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cheZone
아이디    
비밀번호 
Home >  강의실 >  창작합평
  흔들리며 피는 꽃    
글쓴이 : 이성근    25-02-23 14:30    조회 : 94
   흔들리며 피는 꽃.hwp (30.0K) [1] DATE : 2025-02-23 14:30:45

흔들리며 피는 꽃

 

이성근

 

  봄이 오면 우리 집 화단에는 꽃들이 지천이었다. 할머니는 꽃들의 이름도 알지 못한 채, 손수 꽃 모종을 심었다. 할머니 손 끝에서 예쁘게 피어나는 그 꽃들이 나는 부러웠다. 사람들은 늘 그 화려한 꽃무더기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방 안에서만 지내온 나는 바깥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할머니는 밭일 하러 가면서 나를 방에 두고 방문을 잠갔다. 방 안에 홀로 남겨진 나는 할머니가 돌아올 때까지 누워서 뒹굴거리거나, 한 켠에 두고 간 고구마나 감자를 주무르다 입에 넣곤 했다. 심심하면 돌멩이를 넣어둔 페트병을 흔들며 놀다가 잠이 들곤 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늘 혀를 찼다. 아홉 살이나 된 아이가 기저귀를 차고, 걷지도 못하며, 제 손으로 밥도 먹지 못하고, 말을 하지 못한다고 손가락질을 했다. 나를 낳은 엄마는 우울증을 앓다 하늘나라로 떠났다. 아빠는 주변 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하고, 월급도 차압당해, 우리 집은 할머니의 밭일로 생계를 이어갔다. 오빠들은 나를 보면 때렸다. 오빠들이 나타나면 나는 몸이 움츠러들었다.

  아침이 되면 오빠들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학교에 간다고 했다. 나도 학교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걷지도 못하고, 기저귀를 차야 하는 나를 학교에 데려다 줄 사람이 없어서 갈 수 없다고 했다. 홀로 남은 집에서 할머니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저녁이 되면 할머니는 벌겋게 익은 얼굴로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허리가 굽은 할머니는 내 기저귀를 갈고, 식은 밥 한 덩이를 미역국에 말아 떠먹여 주었다. 할머니의 고단한 하루는 한숨으로 마감되고, 불 꺼진 방에는 코고는 소리가 가득했다.

 

  "아이고, 아가! 학교에서 너를 데리러 온단다. 이제 학교 갈 수 있게 되었어.”

  감정의 흔들림이 없던 할머니가 평소와 다르게 흥분된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다음 날 아침부터 누군가 나를 데리러 왔다. 사람들은 그녀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녀는 먼 곳에서 출근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날마다 나를 데리러 와주었다. 나는 그녀의 퇴근 시간까지 종일 학교에서 지냈다. 아이들이 나를 보러 우리 반 교실로 찾아왔다. 애완동물 대하듯 머리도 쓰다듬어 주었다. 선생님들도 나를 보며 다운증후군인데 참 귀엽게 생겼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늘 바빴지만 나를 씻기고, 기저귀도 갈아주고, 걷기 훈련도 시켰다. 밥도 혼자 먹어야 한다며, 흘려도 괜찮다고 수저를 쥐어주었다. 햇살이 가득한 교실에서 운동하고, 먹고, 놀다가 낮잠도 잤다. 잠에서 깨어나면 컴퓨터 앞에서 일하던 그녀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뒤뚱거리며 그녀에게 걸어갔다. 선생님은 하루하루 다리에 힘이 붙어가는 나를 보며 놀라워했다. ‘꼬옥안아주며 잘 걷는다고 칭찬해 주었다.

  오빠의 유치원 가방을 가지고 다니던 내게 선생님은 분홍색 책가방을 선물해 주었다. 걸을 때마다 불빛이 반짝거리는 운동화도 사주었다. 그 불빛을 보고 싶어서 걷고 또 걸었다. 말을 못하던 나는 선생님을 보면 "엄마라는 말이 나왔다. 내가 부를 때마다 그녀는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어머나, 이 꽃 이름이 뭐예요? 어쩜 이렇게 작고 예쁠까요?”

  “글씨요, 그거이 이름은 모르겄고 봄만 되면 그렇게 핍디다.”

  선생님은 우리 집 화단의 꽃을 보며 감탄하곤 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작고 푸른 꽃이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꽃말을 가진물망초라는 것을 얼마 후에 알게 되었다. 선생님은 그 꽃을 보며 나를 잊지 않겠다고 했다. 힘든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말고 꽃을 피우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눈물과 한숨 속에서 피어난 꽃들을 보며 나는 늘 불안했다. 학교에서의 행복한 시간이 영원하기를 바랐지만, 머지않아 나는 집을 떠나야 했다.


  장애인 시설에 입소한 나는 그곳에서 매일 누군가를 기다렸다. 오빠들도, 아빠도, 할머니도 찾아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지만, 여기저기 흘리며 오랜 시간 밥을 먹는 나를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생활재활사 선생님은 빠른 속도로 내 입에 밥을 떠넣었다. 내게 걷기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나를 찾아왔다. 멀리서 나를 부르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리자 나는 벌떡 일어났다. 박수가 저절로 나왔다.

  “어머나, 이곳에 입소한 이후로 아무런 자극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던 아이가 선생님을 기억하는 거예요. 표정

    이 이렇게 밝아지다니, 정말 활짝 웃네요.”

  재활사 선생님은 내 행동을 보며 깜짝 놀랐다. 점심 식사 시간에 무기력하게 입만 벌리고 밥을 받아먹는 내 모습을 보며 선생님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선생님이 실망할까 봐 나는 그녀 앞에서 열심히 걸었다. 선생님은 기저귀를 갈고 나를 씻겨주었다. 새로 사온 원피스도 입혀주었다. 시설 앞마당에서 화단의 꽃을 보며 함께 걸었다. 그녀는 오래 못 올 수도 있다며 내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이곳에도 드문드문 피어 있는 물망초를 보며 잊지 않고 기억할 거라고 이야기해주었다. 나를 사랑한다고.

  그날 선생님의 뒷모습을 잊을 수 없다. 나는 오래도록 창가에 서서 유리창을 두드리며 소리 내 울었다.


  해마다 봄이 오면 그리운 마음이 피워낸 푸른 꽃송이, 작디 작은 물망초가 흔들린다. 그 흔들림 속에서, 10여 년을 기다려온 나를 그녀는 기억할까? 그리움이 꽃잎처럼 사라지지 않기를, 그녀의 마음 속에도 여전히 흔들리는 물망초처럼 내가 피어있기를.

 

 


 
 

이성근 님의 작품목록입니다.
전체게시물 5
번호 작  품  목  록 작가명 날짜 조회
공지 ★ 창작합평방 이용 안내 웹지기 02-05 86945
5 흔들리며 피는 꽃 이성근 02-23 95
4 영웅시대 이성근 02-23 84
3 신비한 손 이성근 02-23 93
2 잘 지낸다고? 이성근 02-23 91
1 못다 준 사랑 이성근 02-23 95