랜만에 깃대 쫓아다니는 패키지를 예약했다. 9박10일 동안 이탈리아, 스위스 인터라켄, 프랑스 파리를 여행하는 일정이었다.
이탈리아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바라본 피렌체의 전경이 아름다웠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배경이 되었던 피렌체는 내가 평소 꿈꾸던 유럽의 모습 그대로였다. 넋을 놓고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혼자 온 여행을 즐겼다. 폼페이도 인상적이었다.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에 있는 고대 폼페이는 쾌락적이고 향락적인 도시였다. 가장 전성기에 베수비오 화산의 대폭발로 그대로 묻혀버리면서 갑자기 멸망했다고 한다. 자연의 섭리 앞에 인간의 문명은 허무하게 느껴졌다. 폼페이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번화했던 그 시대 사람들 모습이 연상되곤 했다. 12월이었지만 이탈리아 남부는 따뜻했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폼페이를 거닐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만의 사치와 낭만을 즐겼다. 폼 잡고 에스프레소 커피를 홀짝이며, 젤라토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을 만끽했다. 더없이 행복했다.
새벽 4시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출발했다. 길고 긴 터널의 끝에서 만난 스위스의 첫 모습은 밝아오는 여명으로 황금빛의 만년설이었다. 아름다운 스위스의 자연 앞에 혼자 서 있는 내 상황이 놀랍기도 하고 감격스러웠다. 스위스의 이국적인 기차를 타고 인터라켄으로 갔다. 곤돌라와 산악열차를 타고 융프라우로 갔다. 대부분 실내 관광이라 아름다운 알프스의 만년설을 유리벽 너머로 바라보았다. 해발 3,000미터가 넘는 플라토 전망대에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드디어 알프스의 만년설을 밟아 볼 수 있었다. 날아갈 듯한 매서운 찬바람이 상쾌했다. 편안하게 융프라우에 올라 짧은 관광을 하고 숙소로 가는 길은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커다란 배낭을 멘 등반가와 스키맨들이 부러웠다. 언젠가 너무 늦지 않게 알프스를 등반하기 위해 다시 오리라 생각했다.
파리는 도시 자체가 명품샾이고 박물관이며 유적지였다. 보는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양한 매력을 뽐내는 에펠탑에서 석양의 센강을 배경으로 분위기 있는 사진 한 장을 남길 수 있었다. 유명한 관광지를 훑고 가는 듯한 패키지여행은 많은 곳을 편안하게 둘러 볼 수 있었지만 깊이 있게 즐기고 사색하기에는 아쉬움이 많았다. 다음에 다시 와야만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됐다. 파리 국제공항을 출발해 경유 공항인 터키의 이스탄불공항에서 4시간의 대기가 있었다. 예고도 없이 5시간 연착을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9시간 동안의 긴 대기시간이었지만 사진을 정리하고 여행 후기를 쓰면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홀가분하게 혼자 떠난 유럽이 좋았다. 장시간의 비행도 이색적이었고, 비행기 결함이라고 판명 된 연착도 재미있었다. 매일 아침 호텔 조식과 세 번의 기내식이 맛있었다. 조식으로 빵, 치즈, 요플레를 원 없이 먹었다. 속이 편하지 않아 빵을 안 좋아하는데 유럽의 빵은 속도 편하고 너무너무 맛있다. 긴 비행시간도 행복했다. 다시 유럽으로 날아가고 싶다. 식구들이랑 연구해서 우리 집 식사 문화를 바꿔 봐야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다양한 치즈와 수제 요플레, 올리브 오일, 발사믹 식초를 즐겨 먹고 싶어졌다. 우리 집에서 내가 유독 입맛이 촌스러우니까 가능할 것 같다.
가족과 동남아 쪽 여행을 즐기던 내가 혼자서 유럽에 갔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인 줄 알고 살았다. 이번 여행을 다녀와서 앞으로 더 먼 나라도 얼마든지 혼자 떠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 나는 먹고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서 일했고, 온몸과 맘을 다 바쳐 육아에 전념했다. 돌이켜보면 후회되는 것과 아쉬움도 있다. 내겐 오로지 가족뿐이었고, 매 순간순간이 그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가족들의 식성과 취향에 맞추며 살았던 나는 내 식성과 취향에 늘 아쉬움이 많았다. 인생의 새로운 장이 펼쳐졌다. 이번 무대의 주인공은 남편도 아니고 자식도 아니고 바로 나이다. 지금까지 제쳐두었던 내 취향을 존중하고 발전시키며 나를 위한 삶을 살 것이다. 나 스스로 내 취향을 존중하고 발전시키고 싶다. 나는 자유인이다. 사랑하는 가족도 내가 자유인이라는 것에 아무도 이의제기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온전한 자유를 만끽하지는 못하고 있다. 아직도 마음 쓰이는 곳이 많고, 할 일이 많다. 어쩌면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자 죽을 때까지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씩씩하게 첫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