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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로 또 같이, 우리 함께 가자    
글쓴이 : 최정옥    24-11-09 21:34    조회 : 1,891
   따로 또 같이, 우리 함께 가자.hwp (85.5K) [0] DATE : 2024-11-09 21:34:39

따로 또 같이, 우리 함께 가자

 

최정옥

친구가 운영하는 호프집에서 오빠를 처음 만났다. 나는 스물한 살. 오빠는 스물세 살. 발라드 음악과 영화를 좋아하는 공대생이었다. 떡볶이와 햄버거를 좋아하는 서울 오빠였다. 나는 신나는 음악을 좋아하고 산을 좋아하는 문학소녀였다. 투박한 시골 출신인 나에게 서울 오빠는 부드럽고 달콤한 솜사탕 같았다. 언제부터인지 둘이 발라드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떡볶이를 즐겨 먹고 있었다. 햄버거를 싸 들고 등산하러 다녔다. 산에서 만난 아줌마 아저씨들이 우리를 보며 예쁘다고 했다. 선남선녀라고 말이다. 그런 서울 오빠는 내 남편이 되었다. 우리는 서로 달라서 미친 듯 끌렸고 또 치열하게 싸웠다.

2년 전 남편은 위암 1기 판정을 받았다. 항암치료는 없었지만, 체중이 15빠졌다. 틈나는 대로 동네 산책부터 가까운 산을 같이 다니면서 남편의 체력 단련을 도우려고 애썼다. 남편은 힘든 여행과 산행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무난하게 따라주었다. 육아가 끝나고 치열했던 직장 일을 반으로 줄였다. 시간이 많아진 나는 주로 혼자서 여행하고 힘든 산행을 찾아다녔다. 예전처럼 장거리 산행을 같이 하고 싶었고, 2년동안 혼자 보고 느낀 감동을 같이 하고 싶었다. 어느 날 연애 때 했던 등산 여행을 제안하게 되었다. 남편은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줬고, 며칠 동안 설레는 마음으로 여행계획을 세웠다.

 

고속도로를 달리며 일출을 보고, 월출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산세가 아름다운 돌산이었다. 흰색 티를 맞춰 입고 오길 잘했다. 산뜻해 보여서 기분이 좋았다. 그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말라깽이 내 반쪽이가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니 기뻤다. 남편의 환한 웃음이 예쁜 진달래와 함께 사진에 담겼다. 산 아래 노란 유채밭과 반듯한 평야, 진청색 저수지는 아름다운 풍경화 같았다. 우뚝우뚝 솟은 바위가 절경이었다.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등산로를 걷는데 몽실몽실 구름 위를 걷는듯했다. 팔랑팔랑 날고 있는 노랑나비 한 쌍이 된 듯했다. 20대로 보이는 커플이 있었다. 30년 전 우리 모습이 저들처럼 생기 있고 예뻤을까? 서로 사진을 찍어주면서 내가 말했다. “젊은 두 분 모습이 선남선녀예요.” 감사하다며 웃는 모습도 싱그러웠다. 우리는 젊은 커플과 앞서거나 뒤서거나 걸었다. 처음 와 본 월출산 절경 하나하나가 감사했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 살랑대는 바람이 감사했다. 30년 전 추억을 상기시켜 주는 젊은 커플과 동행이 감사했다. 둘이 함께하는 순간순간이 차곡차곡 가슴 깊이 새겨지고 있었다. 그날 밤 하늘 가득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아침잠이 많은 그가 새벽부터 부산스러웠다. 먼저 일어나 산행에 필요한 옷이며 장비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바쁜 모습과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모습에서 설레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부지런히 준비하고 달마산 미황사로 출발했다. 100대 명산 인증을 위해서 달마봉을 가야 한다. 달마봉 가는 길, 짧지만 매우 가파르다. 밧줄을 타는 구간이 많았다. 오십이 넘은 그가 어린아이처럼 밧줄 타기를 재밌어했다. 정상에 먼저 올라가 환호성을 질렀다. “우와~ 여기 경치 정말 미쳤다!” 상기된 목소리가 들렸다. 산 아래 해남의 바다와 농지 풍경에 감탄하고 있었다. 살랑대며 부는 바람에 모자를 벗고 시원하게 머리칼을 넘기고 있었다. 몽환적인 운무까지 함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산에서 만나는 멋진 모습을 다 보여주고 싶었다. 정상석 옆에 커다란 돌탑이 있었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돌멩이 하나씩 올리며 소원을 빌었다. 남편은 내가 혼자 산에 다니면서 돌탑에 소원 비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 소원을 정말 들어줄 거라고 내가 믿는다고 알고 있다. 바람이 시원한 아름다운 달마봉에서 우리는 마주 보고 웃었다. 수많은 사연을 들어주는 돌탑과 잔잔한 남해가 우리 부부를 따스하게 안아주는 듯했다.

다시 미황사로 하산해서 바로 우회전, 달마고도 시작이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이다. 나는 컨디션이 좋았다. 어제 월출산에서 제대로 몸을 풀었는지 몸이 가볍고 적당히 덥고 산들산들 부는 바람이 좋았다. 그는 달마고도를 걸으면서 컨디션이 좋지 못했다.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무릎보호대를 해줬다. 가지고 온 파스를 뿌려주었다. 여전히 많이 힘들어했다. 산행을 포기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달마고도는 시작하면 뒤돌아오지 않는 이상 포기할 곳이 없었다. 그가 앞에 가고 내가 뒤따라가고, 나중에는 나에게 앞서가라고 했다. 힘들어하는 자기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걷다가 기다리고, 걷다가 기다리고. 걷는 모습이 위태위태했다. 지친 그가 앞서 가면서 산에 핀 이름도 모르는 예쁜 꽃을 가리켰다. 예쁘단다. ‘호로롱 호로롱~’ 새들이 노래했다. 부드러운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있었다. 막바지 벚꽃잎이 날렸다. 그 와중에도 나는 행복했다. 감사했다. 나와 같은 시간에, 나와 같은 공간에서, 이름도 모르는 예쁜 꽃을, 우리는 같이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새소리를 같이 듣고, 부드러운 바람을 같이 느끼고 있었다.

 

남편과 함께한 12일 월출산과 달마산, 달마고도를 가슴속 깊이 새겨두었다. 산을 좋아하는 나에게 남편이 맞춰준 여행이었다. 여행 스타일도, 식성도, 자녀교육관도, 인생 가치관마저 우리는 달랐다. 나와 다른 남편에게 맞추며 살았다. 여행도 휴식도 늘 함께해야 사랑인 줄 알았다. 자상하고 정적인 남편을 사랑하면서 때로는 답답하고 불평이 많았었다. 부지런하고 생활력 강한 나와 살면서 남편도 불만이 많았을 것이다. 아이들을 키우며 정신없이 바쁘게만 살다가 남편의 위암 수술은 우리에게 쉼표를 선물했다. 우리는 각자의 취향에 맞는 취미생활을 했다. 나는 비로소 나다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어릴 때 꿈꾸었던 공부도 시작할 수 있었다. 때로는 남편이 나에게, 내가 남편에게 양보하고 맞춰주는 생활을 했다.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밤새워 드라마를 보면서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고 때로는 신나는 음악을, 때로는 발라드 음악을 같이 듣는다. 여전히 남편은 햄버거를 좋아하고 나는 산을 오른다. 우리는 다르지만 조금씩 닮아가는 것이 느껴진다. 정적인 그와 동적인 내가 만나 따로 또 같이, 우리는 함께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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